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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평점 :
[이 글은 다산북스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자기만의 집 이라는 제목이 무슨 뜻일까?
책을 펼치기 전에 무슨 말일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나
잘 정리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라는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결국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하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펼쳤다. 2007년에 나온 책을 현재의 시각에 맞게 고친 개정판인 2025년의 [자기만의 집]은 제목마저 바뀌었단다. 원래의 제목은 [엄마의 집]이었다고.
결국 ‘엄마’가 ‘자기만’으로 바뀐 것인데...
책을 펼쳐보니,
30십대에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을 지칭하는
‘386세대’ 의 부모와, 저임금 노동착취에 시달렸어야 하는 ‘88만원 세대’의 딸 의 이야기였다.
부모는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고
아빠는 20대에 가졌던 물질만능주위로 혐훼되어버린
사회를 극혐하고 비난하며 그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안정적인 경제적 수입 등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직장을 여섯번 바꾸고, 모아왔던 돈들을 모두 날려먹는) 그 모습에 엄마는 실망하고 그렇게 둘은 헤어진다.
양육권을 포기한 아빠를 대신해 엄마를 따라 나선
주인공 ‘호은’이는 외가댁에 맡겨져서 가끔 엄마를 만나며 상실감에 젖은 어둡고, 시니컬한 사춘기와 성장기를 보낸다.
그러다 엄마가 하루 15시간씩 일하며 모은 돈으로 구입한 언제될지 모르는 재개발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십수년된 낡은 아파트로 들어가 엄마와 함께 살게 되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은 여자의 모습을 엄마에게서 본 호은은 또다른 상실감에 빠지며 적응하지 못하고 대학진학과 동시에 기숙사로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탈출한다.
스물한살 어느날.
말도 없이 학교앞에 초록빛으로 빛나는 눈을 가진 중학생 여자아이 승주를 데리고 나타난 아빠는 엄마에게 데려다줘라 라는 말만 남기도 혼자 떠나버리고 당황스럽지만 방법이 없는 호은은 엄마집으로 향한다.
(초록빛으로 빛나는 눈을 보고 예전부터 아빠 옆에서 있어왔던 한 여자를 떠올린 호은은 그 여자애를 마냥 곱게 바라 볼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침범당한(심지어 모르는 여자애까지 하나 더)엄마는 애를 돌려보내기 위해 아빠를 찾아 나서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모습은 단란한 가정처럼 보인다.)
아빠 찾기에 실패한 세 여자는 그렇게 한집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여러가지의 이야기들을 겪으면서
세 여자는 각자 응어리를 풀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나름의 시간들을 보내며 의도치 않는 성장들을 해나간다.
부모로서의 ‘엄마’와 이성간의 사랑에 생기를 찾는
여자로서의 ‘엄마’ 나의 선택없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모든 시련은 다 나만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두 딸(물론 부모도 다르고 성격, 대응도 다르지만)
이 세 여자의 생각, 말, 표정, 관계가 변해가는 것에서
수많은 의미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작품이 끝난 뒤에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IMF를 겪으면서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가 집을 가진 엄마들의 등장이라고.
그 전에는 가장인 남편의 이름으로 된 집에서 종속되어 살아가는 전업주부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며, 물론 집을 가지게 된 이유가 멋진 것들은 아니다. 미혼모라던가 이혼이라던가...
그래서 2007년의 제목은 [엄마의 집]이었던 것 같다.
이혼하고 딸과 살아가기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4년 25년이 되면서 1인 가정이 늘어나고 하면서 작가가 의도한 ‘엄마의 집’은 조금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게 아닌가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개정판은 ‘자기만의 집’으로 제목마저 바꾼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않고 오롯이 자기로 있을 수 있는 그런 곳. 아직 어린 너가 우는 것은 너 때문이 아니라고 무조건 엄마 잘못이라며 사과하며 안아주는 엄마가 있는, 소속감을 안겨주는 따뜻한 나만의 집.
딸에게도 엄마에게도 그렇게 위안이 되고 의미가 깊은 ‘자기만의 집’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냥 편하게 엮을수만은 없는
세 여자의 연대와 각자의 사랑과 삶이란 결국 모순되게도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임을, 무릎을 탁 치게되는 주옥같은 문장으로 잘 풀어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 표시를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제법 많은 문장에 표시를 해두었다. 문득 이 책을 꺼내 표시된 문장을 찾아 읽는 것 만으로도 흔들리던 삶이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식뿐만 아니라 부모도, 모두 성장해 나간다는 것과 그 성장의 원동력이 집에서 함께 살 부비며 살아가는 것이라는데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띠지부터 적혀져 있는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라고 고뇌로 가득찬 삶을 포기하지않고 그 안에서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해 단단하고 맑아지는 주인공 호은이 참으로 멋져보였다.
실제로도 내 나이 또래일거라 더 공감이 가기도 했고,
안타깝기도했고, 응원하기도 했다.
난 또 레모네이드도 얼마짜리 레모네이드인들 어떠랴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정말 크고 싱싱한 레몬을 눈앞에서 몇개나 짜서 만들어주는 만원에 육박하는 레모네이드부터, 이게 레모네이드인가? 싶을만큼 달기만 한 공장에서 찍어내는 레몬이 채 1퍼센트도 들어있지않은(나머지는 합성향으로 대신하는) 레모네이드도 있을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레모네이드가 된들 실패한 것일까?
오히려 누군가에겐 달달한 레몬향만 첨가된 레모네이드가 입맛에 맞을 수도있고, 접근성이 용이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손쉽게 레모네이드를 접할 수 있게 해줄 것인데 이게 잘못된 것일까?
꼭 남들이 보기에 비싸고 좋아보이는 고급 레모네이드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되고 싶은 레모네이드의 모습이어야겠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며 학업도 아르바이트도 엄마와의 관계에도 최선을 다하는 호은의 인생은 고급 레모네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지만 결국 호은이 도달한 레모네이드가 달달한 저렴한 그것이라도 나는 기꺼이, 기쁘게 박수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싶다. 함께 레모네이드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