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봄이 와 있다 - 서서히 피어나고 점점 진해지는 서른 살 나의 이야기
김규리 지음 / 예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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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는 늘 예기치 않았던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찾아온다. 걷다보면 생각은 담백해지고, 삶은 단순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일에만 몰두하고, 걸으면서 만나는 것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길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김남희,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중에서)

 

 

이 가을에 '봄' 느낌 물씬 나는 에세이라니,

그러나 고난의 이십대를 살아낸 김규리에게 서른의 지금은 그야말로 봄이다.

 

서서히 피어나고 점점 진해지는 서른살 나의 이야기

"마음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꽃이 활짝 필 차례다"

 

 

스물다섯을 살고 있는 H가 하룻밤 자고 나면 훌쩍 서른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던 그 순간의 불안한 눈빛이 연상되었다. 정작 나만 하더라도 젊은 것 빼고는 좋은 것, 잘 되는 것이 별로 없는 진퇴양난의 미숙한 20대 후반을 살고 있기에 열번이고 백번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젊을 때의 청춘을 떠올리는 것에 진저리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많은 것에 도전하고 열렬히 원하고 갈망하지만 안되는 것은 끝내 안된다는 진실과 마주하는 나이,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청춘들도 순간의 시간들이 두려워 지는 나이. 그래서 서른, 혹은 서른 즈음이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슬픈 상상을 하는 나이. 정말 서른이 되고서야 봄이 찾아온 김규리 그녀의 이야기다.

 

서른을 넘기고서야 나는 나에게서 조금씩 편해졌다. 부족한 나를 용서하기로 한 순간부터 말이다. 완벽하고자 했으나 그렇지 못하였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었고, 또 부끄러웠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나를 놔주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

내가 아는 지금의 내가 때가 되면 또 변할지도 모른다. 20대에 나의 30대를 가늠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미래의 불안함보단 오늘을 알알이 즐기며 사는 것. 아픔도 즐기고 고통도 즐기고 땀도 흘리고 즐거움은 더 즐기고. 그리고 가장 감사함을 가슴에 새기며.  (에필로그)

 

김규리의 <내 앞에 봄이 와 있다>는 기대한 그대로 그야말로 말마따나 그녀의 일기다. 다소 신변잡기적이고 뒤죽박죽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녀 인생의 순간 순간을 글로 쓴 기억 모음. 대체적으로 유명 연예인의 에세이가 그렇듯 다소 쉽고 가볍게 읽히고, 어쩌면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착한 사람이란 포장지로 잘 싸여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음모론이 꿈틀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거룩한 당신, 부모님에 대한 글에서 만큼은 그녀의 진정 어린 사랑과 후회,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지하철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 혼자 눈물흘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뻔 했다. 거인 같았던 부모님이 부쩍 초라해 보일 때, 어느새 늙고 병들어 작아져 계실 때, 심지어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떠나실 때 자식의 벼락같은 슬픔은 크고 작음이 없이 같을 것이다.

 

나는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 그리고 지금도 늘 그런 마음이다. (p. 69)

 

그래도, 그래도 해야지. 표현은 못 하셔도 마음 깊이 즐거워하실 테니까.

아버지, 당신은 내게 피와 살을 주셨고 사랑과 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제가 비록 당신께 젊음을 돌려드릴 순 없지만 늘어가는 주름만큼이나 행복한 일 만들어 드릴게요. 당신의 웃음이 제겐 희망입니다.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p. 99)

 

책은 전반적으로 짧막한 그녀의 생각 혹은 좋은 글 따위,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자 사랑의 표현, 아프리카 봉사활동에서 배운 삶의 자세와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낯선 여행지에서의 낭만 가득한 일기 외 여배우로서의 삶과 일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의 자기 믿음, 수영을 처음 배우던 날의 깨달음 같은 추억부터 누워만 있던 육체와 나아가 마음을 함께 일으키고 다잡아준 등산 예찬, 최근 작 <무신> 송이를 연기하던 마음까지. 사실 내가 김규리라는 배우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현정아 사랑해> 드라마 제목때문이었다. 꼭 내게 하는 달콤한 말 같았기에. 이후 미인도에서도 아름다웠고 특히 <댄싱 위드 스타>에서는 최고의 노력과 인내를 보여주었다. 김규리 그녀는 한 사람으로서 또 대한민국의 여배우로서 조금씩 더 성장하고 발전하여 아름다워지고 있는 중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서 또 다른 하루를 급히 시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다. 피렌체에 왔다고 그 성격이 변할 리 없다. (p. 172)

산을 오르며 깨달았다. 나에겐 언제나 변명이 많았음을. (p. 252)

 

책은 물론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작은 위로를 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자 김규리 스스로가 책을 냄으로써 느낀 만족과 행복이다. 그래. 그녀는 이 책으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졌을 것 같다. 그럼 됐다.

 

 

내가 이른 아침에 너를 찾아가도, 내가 늦은 밤에 너를 찾아가도, 이유는 묻지 말고 반갑게 나를 맞아주면 좋겠어. 이유가 중요하지만,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날도 있지. 내가 울고 있거든, 내가 웃고 있거든, 나를 꼭 안아줘.

그래주면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질 거야. (박광수, <앗싸라비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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