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그런 것이다 - 신념과 맹신과 광신의 차이를 말하다! 온전한 삶 시리즈 1
송태근 지음 / 포이에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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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맹신,획일화란 단어를 생각하면서
 자동선반대에 올려져  가지런히 줄을 맞춰,  한치 오차도 없이 빠른 속도로  나오는 신문을 생각해 본다. 자동생산 방식의 제품처럼 믿음이 어떤 틀에 맞춰 정형화 될 수 있을까?란 질문앞에 곤혹 스러워진다. 믿음이 뿜어내는 열정과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연약한 것을 먹을 믿음이 있는가 하면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격체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단에서 때로는 획일화된 믿음을 강요하는 말씀을 듣게 되면, 듣는 나 자신은 너무 괴롭다. '이 사람의 믿음이  이랬으니 당신도 그렇게 해라'라는 말씀은 믿음이 아닌 행위를  바라보게 만들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추앙하게 만든다.
과연 믿음의 상한선이 사람에게서 끝나는 '여기까지' 밖에 되지 않는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출발은 내가 서 있는 자리 밑바닥에서 부터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보좌까지 연결 되어 끝나야하고 그 중간에는 아무것도 끼어들 수 없어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고 그마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오늘, 교회가 믿음 있는자를 치켜 세우고 믿음에 대한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다. 전도 잘하는 교인,헌금 많이 하는 교인,봉사 많이 하는 교인,기도 많이 하는 교인 등 등..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눈에 비친 믿음있는자의 모습일 뿐이다. 이들의 열심이, 이들의 물질이, 저들의 봉사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야 높임을 받을 수 있다. 믿음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신념과 맹신이 자리하고 있고 그 곳에는 단지 인간의 열심만 녹아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사회의 모습이지 참다운 기독교의 모습은 아니다. 최고를 가리고 잘난 사람을 가리는것이 교회에도 일반화 되어 있는데  교회는 사회의 한 기관이 아니다. 실적만을 강조하는 게시판을 바라보며 일주일에 몇번씩은 사회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저들의 인간적인 열심 앞에 낙오된 자가 되어 그렇지 못한 자신은 믿음이 없는 자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그러나 송태근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그래도 아직은 믿음이 설 자리가 남아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이 책은,  모든것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이끄신다는 대명제를 관통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서 나온것 같은  믿음일지라도 말이다. 노아의 사역과 그의 의로운점이라든가, 아브라함이 믿음이 조상이 된것이라든가, 신약에 이르러 사도 바울의 사역과 환란의 이김도 모두 하나님의 은헤의 기둥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어를 풀어 가면서 또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들어왔던 내용을 뒤집으면서까지 믿음의 진의를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 그렇다. 나에게서 나온  믿음조차도
 항상,언제까지나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함을 수십 수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을 보면서, 설교를 들으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나  야곱이 천사와 겨뤄 이긴 믿음에 대해서, 다윗같은 믿음,바울같은  열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수차례 들어왔다. 그러나 믿음은 이들을 본 받는것이 아니다.  그들의 일과 행적에만 촛점을 맞추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그 사람과  행한 일에만 몰두하게  될것이고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성경의 수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있고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들의 믿음을 열거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보아야 할것은 이들의 믿음을 믿음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충성하는 자가 믿음 있는자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교회의 행위로 믿음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내가 세상에서 믿음있는 자를 보겠느냐?'란 말씀을 떠 올려 볼 때 그만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보여 주기가 여려움울 알아야 한다.

 

믿음 있는 자란, 나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순간 순간의 일들이 하나님이 하신 사역임을 인정하고 '내가~'로 설 자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대체하는 사람이다.
신념과 맹신의 차이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믿음을 갖고 이것을 구별해서 볼 줄 아는 자만이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맹신이 믿음으로 뒤바껴서 오히려 진실한 믿음이 가짜 취급을 받는다.
 '믿음은 곧 충성'이라는 공식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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