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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 강대국을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폴 몰런드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5월
평점 :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물가의 상승은 생산과 인구의 증가를 결정하고, 이 지표들은 실질임금과 대체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생산과 인구가 증가하는 ‘진보’의 장면 속에는 대중들의 복지는 ‘희생’된다는 멋진 수사와 함께 말이다. 오늘날의 경제사가들이 이 명제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브로델의 명제는 시기에 따라 인구가 증감을 거듭하던 ‘맬서스의 덫(Malthusian trap)’ 아래에서의 이야기이다.
인구학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짚어보는 본서의 시간적 무대는 맬서스의 덫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는 산업화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야기이다. 서구를 기점으로 출생률 증가와 영아 사망률 감소,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인구 폭발이 시작되었고, 이 전환은 세계 각지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들은 출생률이 저하되면서 인구 정체와 고령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일견, 우리의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지이지만 재미는 디테일에 있다. 필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해석들을 두 가지 꼭지 정도로 갈무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총인구 규모와 그 유동성이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성패를 가르는 분명한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중남미 대륙의 식민화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인구만으로는 그 지역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 경영에 한계가 컸고,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매각했던 까닭 역시 이곳에 진출할 자국민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구 폭발을 가장 처음 경험한 영국제도의 앵글로색슨인들은 북미와 호주에 정착하여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일본 역시 산업화에 진입하면서 인구가 급성장하기는 했으나, 인구 성장률에 비해서 조선과 만주에 유입되는 일본인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한반도에 있는 일본인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물론, 제국주의 일본의 실패는 세계대전의 패전에 기인하지만, 근원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오늘날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회 불안정 요인 중 하나로 낮은 중위 연령을 꼽고 있다. 연령과 폭력성 간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젊은 사회일수록 더 역동적이고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동·아프리카의 혼란상의 기저에는 정치·경제·사회적 실패와 정체가 핵심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보통의 역사적 서술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 ‘혈기왕성’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회의 호전성·폭력성에 대한 인구학적 해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핵가족 사회는 대가족 사회보다 대체로 호전성이 덜하다. 가족 구성원 1명의 사망이 다가오는 의미는 소규모 가족일수록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역사적 해석뿐만 아니라, 인구통계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좋은 참고가 된다. ‘출생률’과 ‘출산율’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젠더적 시각에 따라 ‘출산율’을 ‘출생률’로 대체하는 용례가 적지 않은데, 인구통계학적 용어로서는 양자는 엄밀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본서는 총인구를 분모로 하여 계산하는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을 분모로 하는 출산율 간의 차이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의 차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국내의 사례로 바꾸어 서술하고자 한다. 전라남도는 2023년(잠정) 합계출산율이 0.97로 전국 9개 도의 평균(0.81)을 상회하지만, 조출생률은 4.3으로 전국 도 평균(4.6)을 하회한다. 이는 전라남도의 가임기 여성들이 아이들을 비교적 많이 출산함에도 불과하고, 이 지역 자체에 가임기 여성의 비율이 적으므로 지역 전체 인구와 대비해서는 출생아가 오히려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본서는 인구구조에 관한 지표들을 종합적·다각적으로 검토할 때, 어떤 국가와 사회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구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초유의 화두가 된 지금,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발판으로서 본서의 일독을 권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