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교감 완역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중일기] 어쩌면 흔하디 흔한 충무공의 전쟁 중 일기다. 드라마로 몇 해전에 불멸의 이순신으로 시청자의 뜨거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특별한다.
 그 특별하다는 것은 400년 간 누락된 문장들을 모두 수록한 교감 완역본이다.
 이순신 장군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 (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 합 9책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이순신(1545∼1598)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이다.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벼슬을 시작했다.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진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그러나 전서본은 의도적인 누락이나 오독, 미해독된 글씨가 적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초고본을 다시 탈초해 간행한 ‘난중일기초’는 현재까지 가장 대표적인 전범으로 간주돼 왔지만 이 책에도 미해독된 글자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지난 2004년 문화재청의 문화재 디지털 정보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초고본의 탈초를 담당하게 된 노 교수는 당시 글자 형태를 이룬 글자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빠짐없이 판독하는 한편, 기존 판본의 인명과 지명 등의 오류 100여 곳을 발견해 바로잡는 등 완역을 시도했다. 이번 교감·완역본은 노 교수가 2005년 출간했던 ‘난중일기 완역본’에 2008년 새로 발굴한 일기 32일치를 추가하고 자세한 주석과 함께 모든 판본을 일일이 대조해 교감한 원문을 수록한 것이다.
 아직도 미해군에서조차 해상 전투의 전쟁기록서에 나와 있으며, 생도전술교육시전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해상전투의 현대 시대에도 그 당시 해상전술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의 내용 중 가장 오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적 숙제로 외우던 " 긴 칼차고 ......, " 생각이 난다. 항상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정신은 아마도 일제시대에도 6.25 그리고 지금의 5.18 광주 항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옮긴이 노교수의 문화재청 사업에 참여 했지만, 그 오랜 세월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는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대조하고 판독하여 오류와 오역을 빠짐없이 대조하여 판독했으니, 노 교수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기존 판본을 가지고 처리해도 무방?했을 것을 노 교수님은 많은 시간과 힘들 작업을 교수님 노고에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노 교수님에게 배운 제자들은 정말 행복한 학생들일 겁니다.
 더불어 민음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가장 완벽에 가까운 완역본을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고품질의 내용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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