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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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억을 간직하는 것만으로, 그 추억을 누릴 수 없다. 자기가 지닌 향수(鄕愁)를 다른 이에게 흘려주고, 그 향수(香水)에 취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추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이지 스레드굿이 활약하던 시기의 휘슬스톱과 에벌린과 니니 스레드굿이 대화를 나누는 1980년대 버밍햄의 요양원. 중년의 여인 에벌린은 남편 에드를 따라 시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을 찾는다. 그러나 에벌린은 그녀 자신과 그녀가 만든 요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시어머니를 오래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순응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녀만의 불행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퇴적물 같은 (흔히들 그래야 한다고 믿는) 여자의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남자들은 물론이고 같은 여자들조차 여자는 다 왜 그래?’ 하고 쉽게 의문을 가질 수 없다. 편견을 상식처럼 믿고 그 껍질 안에서 살던 에벌린은 우연히 니니 스레드굿(스레드굿 부인)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는 불편하게 받아들이지만 점차 니니 스레드굿의 이야기, 그리고 니니 스레드굿이라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 자주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는 점차 새로운 자신을 알아간다.

 에벌린은, 그리고 독자는 휘슬스톱을 여행하면서 매력적인 여러 사람들을 발견한다. 특히 이지 스레드굿과 루스는 그들의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포근한 마음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물론 항상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만 있는 건 아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 팔을 잃어버린 장애인, 레즈비언 또는 여성. 그리고 기차역이 사라진 휘슬스톱이라는 작은 도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예나 지금이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소수자,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문젯거리’, ‘연구대상’, ‘어떻게 좀 해 볼까라는 식으로 인식할 때, 휘슬스톱의 카페는 어떤 누구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접한다. 토마토라고 해서 빨간 토마토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페니 플래그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이상하게도 내가 휘슬스톱에서 살았던 것 같은 당연한 인상을 준다. 나도 니니 스레드굿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나도 거기서 살았는걸, 하고 말이다. 휘슬스톱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휘슬스톱 주간지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때 허탈함을 느낀 건 그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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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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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작은 선택이 여러 시작점 중 하나가 된다는 걸 알고 나서, 전전긍긍했다. 모든 일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앞으로 있을 내 인생과 나를 둘러싼 세계에 영향을 미칠 일을 알고 있고, 그런 경우 신중하다 못해 전전긍긍했다. 지금 내가 있기까지 나 역시 많은 선택을 했고, 누군가의 시작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으니까. 물론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시작'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존 맥그리거의 <너무나 많은 시작>은 특별하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어나서 살다가 사랑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과 절망을 오가는 가정생활을 보내고, 직장동료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시킬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만의 특별한 스토리텔링으로 절망을 보듬어 준다.

 이야기는 데이비드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여행을 준비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짧을지 모르나 과거를 더듬어가는 시간은 길다. 그는 물건들 속에 깃든 과거를 하나하나 회상하기도 하고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데이비드가 옛 물건에 흥미를 갖고,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한 것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역사를 굳이 장엄한 유적에서 찾지 않는다. 일상, 사회, 사람, 가족. 곁에 있는 흔한 것들로부터 역사를 발굴해낸다. 독자가 이 물건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해 하면 작가는 큐레이터가 되어 이야기 해 준다. 무덤덤한 듯 시적인 문장과 서정적인 어조가 독자를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매혹된 독자는 등장인물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 때로는 사소한, 때로는 중대한 선택이 다양한 시작을 만들어 내는 걸 지켜보게 만든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시작>이라는 전시가 끝날 때 쯤, 이렇게 말한다. 봤지, 이제 알겠지. 누구나 절망할 때도 있고 열정을 지닐 때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웃어도 되고 울어도 돼.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로 한 가운데에서 펑크가 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냐. 절망스러운 시작이라고 할 수도 없어. 오히려 즐거운 에피소드가 시작하는 지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메리와 데이비드가 만났을 때,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너도 당황해해도 돼. 안타까워해도 되고, 허탈하게 웃어도 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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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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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이하 <실프>)이라니 제목이 길다. 원제는 소설 속 형사의 이름과 같은 <실프Schilf>다. 실프는 또한 갈대라는 뜻이다. 갈대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존재다. 바람은 한 곳에서만 불어오는 게 아닌 만큼 갈대 역시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

 

 <실프>는 갈대의 움직임처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이다. 초반에 일어난 리암유괴사건을 보면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시간여행자의 살인사건을 구경하다보면 SF소설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 제바스티안과 오스카의 대화를 보면 교양과학소설인가 싶다. 그런데 실프가 사색하는 내용을 보면 이런, 관념소설인가? 이처럼 <실프>에는 하나의 장르로 확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가 들어있다. 치정살인, 질투, 물리학, 추리, 심리. 그러나 이것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시간’이다.

 

 이 소설에서 물리학자 제바스티안과 그의 친구 오스카는 서로에게 하나 밖에 없는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대립적인 관계이다. 제바스티안은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평행 우주 이론’을 믿는다. 반면에 오스카는 단 하나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려 하며 ‘만물 이론’을 주장한다. 그러다 제바스티안의 아들 리암이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가는 길에 유괴당하고 제바스티안은 “다벨링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실행에 옮긴다. 한편 이러한 사건에 참여(?)하게 된 노형사 실프는 자기만의 수사방법을 이용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줄거리를 보고 이 소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헐리우드식 스릴러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실프>에서 다루는 내용은 주로 물리학이나 시간이지만 <실프>가 그려내는 철학은 삶의 본질이다. 작품은 수많은 확률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 중 몇 가지의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그 모습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실프>에서 나타나는 선택의 순간, 그것은 행복이 산산히 부서지는 과거를 후회하게 만든다. 뒤늦은 후회 속에서 사람이 사는 삶이 간단치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작가 율리 체는 특유의 은유로 작가의 사유를 작품 속에 녹인다. 쉽지 않게 건진 문장을 곱씹어 본다.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는 이 둘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야.


