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로 울 수 없어
기미지마 가나타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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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사카히라 리쿠는 일어나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 못 보던 책상, 못 보던 책꽂이, 못 보던 파자마...전신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만다. 거울 속에는 나, 사카히라 리쿠가 아닌 같은 반 여학생 미즈무라 마나미의 얼굴이 있었던 것.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사카히라, 즉 자신이 된 미즈무라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대화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데, 같이 풀장에 빠지고 난 뒤 이런 일이 일어났다. 미즈무라도 사카히라도 그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네 얼굴로 울 수 없어》는 하루아침에 몸이 뒤바뀐 사카히라와 미즈무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서른 살인 현재와 열다섯 살부터의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통 몸이 뒤바뀐 이야기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치중해 서술되는 데 반해, 이 책은 감정뿐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실적이다 못해 굉장히 날것 그대로라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내가 접했던 그 어떤 body switch물에도 이런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미즈무라의 몸이 된 사카히라는 자신이 미즈무라가 됐다는 사실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묵직하게 전해져오는 생리통과 뚝뚝 떨어지는 생리혈을 먼저 수습해야 했을 정도였다(주인공 못지않게 독자까지 당황하게 하는 작가의 전술일까?). 게다가 보통은 이벤트성으로 일정 기간동안만 바뀌거나(영화 《체인지》), 번개가 친다든지 하는 상황이 오면 바뀌거나(드라마 《시크릿가든》) 하는 식인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장장 15년을 바뀐 몸으로 살아간다.

어쨌든 몸이 다시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누구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게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했기에 둘은 정보를 교환한다.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 다음날부터 정상 등교하며 그럴싸한 방법은 몽땅 시도해보기 시작한다. 수영장으로 몰래 잠입해 하나 둘 셋 하고 뛰어들어보기도 하고, 서로의 머리를 부딪쳐보기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보기도 했다. 모두 헛수고였고 둘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전히 바뀐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사카히로는 다짐한다. 미즈무라가 미즈무라의 인생을 언제 되찾아도 상관없도록, 미즈무라가 마음 아파할 필요 없도록, 완벽하게 미즈무라로 살아가며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감쪽같이 속여 내고야 말겠다고.

둘은 자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갑자기 돌아가면 다시 적응하기 쉽도록 일기를 적기로 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은 사실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일한 서로에게 위로받는 시간이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자 반 포기 상태로 지내게 되는 둘. 하지만 몸이 바뀔 때를 대비해 조심하며 최대한 미즈무라 위주로 살아가려는 사카히쿠와 달리, 미즈무라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매사에 미즈무라의 의견을 묻는 사카히쿠, "너도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답하는 미즈무라. 부단히 그녀를 연기해 왔는데, 배신감마저 느끼고 마는 사카히쿠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즈무라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만다. 그 누구도 내가 아닌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다. 이들도 잘 알고 있지만, 내 삶이 아닌 상대의 삶을 살고 있기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땐 자기도 모르게 좌절하고 만다.

나이지만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니지만 나인 삶을 살아가는 둘. 본의 아니게 서로의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서로의 모든 것을 빼앗으며 살아왔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이질감은 견디기 힘든 것일 테다.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을 둘의 외로움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둘의 모습이 어쩐지 아프게 느껴지는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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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아저씨
김은주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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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만 반짝하는 선수가 되지 않겠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빠른 육상선수 다연. 100m 12초 03이란 기록을 세웠을 때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더랬다. 그러나 열일곱이 되던 해 세계 신기록 갱신을 코앞에 두고 그만 발목 부상을 입게 된다. 비교적 깨끗하게(?) 부러진 발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붙었지만, 어쩐 일인지 달리려고만 하면 고꾸라지거나 나뒹굴고 만다. 분명히 부상이 다 나았음에도 달리지 못하는 다연을 두고 담임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코치는 반쯤 포기한 눈치다. 엄마는 아마도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며 다연을 달래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잡아준다. 그러나 여전히 크게 나아진 건 없다.

