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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그림 - 찬란한 계절을 사랑하게 만드는 명화 속 여름 이야기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읽은 책입니다)
몸이 절로 떨리던 겨울을 지나 무채색이었던 세상에 연두빛과 파스텔색들이 흩뿌려지기 시작하면 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음을, 곧 생명들이 완연해 지겠구나 기대하게 되면서도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 마음 한쪽에 걱정이 스멀스멀 자라난다.
아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쨍한 햇볕에 피부가 따끔거리고 집앞 편의점만 다녀와도 땀이 터지고 샤워해봤자 몸의 물기는 마르지않고 머리도 절대 마르지않는 그 여름이 나는 두렵다.
사람이 촌스러워 보일까봐 피부가 타는 것도 두렵다.
어디에서든 에어컨부터 찾는다.
그렇게 여름은 어느순간 나를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둬두는 그런 괴롭고 싫은 계절이 되었다.
하지만 #여름이라는그림 (#이원율 씀 #빅피시 출판)을 보고(정확하게는 표지를 봤을 때 부터) 초등학교 시절의 여름이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여름방학. 40일 정도의 그 자유시간(물론 방학숙제도, 일기도 썼어야했지만)을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계곡에 있었다. 경북 청송에 너른 마당이 있는 일층 주택에 살았던 큰이모 댁에 방학의 절반은 머물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꼽만 떼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계곡으로 향했다. 나보다 어린 동생과 동생보다 더 어린 사촌동생 전용의 수영장을 만드느라 이리저리 돌을 주워 날라 물을 막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파라솔을 펴고 계곡에 가장 깊은 곳에 떡밥을 넣은 어망을 심어놓고 열심히 입으로 불어 빵빵하게만든 고무보트를 띄우고 몇번이고 다이빙을 했다.
수경을 끼고 잠수도 하고 수영도 맘껏 하고, 후라이팬에 꼬들꼬들하게 끓여먹는 물놀이 후 라면과 잡은 물고기로 만든 튀김과 매운탕까지. 그러다보면 하루가 다 저물었다.
그리고는 이모집 마당에서 드럼통에 불을 붙여 옥수수 같은 것을 태워?먹으며 지금은 보기힘든 쏟아지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학교에 가면 어깨와 코에서 허물이 벗겨질 정도로 새카맣게(시커멓게) 타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참 행복했다. 타는 것은 아무문제가 되지않았고, 더위도 물속에 있으면 아무문제가 없었다.
그토록 여름은 찬란했고 생기 넘치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나는 여름이되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참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그때처럼 계곡으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않는다.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여름바다는 수많은 인파로 뒤덮여 오롯이 바다를 감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다는 겨울에 코랑 귀가 떨어지는 칼바람을 맞으며 봤었는데 그마저도 몇년동안 경험하질 못했다.
몇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지쳐있었구나 싶더라.
마침 이번에 부산을 다녀왔었다.
여름부산은 생애 거의 처음인 것 같았는데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시원한 바닷바람 쏟아지는 태양이 참 좋았다. 해변을 살포시 달려보고, 시원한 맥주로 바닷가 야경을 누렸다.
그렇게 카메라에, 두눈에 담았던 여름 날의 바다가 <여름이라는 바다>에 가득 담겨있었다.
그 시절 그때의 여름으로 날 데려가 주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잔잔한 수평선을 보며 달래보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초록빛 그늘아래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다른 계절보다 밝아서 온갖 색이 잘 보이는 일몰과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리는 여름 밤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혀과 피부로 맛보고 느꼈던 여름바람과 여름냄새가 가득했다.
바다와 하늘, 우거진 나무처럼 대표적인 색이 한덩어리로 뭉쳐져있고 그 대표색에서 살짝살짝씩 다른 색들을 촘촘히 세밀하게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화풍은 인상주의라고 생각한다.
일반화와 점묘화의 사이 어디즈음 같기도, 나에겐 고흐로 대표되는 층층이 두껍게 올려 거친질감이 드러나는 기법으로 그린 파도, 정확한 형태가 아닌 빛의 형상을 형용하기 어려운 무언가로 붙잡아 둔 모네 고유의 색감까지.
참 여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감탄하며 넘겼다.
어린 날 보름여정의 첫날 그해여름 처음으로 계속을 보며 했던 감탄처럼. 그 감탄에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비겁하게 맘껏 즐기는 것을 외면하던 짜증으로 가득찬 내가 몸 밖으로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완연한 여름이 내게 다가왔다.
슬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