 

 삶이라는 근간(根幹)에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물론 나무에는 수많은 가지가 뿔처럼 솟아나고, 꽃잎이 핀다. 그것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뿌리에 물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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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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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악기마다 연주하는 손가락이 다르겠지만 보통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이하 ‘녹턴’)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다섯 개인가 보다. 마치 연작소설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공통된 소재가 있다. 바로 음악 또는 황혼.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화자(話者)인 연주가들은 보통 아마추어들이다. 실력이 그렇다기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인지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에 대해 고민한다. 이대로 이런 데서 이 정도로 해도 되는 건가? 내 재능은 고작 이 정도 뿐인가? 왜 사람들은 내 음악이 아니라 내 외모를 가지고 나를 판단하려는 거지? 본인이 고민하기도 하고, 타인이 대신 걱정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들이 각자의 고민을 갖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별해야 하는 가수, 가수와 이별하고 성형수술을 한 배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남편과 사이가 나빠진 한 여자 등등. 앞에서 말한 연주가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면 이들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화자가 아니라 린디 가드너, 토니 가드너, 독일인 부부와 같은 주변인물들인 것 같다. 소설에서는 특정한 주인공도 없지만 특별히 불필요한 인물도 없다. 작가는 인물들의 비중을 조절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써나간다. 일상에서 종종 보기도 하는, 공감이 가는 인물상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싶을 정도로 개성적인 인물도 있다. 그러나 특별히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없다.

 

 그의 작품 <남아 있는 나날>처럼, <녹턴> 역시 잔잔한 흐름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뛰어 오르는 듯한 위트가 느껴진다. 마치 이야기하는 데 연륜이 있는 노인이 손자에게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그 말투에는 어떤 부분을 과장하지도 않고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해서 빼지도 않는 절제가 담겨 있다. 그 노인은 자기가 젊었을 적 음악을 연주하던 시절을 되뇌인다. 그러나 너무 고리타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활발하지도 않게 얘기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은 그런 느낌이다. 그 담박한 이야기를 감상한 나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리고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노을이 하늘에 번지고 잠자리 떼가 공중을 맴돈다. 나는 한 명의 지휘자처럼 잠자리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마치 노을이라는 악보에 잠자리 음표가 흐르는 것처럼. 평소에 이렇게까지 감상적인 사람은 아닌데. 이건 내가 과장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러니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은 평범한 사람을 지휘자로 만들었다.

 

 덧붙인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화자든 주변인물들이든 그들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보장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생이니까. 만일 당신이 너무 밝은 인생을 살거나 너무 어두운 인생을 산다고 여긴다면 이 책에 나오는 ‘황혼’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것은 너무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잠재우기도 밝혀주기도 하는 물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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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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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리뷰

 

인간은 모두 대지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대지를 종족 혹은 국가라는 선으로 분할한다. 각각의 경계선들은 그 농도나 굵기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혹은 그 영역을 더욱 넓히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유를 갈망하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 땅 위에서 자유를 찾는 길이 전쟁 밖에 없다는 듯이. 그러나 전쟁은 희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의 패배자에게는 크나큰 절망과 허탈함만을 안겨준다. 전쟁이 끝난 후 올란나가 사기 당했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자유와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대표작『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에서는 자유를 희망하는 인간이 드라마틱하게 나온다. 일꾼 으그우, 유학파 지식인 올란나와 오데니그보, 영국인 리처드, 사업가 카이네네. 우리에게는 생소한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라는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적인 사건들이 어우러지면서 이야기가 전개 된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제각각 성격이 뚜렷하다. 으그우는 유학을 다녀오지도, 학교를 다니지도 않은 전형적인 나이지리아 태생이다. 그러나 점점 오데니그보에게 공부와 영어를 배우고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간다.

올란나는 기업가의 딸로서 영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 태생의 여성이라는 조건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전쟁을 전후로 하여 그녀는 지식인의 면모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질긴 여성으로 변모한다.

올란나의 연인 오데니그보 또한 지식인이다. 그는 이상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전쟁을 전후로,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술수로 망가져간다. 그가 지녔던 이상은 전쟁이 심화될수록 그 기세가 옅어진다.

영국인 리처드는 일반적인 영국인의 시선으로 비아프라 전쟁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우월감에 빠진 영국인이나 미국인을 혐오하고 순수한 시선으로 비아프라를 바라본다.

카이네네는 올란나의 쌍둥이 자매다. 그녀는 올란나와 달리 매우 현실적인 기업가다. 카이네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지만 나중에는 얼음이 녹듯 인간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는 비아프라 전쟁의 긴박함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질투, 분노, 사랑, 연민, 슬픔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작가가 더욱 무게를 둔 부분은 역사적 사건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아닐까한다. 어찌보면 신파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고 솔직한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희망 역시 전쟁이나 정치인이 아닌 인간 개개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비록 상대방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지만 결국 주인공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믿어왔고 앞으로도 속는 셈치고 믿어보고 싶어 하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인간을 희망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서로를 나누는 경계선을 지워야겠지. 희망은 반쪽짜리 태양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밝히지 않지만 밝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주니까. 그리고 그것이 절망도 안겨주지만 희망도 안겨주는 인간과 마찬가지니까.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설득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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