"아주 쉬워, 아홉 살 때부터 하던 거니까." 스스로를 다잡아보지만 왼쪽 발목이 부러진 것처럼 타오르는 통증에 발을 딛기조차 어렵다. 매일 좌절감을 맛보는 다연은 한강에서 우연히 어떤 아저씨와 만나게 되고, 아저씨에게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는다. 이상할 건 없다. 그 아저씨가 '구구 아저씨', 즉 비둘기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떻게 비둘기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연은 거의 매일 구구 아저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상처로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도, 운동을 반쯤 포기하고 학업에 전념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구구 아저씨에게 털어놓고 나면 한층 후련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점차 '어떤 문제는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별 게 아닌 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던 중 소중한 기록이 담겨 있던 휴대폰을 분실하게 되고 분실된 휴대폰들이 홍콩으로 팔려간다는 정보를 입수, 구구 아저씨, 프린스 아저씨(마찬가지로 비둘기...)와 함께 홍콩으로 향하게 된다. 비둘기는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좌절하지만, 곧장 항구로 노선을 틀어 어느 배에 잠입해 홍콩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촉망받는 육상선수에서 비둘기와 함께 홍콩으로 밀항하는 여고생이라니, 다연의 상황이 황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이가 흔들리면 엄마가 실로 이를 묶은 다음 이마를 세게 쳐서 이를 뽑아주시곤 했는데, 이마가 너무 아파서 이 아픈 건 일도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다연 역시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서(?) 발목 통증도 심리적인 압박도 잊고 다시 달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다연이 누구의 도움도 거절한 채 혼자 좌절했다면 홍콩행은 물론이고 다시는 달리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살다 보면 때론 남의 도움을 받아도 될 만큼 충분히 힘든 상태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구구 아저씨》는 도움을 받는 게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준다. 난 구구 아저씨를 만나길 기대하기엔 너무 늙었으니, 내가 누군가의 구구 아저씨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그애에게 꼭 이야기해줘야지. "새 출발 하지 마. 넌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냥 킵 고잉해, 킵 고잉, 너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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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 Vol. 1 : 개인의 취향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 - 영감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 CUP Vol. 1 : 개인의 취향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
길스토리 출판사업부 지음 / 길스토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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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있어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에게는 영화가, 어떤 이에게는 책이, 어떤 이에게는 자연이 영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무언가가 영감이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고. 내가 상업적인 글쓰기를 하던 시절에도 그랬고 오롯이 내 글을 만지고 싶어하는 지금도 늘 글의 물꼬를 틀 수 있게 해주는 건 작은 영감이기에, 나는 영감이 예술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영감을 얻을까? 너무 궁금했다. 배우 김남길과 크리에이터 9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 《개인의 취향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를 읽어보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인터뷰집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아홉 사람의 인생, 그 큰 부분이 담겨 있다 보니 곱씹으며 읽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에는 등단한 시인이자 가수인 강백수, 유튜브 오느른 채널을 운영하는 MBC 최별 프로듀서,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대표이자 배우인 김남길을 비롯한 9인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오느른 채널 운영자 겸 MBC 프로듀서인 최별 님의 인터뷰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함께한 오느른의 영상이 화제였던 걸 기억한다. 남편도 나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여서, 새벽녘 어스름을 뚫고 울려 퍼지는 피아노 연주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전북 김제의 청보리밭 위에 피아노를 놓고 유키 구라모토를 데려다 연주하게 할 생각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최 프로듀서의 집에 대한 관심은 가족의 리즈 시절에 살았던 집과 닮은 폐가를 구입하게 했고, 그 집을 아늑하게 꾸미게 했으며, '오느른'이라는 채널을 가능하게 했다. 매일 무계획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겠다는 의지가 유키 구라모토 시골길 라이브 콘서트를 가능하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지.

시인이자 가수인 강백수 씨는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꿀 수 있는 꿈의 범위가 한정된다는 인상을 받고, 흙수저와 금수저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쓰기도 했다고. 가사에서 아예 '커다란 꿈을 갖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했다는 대목에선 어쩐지 입맛이 썼다. 취업도 힘들고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요즘 세대가 들으면 뼈 아플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예술가의 영감이란 이렇듯 무심하게 다가와 폐부를 찌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엘 트라바이의 대표인 플로리스트 박소희 씨는 한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는 유연하게 가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영감이 뭐였냐 묻는 것도 폭력적이었다는 말이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한 것뿐이고, 의미를 떠나서 그저 작품이 멋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판단은 보는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그녀의 말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작가는 역시 작품으로 말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배우 겸 길스토리 대표인 김남길 씨의 인터뷰가 마지막을 장식했는데, 배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던 내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이라는 안정적인 공간이 있어야 일도 하고 꿈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아트 빌리지' 캠페인이라고 한다. 도시와 연계해 지방의 빈 집을 활용, 예술가들이 계속 좋은 활동을 할 수 있게 주거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현재 통영의 달아마을에 예술가를 위한 아트빌리지가 조성 중이라고. 예술은 가난하다는 말처럼 현실적인 제약으로 꿈을 포기하는 예술인들이 많은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주거 걱정 없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감'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영감을 얻을까에 대한 답변은 다양했다. 다만 억지로 무언가 하려는 마음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할 때의 쾌감, 특별한 행동으로 영감을 얻으려는 것보다는 일상 속의 관찰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해나가라는 것만은 일맥상통했다. "제가 가진 영감을 통해 계속 쓰고자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과 더 잘하고 싶은 일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라는 인터뷰이의 말처럼, 하고 싶은 일과 더 잘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해 작은 영감도 소홀히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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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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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단 한 번도 도쿄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오모리 리카. 책이나 독서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대형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한 건 오로지 규모가 큰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간의 물류센터와 반품센터 연수를 끝내고 정식 발령을 받던 날, 여직원들은 보통 본사로 발령이 난다는 관계를 깨고(?) 오사카 지사 영업부로 발령을 받게 된다.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게 된 리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사카로 향하지만 거듭되는 실수와 드센 오사카 사람들의 태도에 어쩐지 주눅이 들고 만다. 잘해보려고 했던 일마저 실수였다는 걸 알아챘을 때 리카는 한계에 다다른 나머지 '왜 내가 다이한에 왔고, 왜 영업부고, 왜 이런 장소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고 만다. 담당 부장 시이나는 리카에게 '고바야시 서점'에 가보라고 지시하고, 그곳에서 그녀는 고바야시 서점의 사장인 고바야시 유미코를 처음 만나게 된다.

