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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평점 :
#협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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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는 처음부터 독자를 낯선 문학적 분위기 속으로 데려간다.
보통의 소설처럼 사건이 이어지거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대신 주인공 말테가 파리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순간순간의 기억을 일기처럼 흘려보내듯 적어 내려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낌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말테에게 파리는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잔인한 곳일 뿐.
그에게 파리는 로맨틱하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다.
병원의 냄새, 거리의 소음,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일상 속에 스며든 죽음의 기운이 가득 드리워진 곳이었다.
말테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기록한다. 버티고 살아내기 위해. 아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시적이고 섬세하다. 금세 상처받고 무너질 것 같은 저자의 심연처럼.
말테는 사물이나 풍경을 볼 때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확대경을 들이대듯 아주 세밀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스토리로 풀어낸다기 보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 문장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말테의 글은 정말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해부하듯 들여다보고, 또 어느 날은 사물을 시적 소재처럼 관찰하며 글을 남긴다. 때로는 골목과 풍경을, 때로는 우연히 지나간 사람의 표정을 오래 기억해낸다.
그래서 이 책 속의 1인칭 화자는 어느 순간 릴케 자신과 겹쳐 보인다.
이 책은 완성된 줄거리나 명확한 결말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읽으면, 이 책은 한 예술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유추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글을 쓰고 병원에 찾아갔을 정도였으니. 그 와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저자의 문학적인 열정은 높이 살만 했다.
많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가끔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마음이나 머릿속이 궁금할 때가 있다.
<<말테의 수기>>는 바로 저자 자체였다.
섬세함을 넘어선 예민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릴케의 반자전적 소설이니, 릴케의 머릿속이 궁금한 분들께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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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_p9,10
나는 보는 법을 배오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여느 때 같으면 멈추었던 곳에 이르러서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전에는 몰랐던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곳을 향해 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도 모른다.
>밑줄_p59
예전에 내가 글을 쓰기 전에 바로 나의 내면이 이와 같았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쓰일 것이다. 나는 변해 가는 인상이다. 오, 내게는 단지 조그만 것이 결여됐을 뿐이다. 그렇지만 않으면 나는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시인할 수 있으련만. 한 걸음만 더 떼어 놓으면 나의 깊은 고통이 지복될 수 있으련만. 그러나 나는 바로 이 한 걸음을 뗄 수가 없다.
>> 이 서평은 을유출판사(@ksibooks)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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