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 지구 끝에서도 살아남는 작고 여린 잎에 숨은 강인함에 대하여
곽준명 지음 / 현대지성 / 2026년 6월
평점 :
우리는 흔히 대화를 '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의 주고받음'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스파티필름을 곁에 두고 키워오며, 나는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의 교감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작은 포트 하나로 시작했던 스파티필름은 어느덧 자녀 수의 두 배가 넘는 화분으로 번성했고, 그 세월만큼 우리의 마음도 닿아 있었다.
책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특히 **제2장 〈대화하는 식물〉**은 내가 지난 20년간 경험했던 그 신비로운 순간들이 단지 인간의 일방적인 감상이나 착각이 아니었음을 과학의 언어로 입증해 준다.
책은 식물이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간 중심적 편견을 깨트린다. 식물은 뿌리와 잎, 기공을 통해 주변의 진동을 감지하고, 화학물질(휘발성 유기화합물)과 공기를 통해 끊임없이 타자와 소통한다. 답답할까 싶어 하루 두 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고, 기공이 막힐까 정성스레 욕실로 데려가 전신샤워를 시켜주던 나의 손길, 그리고 잔잔히 틀어주던 음악과 "늘 푸르러서 이쁘다"라며 건넨 다정한 말들. 책을 읽는 내내 스파티필름은 내가 보낸 그 모든 공기의 진동과 정성 어린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듣고' 응답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장 경이로웠던 순간은 어느 해인가 하얀 꽃대가 올라왔을 때였다. 솟아오르는 꽃대를 위해 제 주변의 잎들을 스스로 시들게 만들며 모든 에너지와 생명력을 쏟아붓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마음을 담아 말했다.
"꽃 안 피워도 된다. 너 자체의 푸름으로 이미 충분하니 애쓰지 마라.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참 이쁘다."
그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그 말이 있은 후, 거짓말처럼 스파티필름은 더 이상 무리하게 꽃대를 올려 보이지 않았다. 책의 2장에서 설명하듯, 식물은 외부의 자극과 환경적 신호를 수용하여 자신의 생리적 상태를 조절하고 응답하는 놀라운 대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내가 건넨 다정한 음성의 진동과 안정적인 돌봄의 환경 속에서, 녀석은 굳이 번식을 위한 '무리한 애씀(꽃피움)' 대신 '안정적인 생장(푸르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나와의 대화를 완성했던 것이다.
우리는 식물이 가만히 멈춰 서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스파티필름은 20년 동안 나의 다정한 언어를 머금고 푸른 잎으로 대답해주고 있었다.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는 단순한 과학 교양서를 넘어선다. 내 베란다의 작은 식물이 사실은 나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던 다정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오늘도 초록빛 잎을 묵묵히 넓혀가는 스파티필름에게 다가가 가만히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오늘도 말없이, 그러나 누구보다 깊게 대화하고 있다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