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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로 다시 읽는 자본주의 세계사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이동하며 세계의 미래를 바꿔왔는가?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시간의 학문인 역사학을 다루는 저작에서 공간적 관점을 장착하려는 시도는 무척이나 반갑다. 그 시도들 중에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반가운 것은 역시 지도 자료의 수록이다.
평자가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를 처음 만났을 때 잔뜩 신났던 것은 매 지면을 형형색색의 지도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최훈 작가의 《삼국전투기》』가 삼국지 팬덤의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에는, 제갈량 사후의 스토리를 풍부하게 풀어낸 공로가 가장 컸겠지만, 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술·전황 설명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이 틀림없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지리로 다시 읽”겠다는 컨셉을 밝힌 본서는 어떤 점에서 매력을 갖는가?
우선, 본서는 저자가 상업 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수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순으로 규정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10개 국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구성을 취한다. 개별 국가의 성쇠 과정과 함께, 이것이 자본주의의 전개 국면에서 갖는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이때 저자는 사례별로 1~2개의 지도를 빠짐없이 제시함으로써, 각 국가들의 지정·지경학적 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리적 관점의 ‘필살기’는 이른바 ‘다중 스케일’ 접근법(multiscalar approach)이다. 어떤 현상을 지역, 국가, 글로벌 등 다양한 지리적 스케일(scale)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사’, ‘한국사’, ‘프랑스사’, ‘중국사’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되던 일국적 역사 서술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다. 본서도 물론 국가별 목차를 따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개별 국가의 성쇠가 초국적 스케일의 현상(특히,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설명하는데 중점을 둔다. 가령, 스페인의 발흥이 야기한 기축통화의 등장과 첫 세계화, 네덜란드의 성장과 신용경제의 활성화, 영국이 이끈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에 뒤따르게 된 자본의 자유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을 교양 수준에서 적절하게 훑어내고 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한 권의 책에 10개의 사례를 담아내기에는 확실히 그 깊이에 한계가 있다. 벌써 10여 년도 지난 학부 시절, 중국 CCTV에서 제작했다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崛起)》의 책 시리즈를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7개 강대국(영국, 일본, 네덜란드,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포르투갈, 미국)들이 흥성한 과정과 그 요인을 짚는 기획이었는데, 본서와 꽤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껴졌다. 전문 서적은 부담스럽지만 국가별 성쇠라는 점에서 본서보다는 깊은 수준을 원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추천한다. (물론, 내용의 어조에 있어서 중국 국영방송국이 기획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 다중스케일이라는 분석틀도 본서가 전면에 제시하는 캐치프레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유용하게는 활용되지 못한 느낌이다. 각 부의 마지막에 ‘다중스케일로 톺아보기’라는 섹션을 마련해서 다중스케일의 ‘쓸모’가 강조되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진입장벽으로 느껴지는 분석틀이 제시된 것에 비해서, 국제적 맥락과 국가적 맥락은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평이한 문장으로도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중’이라는 명칭이 와닿을 만큼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스케일의 상호작용 사례가 강조되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본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지리적 관점으로 교양 수준에서 전달한다는 취지를 충실하게 다루고 있기에, 경제사를 처음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