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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 ㅣ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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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쉽게 생기면서 생기는 데에 드는 에너지에 비해 사라지는 데에 드는 에너지가 압도적으로 커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특성이라 삼아도 좋을만한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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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편견’이다. 선입견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확인조차 않고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 체화시켜, ‘아니면 말고’라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의심을 지우지 ‘않’는, 싸늘한 시선으로 대처되는 무언의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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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나 작가가 쓴 #어느아이이야기 (#을유문화사 출판)가 그러한 편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심지어 그 편견의 주제는 ‘인종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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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든, 흑인들도 겸상도 되지않던 1950년대 미국에서, 심지어 이웃의 사소한 것까지 쏙쏙들이 알 수 밖에 없는 소도시에서 대니얼이 태어난다. 축복받아 마땅한 일에 수근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는데 이유가 바로 대니얼의 피부색. 백인의 엄마에게서 흑인으로 ‘보이는’피부색으로 태어난 것이 뭄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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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를 사랑하는 도파민뿜뿜 세계에서 이러한 출생배경이 안주거리삼기좋은 이야기임은 인정하나, 그당시는 단순 호사거리가 아니었나보다. 그냥 백인과 흑인의 혼열인 물라토라고 하고 끝내면 될 것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기관의 수사까지 이루어진다.
아이의 아버지가 흑인인지 아닌지가 그렇게나 중요한가?
엄마가 낳자마자 아이의 친권을 포기했다는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줄 가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데 피부색의 원인을 찾느라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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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가막힌 것은 양은냄비 기질은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닌가보다. 그렇게 수근대던 소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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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경이 2013년으로 건너뛴다.
이 소도시에 초청받아 온 ‘오스트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작가 프란치스카가 등장하고, 이 도시의 유일한 혼혈인 대니얼을 만나게 되면서 잊혀졌던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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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와 시선에 의지한 내용들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차고 있어서 그런지, 조사관들이 조서를 작성 한 것처럼 문장부호가 모조리 생략된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주관적’인 보고서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점이 글을 읽으면서 소설이라는 점을 망각하게하여 더 몰입하게 하면서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볼 때 처럼 끔찍한 사건에 내가 깊게 연루되는 것 같은 불편함 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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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는 김안나 작가의 개인사가 제법 많이 반영되어 있는 자전적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실제로 한국계 오스트리아 혼혈이다.
유색인종으로 백인사회에서 살아가며 실제로 차별의 순간도 겪어낸 당사자인 것이다.
그래서 극 속의 프란치스카가 김안나 작가의 아바타로 작용하는 듯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강하게 어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자전적이라기엔 ‘객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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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보고서조차도 그래서 그 아이는 입양이 된 것인지 되지 않은 것인지 알려주지 않고 끊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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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여부도, 인종차별에 대한 입장정리도 모두 철저히 이 책을 읽는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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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일이 있고나서 7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발생하고 있다. 물론 형태는 조금 바뀌었다.
K-POP등 동양의 문화가 대세로 올라서자 동양의 아이돌들이 피부가 하얀것을 보고 ‘백인혼혈’이냐며 ‘백인같다’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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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행후기에서 전해지는 각종 일상에서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요즘 백인세대는 자기가 하는 행동이 인종차별인 줄도 모르고 행한다. 세상을 기억할 때부터 자신의 윗세대들이 당연하단듯이 인종차별하는 것을 보고 자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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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인종차별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역시나 앞서 말했듯 편견이 가진 회복력과 전염성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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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유색인종은 자신의 피부색에 1도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면 내편이 아닌 세상. 무한 경쟁 사회로 들어서며 주위 사람과의 소통이 더 사라지면서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퇴화되었다. 편견이 대기 중 질소만큼 존재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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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자는 가장 먼저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작가는 전 유럽이 주목하는 작가라는 자신의 영향력을 문제제기에 썼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판단을 보태어 깨지지 않고 건재해온 무언가를 향해 돌을 던질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