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페스트 (#알베르카뮈 #새움 출판)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기 전에 읽었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들었다.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 1/3의 인구가 숨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은 세대는 존재하지 않으니 막연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로 <페스트>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시간을 함께한 우리세대는 분명 이 책이 다르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라기 보다, 저 시간을 견뎌낸 누군가의 처절한 기록같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언론을 통제해 사실을 축소할 뿐 원활한 대응을 하지못하는 정부, 불안과 공포속에서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맘껏 욕할 수 없었고,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모두가 이런 재난같은 상황은 처음이었고, 정부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른 이름일뿐.
각자의 사정, 위치, 지위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는 선택들이었다. 어차피 끝이 보이지않는 장기간동안 그 모든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겪지 않았나.
그래서 그런지 어느덧 잊혀진 작은 영웅들이 유난히 찬란히 빛났던 것 같다. 리외, 그랑, 타루.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이런 보통의 선함들이 세상에 남겨져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문득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선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거창한 선함을 행하기 위해 아무 행동을 하지않는 것 보다 휴지를 줍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등의 누구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선함을 행하면, 그 선함은 이 세상에 사라지지않고 남아 쌓이고 쌓여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이 보통의 영웅들을 보니 선의 평범성이란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하겠구나 싶었다.
저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선함으로 이 세상이 바뀌어 나간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이 세상이 참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나라를 지켜 부상을 입어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남은 참전용사와 매국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참전용사들을 위한 집짓기 봉사와 같은 당장 나가서 망치를 두드리고 먼지를 뒤집어 쓰기만 하면 누군가의 삶이 직접적으로 바뀌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것도 보통의 선함에 해당하는 일 인 것 같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해줄 슈퍼맨, 어벤저스와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기를 꿈꾼다. 히어로물이 인기가 많음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라는 것의 방증일 것이다.
<페스트>속의 사회에도,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시간에도 슈퍼맨은 없었다. 하지만 보통의 그랑, 리외, 타루(심지어 우리의 시간선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들이 이 세상을 지켜냈다. 아직까지 완벽히 아물지 못한 상처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이뤄냈다라는 것만 해도 너무나 큰 업적이다.
그리고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으로 전염병, 역병, 돌림병으로 페스트로 통일되어 번역되던 것들이 카뮈가 구분했던 원문 그대로 나뉘어 번역이 되면서, <페스트>의 소재인 질병으로의 역병만이 아닌 우리 개개인의 인간이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악의도 ‘역병’으로 읽혀졌다.
“우리가 더 이상 역병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을 해야한다는 것과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평화를 기대할 수 있고, 또는 좋은 죽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걸 알고 있소."의 문장 속에서의 ‘역병’을 단순히 ‘페스트’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역병’이라고 받아들였을때의 의미와 전혀 다르다.
내가 읽기에는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타인을 져버리는 것, 해야만하는 필요한 일을 하지않은 것 이 ‘역병’의 의미라고 읽힌다. 카뮈도 이런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아예 가능성이 삭제된 것 보다는 카뮈의 원래 글에 더 가깝지 않을까.
세상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만큼 번역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독서였다.
어쩌면 번역가도 이 글을 통해 해야만 하는 일을 용기있게 함으로써 ‘역병’을 이겨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입문한 고전들이 더 좋아지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