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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 - 언어학자와 떠나는 매력적인 역사 기행
김동섭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12월
평점 :
최근 서점가를 보면 “(00개) 도시로 읽는 000사(史)” 류의 책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야흐로 대중역사서 시장에서 ‘도시사’가 하나의 테마로 등장한 듯하다.
도시사 측면의 접근법은 꽤 흥미롭게 여겨졌지만, 평자는 본서 이전에 이런 유형의 서적을 집어 든 경험이 없었다. 첫째는 구성상 여러 도시들의 사례를 얕고 넓게 다루는 데 그칠 것이라는 우려, 둘째는 이런 병렬적 구성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제기되기 쉽지 않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후자의 우려와 관련해서, 본서는 제1부를 통해 나름의 주제의식을 제기한다. 근대 이전의 수도는 오늘날과 달리 그 중심성이 완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주의 거처인 궁정은 각지를 순회하거나, 의회·사법부와 같은 정치·행정적 기능이 다른 도시들로 분산되어 있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의 사례에서는 ‘왕이 없는 수도’의 면모를, 독일 베를린의 사례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이 가진 ‘수도가 없는 제국’의 면모를 다룬다. 영국 런던의 사례에서는 런던 내에서도 수도 중심부를 둘러싼 런던 시티와 웨스트민스터의 경합을 보여준다. 특히, 근대 이전의 유럽에서 수도의 정치·행정적 기능(군주의 즉위 장소, 정궁의 위치, 궁전 도시, 입법부의 소재지 등)이 분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독일과 프랑스의 도시들을 비교(177쪽)하거나, 프랑스(파리와 생드니)와 영국(런던 시티와 웨스트민스터)의 사례를 비교(158~161쪽)한 것은 본서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본서가 역사 지리학자 노먼 파운즈(Norman Pounds)의 논의를 빌려서 30개의 수도들을 중핵 수도, 신중핵 수도, 이중핵 수도, 다중핵 수도로 분류한 것도, 각국의 수도들이 불변의 유구한 연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함의한다.
하지만, 본서는 평자가 예감했던 첫 번째 우려는 해소하지 못했다. 상당한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30개의 수도는 너무 많다. 관심이 가는 도시를 골라 읽는 재미가 있지만, 대체로는 서술의 깊이가 다소 얕다.
도시사라는 장르의 서술은 쉽지 않다. 도시의 공간적 구조 및 계획적 특징, 생활사, 사건사 등의 미시적 속성을 조명하면서도, 도시가 속한 국가의 거시적인 역사적 맥락도 짚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본서도 이러한 균형의 묘를 잡는 데에는 조금 서툴렀다고 생각된다. 특히, 도시의 미시적 속성에 대해서는 서유럽의 일부 대도시(파리, 런던 등)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가령,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는, 본서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도시계획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혁신적인 신도시”였다. 그렇다면, 그 도시계획이 가진 혁신성과 한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짚어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본서는 그 논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리아에 대한 11쪽의 서술 중에서 8쪽은 브라질의 역사를 개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거시적 역사의 맥을 짚는 서술도 개인적으로 거칠고 산만하다고 느껴져서,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불친절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숙련된(?) 역사 동호인의 입장에서는 내용적인 깊이가 충분하지는 못하다.
혹시 본서와 같은 “(00개) 도시로 읽는 000사” 유형의 도서보다 깊이 있는 '옴니버스형' 도시사 서적을 접하고 싶다면 『18세기 도시』(정병설 외, 2018)와 같이 전문 역사학자들이 특정 시기나 테마를 선정한 저작을 읽는 것이 어떨까 한다. 오히려 이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개별 도시에 대한 미시적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유럽 도시 기행』(유시민, 2019·2022)처럼 몇 개의 도시들을 깊이 있는 인문학적 감상으로 풀어낸 에세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저작이지 않을까 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