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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ㅣ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평점 :
봄의 제전
지은이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옮긴이 최파일
펴냄곳 (주)글항아리
초판발행 2022년 3월 14일
20세기 전반기 우리의 현대적 의식, 해방에 대한 우리의 강박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출현했는지, 대전쟁이라 불렸던 제1차 세계대전이 그러한 의식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1913년 5월 29일 밤, 파리의 새로 지어진 샹젤리제 극장 무대에 올려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으로 시작한다. 진짜 예술, 진정한 예술을 기대하고 극장을 채운 우아한 파리 관객들은 도입부 부터 울려 퍼진 구슬픈 바순 선율에 휘파람으로 항의 하고 막이 오르자 마자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무용수의 발놀림에 야유를 퍼붓는다. 도덕적 양념 없이 윤리 이전의 원시적 인간이 자연속에서 그려진 작품에 경악한것이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오후에 수영." 이것이 카프카의 1914년 8월 2일 일기의 간결한 도입부였다. P. 105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이 베를린을 전쟁의 함성으로 들끓게 한다. 물질주의, 진부함, 위선으로 대변되는 당대 유럽에 맞서는 진정성, 진실, 자기 실현의 추구 같은 독일 중간계급의 소위 미학적 쾌락 같은 전쟁이 시작된다. 독일은 자신의 봄의 제전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크리스마스였던지! 패커 상병은 독일군과 싸우는 대신, 같은 지구에 머물던 그의 연대와 여단, 사단의 동료들 그리고 플랑드르 영국군 전선의 무수한 병사와 더불어 두 참호선 사이의 무인지대로 나가 적군과 어울렸다. 독일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P.167-P.168
전쟁이 일찍 끝나리라는 독일의 예상과 달리 참호전의 깊은 수렁에 빠진다. 1914년 12월 말,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영국군과 독일군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비공식적 휴전에 들어간다. 양측이 축구 시합까지 했다는 풍문까지 있을정도로 교류한다. 영토와 관련없이 참전한 영국군에게는 영국신사의 패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이 시기 잠깐의 휴전을 이끌었을것이라 설명한다.
전쟁은 점점 소모전으로 변한다. 서구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규범들을 해체하고자 했던 독일의 입장에서는 전쟁 규칙을 깨는데 거리낌이 덜했다. 민간인 학살, 문화재 파괴에 이어 화학무기까지 동원된다. 모든걸 동원해서 이제 독일은 유럽의 심장이 되고자 한다.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지키고자 참전한 영국, 프랑스와 달리 독일인에게 전쟁이란 거대한 이상 실현을 위한 의지와 에너지의 투쟁이었다. 승리자든 패배자든 전쟁은 큰 변화를 야기한다. 전후 문화사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소모전으로 진행된 전쟁은 집단적 해석보다는 개인의 경험에 천착한다. 전후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역사가의 입지가 좁아지고 문학을 필두로 예술가의 영향이 점점 커지게 된다.
한편으로 전쟁초기 참호전에서 맺어진 동료애는 무솔리니의 트린체로크라치아 즉, 참호정치로 이어져 이는 파시즘의 기초가 된다. 무명용사의 화신,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그 이름없는 힘의 체험은 괴물 히틀러 탄생의 토대가 된다. 히틀러가 주창한 나치즘은 새로운 인간의 창조가 목표다. 실제 나가 아닌 거울에 비친 나다. 아리안민족의 우월을 강조하면서 유댄인 학살을 자행했지만 히틀러도 괴벨스도 괴링도 잘생기고 우월한 신체의 소유자가 아니다. 오히려 보잘것 없는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거울에 비친 나를 착각함으로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것이다. 벙커에서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전까지 수상 관저내 매점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책의 끝을 이렇게 장식한다.
1945년에 어느 독일 유행가의 제목은 `끝없는 봄이다!' 였다.
다다이즘과 기치로 대표되는 1900년대초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역사와 잘 버무려 낸 문화사이자 전쟁사책이라 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