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세계사 - 동양으로부터의 선물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지음, 조미라.김라현 옮김 / 열린세상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 차나 한 잔 합시다. 오후의 햇살이 대숲을 화사하게 비추고, 샘물은 기쁨에 들떠 흐르고, 탕관에서 솔잎 사이로 부는 산들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 덧없는 것을 꿈꿨던 어리석음과 사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서성거립시다.

-오카쿠라 카쿠조 <차의 책>, 1906(p. 61)

 

이렇게 기이한 향기의 정령을 숨긴 잎은,

어떤 마법에 걸린 낙원에서 왔는가?

아담 이전의 인간이 최초로 본 꽃일까,

비탄에 잠긴 영혼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감미로운 약이여.

-프랜시스 S. 살투스, <> 19세기

요즘 차 가게에 가면 압도당할 정도로 다양한 차를 볼 수 있다. 녹차, 홍차, 백차, 가향차, 훈연차, 전차, 백호은침, 주차, 센차, 첫물차, 두물차, 운남, 기문, 아삼, 닐기리너무 많아서 무엇을 살지 결정하기 어렵다. 생산지도 인도에서 중국, 아르헨티나, 케냐, 터키에서 타이완, 인도네시아까지 지구 전역에 퍼져 있다. (p. 273)

 

'차茶'는 한 글자에 무수히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코 끝이 시린 날 따뜻한 찻잔을 양손으로 그러모아 쥐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소한 차 한 잔을 마실 때의 여유와 풍요로움, 사위가 어둑어둑한 늦은 밤 작은 불빛 아래 향이 좋은 한 잔의 차를 놓고 나와 만나는 뜻깊은 시간, 우리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공손을 표현하는 정성 어린 차대접이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 앉아 시간만큼 쌓였던 이야기를 나눌 때 필수적인 차 한 잔, 차가운 날씨에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야외 데이트에서는 또 어떤가. 어느 시간 다녀왔던 한없이 푸르러 짙푸른 길고 길게 구렁처럼 펼쳐진 차 밭이 떠오르기도 한다. 잎파리에 묻어 있는 물방울들하며 그 곳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킨다.

 

차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혹은 커피나 코코아가 없는 세계는? 뜨거운 한 잔으로 마음의 평온을 찾으며 그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잠을 깨우는 음료, 오후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음료가 없는 세계란? 티 브레이크의 즐거움, 퀵 에스프레소, 또는 추운 날의 뜨거운 코코아 한 잔에 맛있는 간식이 없는 세계란? 이런 세계가 바로 1600년대의 유럽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시 유럽은 참으로 쓸쓸한 구세계다. (p. 102)

 

 

<차의 세계사>는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몇 천년 전 중국에서부터 일본, 인도, 영국 등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의료,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에 관련한 차茶 역사 책이다. 지금 우리를 마음껏 차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기나긴 시간의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아편이라는 주제에 이끌려 이 책을 내게 된 저자는 1부에서는 초기의 차와 관련된 오래된 이야기나 문화적인 면을, 2부에서는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차에 관련된 일화, 유럽으로의 전래, 3부에서는 차에 관련된 유익한 정보들을 들려준다. 신세계에서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으며 영국 식민지 무역의 주범이 되기도 했던 차의 비극과 때로는 로맨스와 유머까지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잘 꿰고 엮어냈다.

 

차의 세계는 수천 년 전 어느 신비로운 오후, 농업의 신이자 대담한 약초학자인 신농이 중국 남부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서 최초의 차 한 잔을 마신 그날부터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p. 353) 중국 차문화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당 시대의 대표적인 두 인물이 육우와 노동이다. 육우가 치초의 차 연대기 작가였다면, 약간 후대의 노동(775-835)은 차를 노래한 시인이었다. (p. 33)

 

차를 마시는 행위를 뜻하는 '끽다'를 즐기던 수 천년 전의 동양, '차노유('라는 다도 혹은 귀한 손님과 마주하던 일본의 고결한 행위에서 우리는 차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다도 선생이자 리큐의 손자인 센소탄은 시적인 형태로 자신만의 차노유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차노유의 본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림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가 내는 소리라고 답하련다. (p. 84)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650년 옥스퍼드에 문을 열었다. 피프스가 차를 주문하기 불과 십 년 전의 일이었다. 이 년 후에, ‘파스카로제의 머리라는 런던의 첫 번째 커피 하우스가 콘힐의 세인트 미쉘 앨리에 문을 열고 그 시대의 신상품인 커피와 차, 코코아를 팔았다. (p. 115) 

이 새로운 음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뇌의 화학작용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고객들은 차와 더불어 신문 사설이나 아직 인쇄가 안 된 가장 최근의 신선한 뉴스를 접하고, 가능한 모든 주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단지 일 페니로 따뜻한 음료의 안락함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식을 향유할 수 있었다. 때문에 커피 하우스가 ‘1페니 대학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커피 하우스는 짧은 시간 안에 런던에서 활기찬 사교의 장이자 일상생활에서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p. 116)

 

이렇듯 커피 하우스는 '1페니 대학'이라 불리며 사교의 장이 되어 민주주의의 태동이 되기도 했고, 여성 청원서와 남성 청원서를 발표하는 국가적 부부싸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차의 상업적 성공은 여성해방을 불러왔고, 금주운동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또 삼백년 가까이 차사업을 하는 트와이닝 브랜드며, 자기를 만드는 본차이나 브랜드며 경제적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반면 설탕 노예 생산이나 비인간적 아편무역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낳기도 했다.