고바야시 서점은 손님이 오긴 올까 싶은 한적한 동네의 자그마한 서점인데, 설상가상 책만큼이나 우산이 잔뜩 걸려 있는 기이한(?) 서점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리카에게 유미코는 우산을 팔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방을 지속해나가기 위해 우산을 팔았는데, 부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우산 가게'라고 생각하고 팔았더니 소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선은 하나씩이라도 괜찮으니 일이나 회사,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하나씩 발견해보라는 미션을 준다. 이렇게 회사에 들어왔으면서 일도 회사도 사람도 좋아하지 못하면 아깝다는 말과 함께.

유미코의 조언대로 리카는 사수와 상사의 장점을 하나씩 찾아보고,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리해보기 시작한다. 부족한 독서량을 채우기 위해 매일 출퇴근길 책을 읽는가하면 거래하는 서점의 북페어와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하면서 점차 일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고, '저 같은 게...'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던 리카는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쓰면 정말 얄팍해져.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은데!"라는 유미코의 격려를 들으며 점차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일본 아마가사키에 있는 고바야시 서점의 실제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해 만든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유미코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좀처럼 해낼 수 없을 법한 판매량을 달성한다든지, 굉장히 유명한 작가가 자진해서 강연을 하겠다고 한다든지 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꾸며낸 이야기가 줄 수 없는 뭉클함을 선사해줬다. 작은 동네 서점이라고 꿈을 작게 가졌다면 사람들 역시 고바야시 서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고, 이런 소설집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 진심을 다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사장 내외의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고바야시 서점은 '아마존을 이겨 본 경험이 있는' 서점으로 자리하지 않았을까.

어리바리하고 자신감 없던 신입사원 리카는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혼자 즐기는 물건이 아닌, 뛰어난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바야시 서점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나간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법도 해낼 수 있게 된 리카의 모습이 실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도 이런 토닥임을 받았다면 더 높이 점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 좋은 질투감과 함께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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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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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보호해 주려다 얼떨결에 시작한 조건부 연애, 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실한 사랑에 빠져버린 두 사람. 가미야 도루와 히노 마오리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던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스핀오프작인 《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가 출간되었다. 스핀오프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이들의 마음 아픈 사랑이 떠올라 다시금 가슴이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 이치조 마사키는 전작을 통해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는다 해도 사랑했던 감정만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주인공 히노 마오리의 친구 '와타야 이즈미'를 주인공으로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거기에 또 하나,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와타야 이즈미의 마음 아픈 짝사랑 이야기도 함께.

예상했겠지만 이즈미의 짝사랑 상대는 절친 히노 마오리의 남자친구, 가미야 도루였다. 사실 전작에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던 애정전선이라 읽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매일 기억이 리셋되어 전날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히노, 그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이 도루와 이즈미인데...이걸 뻔히 알면서 그런 히노의 남자친구를 몰래 좋아하다니! 히노가 상처받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던, 내가 아는 그 이즈미가 맞나 싶어서 몇 번이나 책장을 열었다 덮어야 했다. 전작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
이즈미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대학 후배 나루세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루가 처음 고백했을 때 히노가 했던 말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즐겁게 만나는 것 자체에 집중하자고 생각하고 몇 번을 만났지만 금세 그만둬버렸다. 어쩐지 도루를 닮아 있는 나루세가 이즈미는 두려웠을 것이다. 다정한 사람은 싫다고 밀어냈지만 사실은 그 다정함이 너무나도 그리웠고, 그럼에도 도루의 빈자리를 도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채워낼까봐 겁이 났을 테니까. 나루세를 밀어내고 여전히 도루에 대한 그리움과 히노에 대한 미안함에 괴로워하는 이즈미, 그런 이즈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고 자꾸만 마음이 가는 나루세, 기억을 되찾고 잃어버린 기억 너머 지워져있던 도루의 존재를 깨닫게 된 히노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이야기의 흐름은 또 다른 방향을 타고 흘러간다.

'다정한 사람은 싫다. 다정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은 일찍 죽으니까.' 매일의 히노를 필사적으로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던 도루는 이제 없고, 도루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앞모습이 아닌 옆모습을 떠올려야 하는 이즈미는 드러내고 슬퍼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이즈미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되찾을까 궁금했는데, 세상에 없어도 마음은 손상되거나 변하는 게 아니라는 기존 소설에서의 스탠스와 같았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과 '눈물'은 사라진다 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실, 그걸 뒤늦게나마 깨달은 이즈미의 삶과 사랑이 앞으로는 조금 더 편안해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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