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쿡 - 누들로드 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이욱정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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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운 것은 한 접시의 요리를 앞에 놓고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는 법이었고, 음식을 만드는 일과 요리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었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요리, 다른 문화의 음식에 감탄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었고, 좋은 음식과 그것을 우리에게 준 자연에 감사하는 법이었다. (p. 317 에필로그)

 

 

<누들로드>를 들어본 적 있는가?

C에게 <쿡쿡>의 저자 이욱정에 대해 설명하며 물었더니 대뜸 "에로만화영화 '누들누드'?" 잘 알고있노라며 자신만만했다. 그렇다. 일부의 사람들은 '누들누드'와 혼동할 수 있다. 저자도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조연출을 모집했더니 '누들누드'와 혼동한 지원자가 19금 소재를 공중파에서 방송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들누드>는 KBS에서 제작한 국수를 통해 본 인류 음식 문명사로 실크로드마냥 세계 국수의 역사를 추적하는 유명 다큐멘터리다.

 

다채로운 음식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먹거리에 있어 진정한 올림픽 레이스가 펼쳐지는 런던에서 그의 말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런던에 모여 있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은 거듭되는 이종교배로 진화해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런더너들은 요리에 관해 철저한 코즈모폴리턴, 지독한 잡식성이 되었다. 내가 런던에 매혹된 것도 바로 이 문화적 믹스 앤 매치였다. (p. 296-297)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으론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이지만 더 나아가선 요리를 통한 세계인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요리학교가 위치한 영국 런던의 도시에 대한, 영국의 요리 프로그램과 스타 셰프들에 대한, 서점 빽빽하게 들어찬 수많은 요리책에 대한, 요리학교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동기들에 대한, 진정한 한식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가 르 코르동 블뢰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2년, 그것도 엄청 바쁜 2년이었지만 그 2년동안 그는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에 걸맞은 만큼의 배움을 얻은 것 같다.  

 

일단 남미나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라틴문화권 친구들은 떠들썩하고 화끈하다. 요리하는 스타일도 거침없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게 되면 좀 시끄럽지만 그들과 어울리면 항상 유쾌하다. 서유럽 국가 출신들은 자기주장과 요구가 분명하고 논리적이다. 시연수업 중 셰프가 교과서의 레시피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요리를 하면 대충 넘어가지 않고 바로 따져 묻는다. 깍쟁이들이 많은 편이다.

아시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손들고 질문하는 법이 없는 반면, 교실 맨 앞자리에 앉는 공부벌레들이 많다. 손놀림이 서양인들에 비해 날렵해서인지 요리 테크닉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섬세하다. 담배인심도 좋고 노트도 잘 빌려주는 등 정이 많은 편이다. (p. 277)

 

서양친구들은 논쟁에 능하고 자기주장에 거침없다. 한국에서 촬영하다 보면 말 잘하는 셰프 찾기가 갈치살에서 잔가시 골라내는 것만큼 어려운데, 유럽에서는 학생들조차도 자기 요리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고 표현이 유창했다.

나는 좋은 요리사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셰프의 언어능력은 자신의 요리를 타인에게 설명한다는 뜻을 넘어서, 레스토랑의 격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셰프가 식탁에 멋지게 나타나 전남 신안에서 막 잡아온 신선한 병어로 만든 이 요리는 이러저러한 화이트와인에 곁들여 드시면 기막힌 풍미를 느낄 수 있는데 이 화이트와인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하고 설명하는 순간, 손님은 그 요리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다. 요리에 담긴 스토리를 들려주는 셰프의 달변은 식탁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p. 301)

 

<쿡쿡>은 '누들로드 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PD답게 시종일관 요리학교와 요리사와 요리에 관해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나 역시 책의 소재에 앞서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이끌렸던 것이 사실이다. 책 앞날개의 저자소개 '음식을 제대로 알아야 좋은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전 재산을 털어 2년간의 요리유학을 떠난다.'는 철저한 프로의식에 입각한 요리학교 입문이란 용기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것도 직장 10년차 40대란 나이에. 몇 개월 전 온갖 짐을 걸머쥐고 히스로 공항에 내리던 날이 새삼스러웠다. 날씨는 추웠고 하늘은 우중충했다. 그러나 나는 우울에 침잠되지도, 비관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영국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p. 198)

 

그리고 코르동 블뢰에서의 요리유학을 <셰프의 탄생 - 500일의 레시피>란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고은 시인의 <만인보>('시대'와 '사람'에 대해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시집. 4001편, 주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 5,600여명이 등장한다.)같은 음식 전문 PD를 꿈꾸며  <요리인류>(2014년 방영) 8부작을 준비중이다.

결국 그가 하고픈 말은 인간은 요리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는 건 코스요리와 비슷하다. 세상맛을 배우는 애피타이저(전채요리)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목표를 성취해야 하는 메인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즐기는 달콤한 디저트가 있다. 식당에서야 전채-메인-디저트가 순서대로 이어지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이의 인생은 달콤한 디저트부터 먼저 즐기다가 메인요리라는 도전의 시간을 영원히 맛보지 못하고 끝나기도 한다. 반면에, 일에 미쳐 버둥거리다가 달콤향긋한 디저트를 아예 맛보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평생 자기 길을 못 찾고 변죽만 울리다가 끝나는 전채요리 인생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코스요리는 어찌 보면 공평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순서도 제각각이다. (p. 8-9)

 

인생은 퀴진인가, 파티세리인가? 내 멋대로 살아도 인생 후반전에 되살아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열린 세계일까? 아니면 뿌린 대로 거둘 수밖에 없어 결국 정해진 법칙에 따라 결말이 나는 닫힌 세계일까? (p. 245)

 

* KBS스페셜 <셰프의 탄생 - 500일의 레시피> 다시보기

http://www.tudou.com/programs/view/ZTMb6ghhe9Y/?resourceId=0_06_02_99?fr=2

 

  

좋은 레스토랑이, 그것도 수많은 좋은 레스토랑이 나오려면 50, 아니 100년은 족히 걸린다. 뛰어난 눈과 귀와 입을 가진 오너 셰프가 몇만 명을 넘어 몇백만 명이 있어야 하고, 그걸 알아보는 안목을 갖춘 고객이 몇백만 명 혹은 몇천만 명은 있어야 비로소 그 나라의 음식이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다. (p.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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