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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 문화집시 페페의 감성에세이
곽효정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눈을 떠서 베란다 창밖을 통해서 보여지는 산의 푸르른 빛깔과 낯익은 풍경을 보면서
시작하는 하루가 마음에 상쾌함을 불어넣어 주는 청신호가 된다.
사시사철 푸른 빛의 소나무 숲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겨울의 설경과 여름에 우거져서 흔들리는
나무들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면 나만의 무아도취에 빠져서 잠시동안 황홀경에 접어든다.
이 시간만큼은 좋은생각과 즐거운 생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시간이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주신것에 대해서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것에 대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람에게 특별히 감정이라는 선물을 주셔서 기쁠 때 기뻐할 수 있고 슬플 때 울 수 있고
화내고 미워하고 감사하고 웃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이런 감정이 없었다면 저 위대한 자연을 보면서 그 누가 아름다운 시적인 언어를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며 그 누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정의 교류를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앞 베란다 창은 유일하게 내가 우거진 녹색빛의 나무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던 유일한 통로였다. 언제든 내가 시간을 내기만 하면
숲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음껏 사색하고 생각을 조리하던 시간이었다.
이런 좋은 집도 이젠 이사를 가게 되면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참 서글퍼진다.
누리던 것, 즐겨하던 것을 누릴 수없게 된다는 것이 서글프고 자연과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며
누군가와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서글프다. 비가 오는 날 창에 빗물이 서려 내리면
나도 함께 슬퍼졌었고 바람이 몹시도 부는 날이면 내 마음도 함께 많이 흔들렸고 눈이 하얗게 내려 샇
쌓이는 날이면 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곤 했었다. 내 감정과 창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 사물들은 늘 동일 선상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 간다는 것이 인간과 인간간의 교류가 첫째이고 그 다음이 자연과 사람과의 교류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저자 곽효정을 문화집시라 부른다. 서른쯤의 많지 않은 나이에 매 순간 감동하며
매일을 축제처럼 살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을 춤추둣 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누구나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나 누리는 삶을 통해서든 자신이 꿈꾸는 것들을 춤추듯 하고 있는 사람은
매 순간이 춤추는 시간들이다. 백수일 때도 세계 각처를 돌아 다니며 여행을 했던 저자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일상들과 사람들과의 낯선 시간들을 낯설지 않게 전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농익은 필력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두글자로 요약하라면 사람과의 만남과 자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위에서
서두에 자연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었다.
이 책의 기록은 저자의 이런 일상의 춤의 글들이다. 음악도 상쾌하고 발랄한 음악과 잔잔하게 깔리는 단조의
음악이 있듯이 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장조의 상쾌함과 단조의 서글픔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 뒤치락 엎치락 하며 엮어가는 것이 춤이고 여행이고 우리의 일상들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진 감정의 실들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감정에 그대로 응죽되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시가 되고
춤이 되고 자신만의 문화코드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언어를 풀어내는 솜씨가 놀랍다는 사실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언어의 유희랄까?
아무튼 언어를 갖고 자유자재로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언어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인들의 언어만 반짝이게 빛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의 언어에서도 시인 못지않은
보석같은 언어를 발견해서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감성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문화집시의 감성에세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모래위를 걷다가 예쁜 조약돌을 발견해서 기쁜 마음으로 줍는 사람의 마음이랄까? 작지만 작지 않고
좁지만 좁지 않은 그의 시선 안에서, 감성을 공유하며 마음껏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글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고 감정을 말갛게 정화시켜준 좋은 책이었다.
명언은 아니지만 나를 울리게 하고 가슴을 내려 치는 글들, 마음에 하나 하나 꽃히는 글들을 통해서
명언 이상의 감동을 받은 책이어서 언젠가 여행을 하게 되어 자연을 볼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그 때는 이 책을 꼭 가져가서 풍성한 생각들을 다시 이 책에 담아오고 싶다.
"지금도 엄마는 소포를 보낼 때 가끔 쪽지를 넣는다. 예전에 틀렸던 부분에서 또 맞춤법이 틀렸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맺힌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떠나고 난 후의 그리움 또한 사랑하는 방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별이 끝이 될 수 없는 이유를
검게 타 버린 나무들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 사랑은 늘 나를 반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