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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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phor,

은유(metaphor) meta(over) + phora(carrying) , 의미의 이동과 전환을 의미한다. '-같다', '-듯하다'와 같이 비교를 나타내는 말을 숨기고 압축된 직유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은유(隱喩)라고 한다. 은유의 형태는 A=B이지만, 은유의 의미는 A×B이다.

 

 

하늘이 운다'가 뭐지?” 

"
비가 오는 거죠

"
그래. 그게 은유야."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가운데

저자소개>
시인이자 산책자, 문장노동자인 장석주가 들려주는 '은유(隱喩)'에 대한 이야기다.

월간 '시와 표현'에 연재한 '권두시론' 24편을 다듬어 책으로 묶어 펴냈다.

저자는 시가 생성되는 비밀의 핵심을 은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은유를 설명하는 데 효과적인 문장들과 은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그는 "시는 말의 볼모이고, 시의 말들은 필경 은유의 볼모다"라고 강조하며 "은유는 시의 숨결이고 심장 박동, 시의 알파이고, 오메가다"고 강조한다

시를 가르치는 모든 교과서들이 한결같이 은유에 대해 말하는 이유도, 그만큼 은유의 비중이 큰 까닭인데, 그는 "()가 은유에서 시작해 은유에서 끝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이 오롯이 시에 관한 책이며 시 쓰기와 읽기, 더 나아가 시의 심연과 기적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땅의 시인이 사물과 세계의 다양한 중재자이자 예언자 없는 시대의 예언자라고 믿고, 시인과 시들이 그 나라 '국민의 영적 건강'을 책임진다는 한 멕시코 시인의 말을 믿기 때문에 세상에 '쓸모 있는' 시인과 시에 대해 말하려 했다는 이유도 덧붙인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월트 휘트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윌리엄 블레이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틸라 요제프 같은 외국 작가의 시와 김소월, 이상, 서정주, 윤동주, 김수영, 고은, 정현종, 송재학, 송찬호, 황인숙, 이장욱, 김근, 강정, 이원, 김언희, 심언주, 김민정, 오은, 홍일표, 류경무, 유진목, 제페토에 이르기까지 나라 안 여러 시인의 시를 두루 함께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풍성한 은유의 문장을 만날 수 있는데, 시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론이다. 장석주는 서문에서 "이 책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이제 이 책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이 책을 손에 든 당신이다"고 글을 남겼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더 잘 알 것이다.

책받침에 브룩실즈, 소피마르소로 도배를 하다 김소월, 이상, 서정주, 윤동주 등등 책갈피에 코팅으로 도배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대학교 주변 그리고 도로변 보도블록으로 폭력성도 배웠다.

마치 일주일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주일예배를 다닌다고나 할까?

그것은 어느 때보다 전쟁 속에서 과학도 문학도 가장 잘 발전하고 꽃피우는 시절은 역사와 고전이 말해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들 대부분이 가장 많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것이다.

제 기억으로는 피천득 작가도 이 때 알았다.

지난 5 25일 남양주시에 있는 모란공원묘원에서 있었던 선생님의 10주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다.

나 같이 철저한 물질적 인간이 순수함에 오점이라도 남길까 걱정이지만 그 분의 [인연] 수필집이 괜찮다 한다.

살아 생전 조금이라도 그 분을 더 알고 더 많은 말이라도 섞어 봤다면 언젠가 내 자녀에 자녀에게 그 분을 소개하는 큰 영광이었을 텐데 말이다.

은유는 이제 나에겐 마치 목마른 작은 새가 옹달샘에 목을 축이고 꼴이다.

장석주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이제 이 책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이 책을 손에 든 당신이다"

은유는 우리들의 삶이다.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간사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단지 깨우치던 깨우치지 않던 우리 삶 속 은유를 좀 더 자세히 알려주는 것이다.

시는 보고 듣고 만지고 등등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대상을 의미의 이동과 전환으로 표현한다.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아주 많이 쉽게 설명한다.

마치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ㄱ,,ㄷ 이 아니라 아빠, 엄마라고 말하고 싶은 게다.

남에게 나를 알리고 얘기하고 싶은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그것이 내가 하는 목적과 수단으로 시를 쓰는 사람에게 얘기하는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마치 어두운 밤, 밝은 빛에 환하게 비쳐진 빈 노트에 무엇인가 쓰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을 그저 써 보고 싶은

오늘 우연한 만남 속에 사랑이란 글자가 온 가슴을 흔들고 옹달샘인줄 알았던 심장은 넓은 태평양 한가운데 속에서 오직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항해하는 뱃사람에게 나침반이다. (저 하늘 별자리라고 하기엔……)

이 책이 말한다.

바람에 부는 소리도 내 마음 속에 가둘 수 있다는 사실

 


 

시는 눈먼 부엉이의 노래, 바람과 파도의 외침, 늑대들의 울부짖음, 땅이 내쉬는 깊은 한숨이다. 시인은 이 모든 소리를 듣고 시로 빚어낸다. 시는 단지 의미의 수사학적인 응고 물이 아니다. 시는 말의 춤, 사유의 무늬, 생명의 약동이다. 시는 수천 밤의 고독과 술병을 집약하고, 세계를 향해 뻗치는 감각의 촉수들은 천지만물의 생리와 섭리를 더듬는다. --- p.15

은유는 시적인 것의 번뜩임, 시적인 것의 불꽃이다. 은유는 빛을 흩뿌리지만 윤리의 맥락에서 포획되지는 않는다. 포획되는 것이 아니라 불꽃처럼 “창조된 것”이다. --- p.36 

나쁜 은유, 해로운 은유란 없다. 오직 명석한 은유와 덜 명석한 은유가 있을 뿐이다. --- p.39

시인의 상상력은 그 세계와 부딪칠 때 동심원을 그리며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세계의 확장이자 의미 영역의 확장이다. 시인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장미가 무엇이고, 먼지가 무엇이고, 비가 무엇이고, 애탄 근심이 무엇이고, 시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직도 시가 가능한가를 물어야 한다. --- p.97

좋은 시들은 가장 나쁜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남음으로 이끈다. 환멸과 지리멸렬 속에서도 자진하지 않고, 기어코 살도록 돕는다. --- p.106

예언자 없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구원을 약속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소임을 맡을 적임자는 시인이고 철학자지만 오늘의 시인은 철학을 잃고, 철학자는 시를 잃었다. --- p.160

현실의 비극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진 채로 그저 입 다물고 있을 때 서정시인은 자신이 아주 멍청한 존재임을 드러낼 뿐이다. 세계를 뒤흔드는 고요한 사상과 폭풍을 일으키는 가장 조용한 언어를 갖지 못한 서정시인은 비루해진다. --- p.232~233

시는 번개들을 낚아채는 피뢰침이다. 우리는 마른 하늘에 떠다니는 번개들을 보지만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오직 직관의 시들만이 번개들을 낚아채는 기적을 만든다. 시는 논증이나 의미의 집적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전에도 없는 말이요,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상징이다--- 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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