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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쥐는 관계
전우진 지음 / 북다 / 2026년 10월
평점 :
사람의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꽤 쓸모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연애를 이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예상대로 흐르지 않았다. 사랑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초능력까지 끼어드니 일이 복잡해졌다.
주인공 이곤은 시작부터 되는 일이 없다. 형에게 줄 돈을 대신 보관하다 코인 사기에 휘말리고,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월세 사기까지 당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연히 천사를 돕고 이상한 능력을 얻는다. 특정인의 DNA를 이용하면 누군가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큐피드 능력’이다.
설정만 보면 달콤한 로맨스가 펼쳐질 것 같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이곤이 새로 구한 집에는 이미 요빈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다. 황당하게도 요빈 역시 같은 집주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갈 곳 없는 두 사람이 얼떨결에 한집에 살게 되는 것부터 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기미가 없다. 더구나 요빈은 악마와 계약해 자신의 매력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천사에게 능력을 받은 남자와 악마에게 매력을 빼앗긴 여자라니. 여기까지 읽으면 대체 이 둘이 어디까지 꼬이려는 건지 궁금해진다.
코인 사기, 월세와 전세 사기, 직장 안의 불편한 관계까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를 건드리며 공감대를 끌어내는가 싶더니 금세 황당하고 웃긴 장면이 튀어나온다. 세상이 작정하고 이곤을 시험하는 것처럼 일이 꼬이는데도 읽는 나는 자꾸 키득거리게 됐다. 말발 좋은 친구와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글자가 빽빽한 편인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대사와 상황이 빠르게 이어져 어느새 다음 장을 넘기고 있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곤의 인생이 갑자기 편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게임에서 치트키 하나를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막상 잘못 누르면 판이 더 엉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곤은 좋은 뜻으로 누군가의 연애를 돕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그 마음은 진짜인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사람에게 책임은 없는지 생각할수록 묘하게 찜찜해졌다.
인물들도 반듯하지 않다. 이기적이고 얄밉다가도 뜻밖의 순간에 자기 몫을 해낸다. 그래서 누군가를 쉽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누기 어려웠다. 여러 인물이 서로 얽히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튀는 것도 재미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나 싶으면 다른 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처음에는 이곤을 따라가던 시선도 어느 순간 주변 인물들에게 옮겨갔다. 누구 하나 평범하게 흘러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 엉뚱한 관계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랑을 만들어내는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자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이쯤 되니 이곤의 능력이 부럽기는커녕 차라리 없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꽤 근사하게 들리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일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움켜쥐는 관계』는 현실적인데 황당하고, 웃긴데 가끔 서늘하다. 심각해질 만하면 엉뚱한 상황과 대화가 끼어들어 다시 웃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무거운 교훈보다는 정신없이 얽혔던 사람들과 그들의 말들이 먼저 떠올랐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역시 갖지 않는 편이 낫겠다. 내 마음 하나도 뜻대로 안 되는데 남의 마음까지 책임지려면 얼마나 피곤할까.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황당한 설정과 말맛 좋은 대화가 살아 있는 블랙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