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사신계 강령이다. 지금이야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권이 보장 받고 있지만 반야가 살아가던 그 시절엔 남녀차별, 신분에 따른 귀천차별 등 엄연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러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예전보다는 많이 수그러 들었지만 여자라서 어쩌니 저쩌니 말들이 아직도 간간히 들려오고, 노골적인 신분차별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사회에서는 상위클래스의 넘보지 못할 선들이 그어져 있다.
반야. 어려서부터 영특한 신기를 타고난 아이. 하지만 그 신기가 오히려 그 아이에겐 업보나 다름 없었다. 자신의 삶은 없고 오로지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야 했던 반야. 자기 자신의 미래는 내다보지 못하는 그녀가 다른 이들의 미래를 점지해 줘야 하는 한낱 무녀의 반야. 언젠가 무당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무병을 앓아 누은 주인공. 아무리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려해도 자신의 몸만 상할 뿐 벗어날 순 없었던 그 주인공. 결국 내림굿을 받고 무신들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 반야도 그런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기구한 무녀로써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어린 나이부터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자라났을 그녀이지만 무녀라는 일이 쉽지 많은 않을터였다. 사람들에게 씌인 귀신들을 불러내느라 자신의 기를 다 쓰기고 하고, 무녀라는 이유만으로 천대를 받기도 하고, 한 여자로써의 삶을 포기한 그녀. 마음에 품은 정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했던 그녀. 이러한 그녀의 기구한 운명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운명을 개척하지 못한 그녀에게 괜한 화가 치밀기도 했다. 같은 여자의 마음으로 그녀가 좀 더 결단력있게 나가 주었으면 하고 은연중에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점집을 찾고 사주를 보곤 한다. 자신들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불식 시켜보려는 그네들이 있다. 우리는 곧잘 뭐 될대로 되겠지. 운명에 맡긴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말 그 운명이라는게 정해진 것일까. 정말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우리가 애써 공부할 필요도 애써 힘들게 삶을 개척할 필요도 없은 것이 아닌가.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아 운명이라는핑계의 돌파구를 찾는 것은 아닐까.
사신계.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하는 단체. 그런 사신계의 칠요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그녀임에도 그녀 스스로가 모든 사람이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거라고는 처음부터 생각지 않는 듯 했다. 이상과 현실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일까. 자유와 평들을 외치면서도 막상 그네들 조차도 현실을 크게 바꾸려 들지는 않는다. 반야는 현실에 더 뜨겁게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운명 예찬론자에 불과 했던 것일까. 자신의 전생의 업보가 현생에까지 이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전생의 업보들이 다시금 이승으로 내려와 반야의 주변에 머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의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나의 관계는 전생에 어떠했을까. 전생에 1000번을 조우해야 현생에서 옷길을 한번 스치고 지나갈 인연이 된다던 말이 있었다. 천번을 다시 환생하여 만난 배필이라는 천생연분이라는 말. 다 전생과 이승을 이어주는 말들이다. 어찌보면 환생이라는 자체가 얼토당토 않는 일 일수도 있다. 불교의 윤회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말은 우리에게 참된 삶을 살라는 교훈을 안겨주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만이 내생에 다시금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그 말. 전생이 어떻고 두번 다시 환생을 하지 못하며 어떠랴. 지금 사는 이 순간이 중요하고 한 평생 잘 살다 가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