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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평점 :
#도서지원
책을 덮으니 그제서야 마음에 휘몰아치던 번개폭풍이 진정되는 느낌이다.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에서의 긴 항해를 끝내고 갓 육지에 발을 내딛었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익숙하지 않은 간지러움이, 이제는 일렁이지 않는 단단한 육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사히 육지에 발을 내딛었을때 처럼, 무사함에 대한 안도감과 감사함이 올라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종된(말이 되지않는 문장이긴 하지만 ‘실종한’도 괜찮을 표현일지도 모르는)친구 석이를 찾아나서는 동이(글을 전개하는 나)와 혜란이를 보면서 이번에는 동이에게 다음에는 혜란이에게 나를 투영하면서 보았다.
11년 전 4월16일 아침에 벌어진, 영화내용이었어도 끔찍했을 배의 침몰과 이태원참사를 이 책 세명의 등장인물과 비슷한 거리감으로 겪은 나는 솔직히 석이처럼 희생자들을 너무나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동이처럼 엄마의 죽음을 겪은 것도 아닌데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내 양력생일 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매년 생일이 되면 마음이 좋지않아서 ‘하필’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다는 것에 선장을 욕하고, 출처가 확실하지않은 인터넷 속의 카더라통신으로 음모론에 동조하고 이러더라 저러더라를 주변사람들과 이야기했었다.
마치 소설 속 동이와 혜란이 처럼...
그렇게 느껴져서 그랬는지 나는 실종되기전에 혜란이 결혼식 청첩장을 주러 나온 자리에서 이태원참사에 너무나 마음을 아파하며 울분을 토하는 석이를 차마 나무래지못했다. 현실이었으면 꼭 오늘 같이 좋은날에 그래야하나, 눈치챙겨라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분명.
하지만 그 말을 하지못했다
무슨 차이였을까.
아마 #영혼에빚을져서 를 읽으면서 조금 더 나와 관련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평소에 살면서 나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을 비교하지 말라고, 심지어 같은 종류의 아픔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아픔의 강도도 다를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행하며 살아왔는데 개인 대 개인을 벗어나는 일에는 한번도 이러한 원칙이나 관념을 가져야겠다는 마음(또는 시도)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왔다. 이런게 나뿐만일까? 그랬으면 다행이다 싶은데 이렇게 책으로 나올 정도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또 입맛이 썼다.
어떠한 일로 느끼는 고통이나 안타까움, 슬픔과 같은 감정은 그 일의 객관적인 크고 작음이 아니라 얼마나 그 감정을 느끼는 ‘나’와의 거리가 가깝냐 머냐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단 한명의 죽음이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이 수백명이지만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참사보다 비교 할 수 없는 만큼 크고 아프게 느껴지는건 어찌보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비슷한 일들임에도 나와의 거리로 인해 발생되는 이 이중성을, 등장인물들이 봉사활동을 하러갔던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벌어졌던 독재로 인한 대학살과 꺼삑섬 압사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라고 무심코 헛웃음이 들이켜진듯한 투로 말을 뱉는 석이를 통해 또 한번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더 먼 일이 생기면 기존에 거리감이 있던 일은 조금 더 내 쪽으로 들어와 나의 일이 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게 재단되는 가치인가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나와의 상대적 거리감이 멀어도
누군가에겐 당사자의, 주변의 일 일수도있고 자기일처럼 마음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아무 도움도 되어주지 못해 죄책감마저 들어하는 석이같은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도 나는 안다. 아니 막연히 알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당연하다 여기는 다른 일처럼 이러한 마음을 가지려 애쓰고 이해하고 잊지않으려 하며,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않도록 주의해야하는 의무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깨닫게)되었다.
이제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차례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참한 일들을 통해 내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
이게 예소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영원에 빚을 진다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니 그런 의문이 든다.
실종된 것은 석이 일까,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시선과 관심. 애도하는 마음일까.
그렇다면 이 글은 새드엔딩일까. 해피엔딩일까.
#영원에빚을져서 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본 표현이 있었다. ‘톧아보다’였다. 틈이 있는 곳 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라는 뜻의 말이다. 책속의 ‘나’인 동이가 스스로를 톧아보았는데 조금만 더 확장하면 나 아닌 너를, 나와 너가 아닌 다른 이들을 톧아볼 수 있게 되는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거창한가 싶지만 톧아보다 라는 표현의 어감이 투박하고 소박한 듯 느껴져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부담을 줄여주었다.
이 글을 서평단모집으로 작성하는 글이지만 서평이라는 거창한 글도 아니고 글의 모든 내용을 담은 것도 아니다. 하고픈 말을 하게하는 묘한 힘이 실린 소설임은
분명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낼 재주는 나는 없다. 이 글을 읽고 끌려서 책을 읽어주면 좋겠지만, 대체 무슨 소리야라며 답답함에 울분을 터트리며 이 책을 찾아읽는 것도 나에게는 성공이다.
다른 의미로 (여러의미로)
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영원에, 빚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