페어뱅크는 <차이나 워치>에서 인도에서 중국으로의 아편무역이 근대에 있어서 가장 오래 지속된 체계적인 국제 범죄였다라고 정의했다. (p. 215)

 

 

*차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부분을 모아보았다.

1. 사람들은 종종 차가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식물들로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물어본다. 하지만 차는 한 종류이다. 정원에 심는 동백과의 친척이기도 한 카멜리아의 한 종류인 카멜리아 시넨시스가 바로 그것이다. (p. 274)

 

2. 아삼, 실론 또는 아프리카 차 같은 진한 홍차에 넣는 우유나 크림의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상대적으로 연한 차에 우유가 첨가된다면 섬세한 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녹차는 우유 먼저도 아니고 차 먼저도 아니며, 어떤 유제품도 넣는걸 추천하지 않는다. 만약 녹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면, 틀림없이 당신에게 차신의 분노가 내릴 것이다! (p. 291)

 

3. 슬프다고 해야 할까, 서양에서 차를 마시는 예술적인 행위를 파괴하는 티백을 발명한 것은 바로 미국인이었다. 왜 티백을 좋지 않은 물건이라고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인 티백 상품이 낮은 등급의 차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티백은 물을 재빨리 갈색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잎차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p. 292-3) 

차 애호가들은 찻잎이 찻주전자에서 자유롭게 퍼지는 것을 선호한다. 소위 말려 있거나 꼬여 있는 잎이 차가 우러나는 동안 풀리는 것을 묘사할 때 잎차의 몸부림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차가 완전히 우러나는 데에는 시간과 공간, 인내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차의 몸부림이 차의 성질을 충분하게 끌어내준다고 주장한다. (p. 295)

 

4. 차에 있어서 색은 매우 중요한데, 어떤 차는 이름에 들어 있는 색깔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오렌지 페코는 오렌지 색이나 과일 오렌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 (p. 299)

 

5. 차는 개인적 기호에 달려 있으며, 긴 머리글자를 가진 차만이 좋은 차라고 할 수는 없다. 역시 팁이 많이 함유된 차가 인기가 있고 비싸지만, 많은 사람들은 찻잎이 크고 농후한 맛을 가진 차를 좋아한다. (p. 310)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차시장을 장악하면서 제3국의 아동노동착취, 저임금, 임금체불을 비롯한 끔찍한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살벌한 세계에서 우리의 작고 개별적인 행동이 확고부동하게 퍼진 문제들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때로는 공정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작은 행동이 중요하게 될 수 있다. 바로 공정무역 차Fair trade tea이다. (p. 365)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와 도넛 체인인 던킨 도넛은 2003년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공정무역 커피로 교체했는데, 국제적 브랜드로는 던킨이 최초이다. (p. 370) 공정무역 차 한 잔을 선택하는 단순하면서 의식 있는 행위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 그리고 공정무역은 사회적으로 무시되었던 생산자와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소비자 사이의 경제적 거리를 좁혀주는 다리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행위이며, 우리에게 물건을 제공해주는 지구 전역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내는 희망의 작은 신호이기도 하다. (p. 372-373)

 

<차의 세계사>를 통해 차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것을 느꼈다. 이 시간 이후로 차 한 잔을 마실 때 결코 그 전과 같은 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수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편리와 편의로 인해 프랜차이즈 브랜드 샵을 자주 이용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몇몇의 소수는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등 착한 커피 소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대신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는 차회사를 통해 제3국의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착한 소비를 장려하도록 노력해야 겠다.

 

 

지는 태양의 꺼져가는 황혼 속에 형형색색의 화사한 옷을 둘러쓴 여자들이 줄을 지어, 다원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 그녀들의 발걸음은 완벽하여 파도처럼 굽이치며, 머리 위에 우아하게 균형 잡은 바구니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애처로운 후렴구를 부르거나 수다와 웃음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며, 멀리서 들리는 아른거리는 희미한 콧노래처럼 기분 좋게 귓가에 부딪친다.

차 노동자들에 대한 시적인 환상은 수십 년에 걸쳐 영속되어 왔다. (p. 357-358)

 

 

일기일회 一期一會‘, 일본어로 이치고 이치에라는 차 모임에 관한 특별한 개념은 선사상을 표현해준다. 한 번에 한 모임이라는 뜻은 모든 순간이 단 한 번에 일어난다는 의미로, 모든 만남이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이며 두 번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모여서 차를 마시는 것은 그들 모두가 만남의 유일무이함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세계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를 의식하는 기회로서 만남의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이 마음의 수행이며 무상을 의식함이며, 존재의 소중함이다.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라고 불교 승려이자 노벨평화상 후보인 틱낫한이 말했다. 틱낫한은 마음챙김 수행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잔의 차와 서로의 존재를 즐기기 위한 차 명상은 수행의 한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수행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 과거에 얽매여 시달린다면, 아직도 미래를 걱정하고 있거나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마음이 빼앗겼거나 노여움에 끌려다닌다면 당신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완전히 이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삶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정말 살아 있기 위해서, 깊은 생명을 느끼기 위해, 당신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차명상은 마음을 붙잡는 것을 익히고, 당신의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도와준다.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게 하고 차를 마실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합일된다. 당신은 현재이며 당신이 마시는 차 또한 현실이다. 이것이 진정한 음다이다. (p. 39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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