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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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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아이템을 가지고, 그것도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이렇게 깊이 있고 상세하게 다루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을 집필한 역사 연구가 이승우씨의 모자의 나라 조선이 바로 그 사례에 해당하는 책이다. 사극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라 책 제목을 보고 곧바로 흥미가 생겼고, 책을 읽어가면서 감탄을 하였다. 책의 뒤편에 수록된 참고 서적참고 논문을 보니 대충 책 한 권을 출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을 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출간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조선의 모자를 모두 불러내어 얘기하자면 백과사전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 책에서는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사랑했던 모자를 골라 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따라가려 한다고 밝히면서 이 땅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모자를 만들어 내고,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이 땅에 정착했던 모자들이 왜 그토록 빨리 사라졌는지 의문을 가지고, 서양인들은 모자 왕국 조선과 조선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 궁금해한다. 인류가 모자를 쓰게 된 동기는 날카롭거나 위험한 물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와 눈을 피하고, 뜨거운 햇빛이나 냉기를 차단하는 등 자연의 위험에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썼다. 아울러 남성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표현하는 장식 기능을 위해서, 신분과 계급 또는 직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어 구별하고자 모자를 착용하였다. 모자를 쓰게 된 위의 여러 가지 동기 중에서 사실상 조선에서의 모자는 의복의 장식품 또는 장신구의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조선의 모자 가운데 특히 갓에 관심이 많았으며 갓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프랑스 선교사 페롱(Stanislas Feron)1869년에 펴낸 한불 필사본 사전을 보면 조선 모자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왕조 의궤 16권을 필사하여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남긴 앙리 슈발리에(Henry Chevalier)조선의 모자에 관한 연구에서 조선의 갓이 그 어떤 서양의 모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와 재질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조선을 방문하여 예술성이 뛰어난 수채화와 목판화를 남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는 누구보다도 조선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특히 조선의 모자를 사랑하여 모자를 쓴 조선인을 즐겨 그렸다. 저자는 조선에 왜 그렇게 많은 모자가 있었는가를 추적해 본 결과 그 원인을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을 하였다. 첫째, 조선의 모자는 조선인의 전통적인 상투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조선 성리학의 윤리관이 더욱 조선의 모자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조선인은 신체 각 부위 가운데 유별나게 머리를 중요시하는 특유의 존두사상(尊頭思想)’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유학적 선비 사상에서 비롯된 의관정제 의식(衣冠整齊 儀式)’이 철저하여 의복(衣服)과 관모(冠帽)를 함께 갖추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셋째, 특이하게도 한반도에서만 계승되었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왕조가 모자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다져진 문화는 단절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존하고자 하는 생명력을 갖는다. 이를 문화의 지속성이라고 한다. 넷째, 조선의 모자문화는 엄격한 유교 신분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계급사회라는 사회체제 아래에서 신분과 직업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고 제한해야 하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져 발전해 나갔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제5조선에는 어떤 모자가 있을까?’에서 조선의 모자를 용도와 기능에 따라 분류하여 면류관, 원유관, 익선관, 통천관, 죽전립, 공정책, 적관, 화관, 족두리와 같은 조선 왕실에서 쓰던 모자를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양관, 제관, 흑사모, 백사모, 고정립, 흑립, 옥로립, 백립, 저모립, 정자관, 동파관, 사방관, 충정관, 상투관, 탕건, 망건, 감투, 복건, 유건, 복두, 치포관, 장보관, 와룡관, 전립, 주립, 첨주, 원주, 면주, 투구, 등두모와 같은 문무관선비들이 쓰던 모자를 마찬가지 방식으로 설명을 하였다. 궁중의식에 쓰던 모자들과 서민들이 쓰던 패랭이, 초립, 벙거지, 정당벌립, 방립, 삿갓, 갈모, 송낙, 깔때기 전건, 효건, 굴건, 수질, 굴립, 돌모, 도롱이를, 조선 여인들이 좋아했던 화관, 족두리, 전모, 가리마, 장옷, 쓰개치마, 면사, 너울, 처네, 개두, 고깔, 호건 등을 마찬가지로 사진과 함께 기술하였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하고 독특한 조선의 모자를 우리의 선조들은 썩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1884년 의제 개혁과 1895년의 단발령의 시행과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이유로 부싯돌을 버리고 성냥을 선택하듯 극히 짧은 시간에 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으나 어느 겨울날 남바위와 조바위, 아얌과 풍차를 쓴 여인네들이 덕수궁 돌담길 거리를 거닐며 담소하고, 호건과 굴레를 쓴 아이들이 팽이를 치고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을 저자가 상상하며 미소를 지을 때 본인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선의 복식문화, 특히 모자에 관해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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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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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듯이 하나의 국가도 흥망성쇠를 거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번에 읽은 강정만 교수님의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역시 그러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초심을 잃고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변심을 하기 쉬운데 그러한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님은 중국의 역대 황제들을 왕조별로 저술하는 일에 매진하시고 계신데 2017년에, 앞에서 언급한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 2019년에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2020년에 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 2021년에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쓰셨고, 2022년에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를 출간하셨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별로 역주행을 하고 계신 셈인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는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초반에 언급되어 있고, 왕조의 수명도 15년으로 짧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어렵다고 치면, 이제 수나라 역대 황제 평전원나라 역대 황제 평전만이 남은 것인가 나름 추측해본다.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을 구분하는 신()나라 왕망(王莽)을 포함하여 21명의 황제가 등장하는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의 부제처럼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의 4년간의 패권 전쟁의 결과로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나라의 개국 황제 한고조(漢高祖)로 등극하고, 도성을 처음에는 낙양으로 정했다가 나중에는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시작되는데, 왕조가 운영되면서 점차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거나 허수아비 황제를 세워놓고 외척이나 환관에 의해 국정을 농단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 한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바대로 기술해본다.

 

   첫째, 유가 학술이 한나라 시대에 이르러 국가를 통치하는 사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아울러 유가 선비들이 정치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청나라 말까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둘째, 중국은 한나라 시대에 들어와 최초로 서방세계와 교류를 시작했다. 한무제(漢武帝)는 한나라의 숙적인 흉노를 견제할 목적으로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였고, 이른바 비단길로 표현하는 한나라의 서역 개척은 동서 문명 교류사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셋째, 한나라는 북방의 최강국인 흉노와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흉노는 진시황제의 진나라 때부터 변경 지방을 유린하여 중원 지방의 한족에게 큰 피해를 입혔는데,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는 한나라가 아니라 흉노였다. 그 후 한나라와 흉노는 340여 년 동안 패권 다툼을 벌였다. 넷째, 한나라 시대에 불교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불교는 중국 황제의 요청에 의해 공식적으로 중국에 전래 되었으므로 토착 종교와의 마찰을 빚지 않았고, 불교와 유사한 도교가 이미 성행하고 있었던 것도 불교가 쉽게 중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인도 불교는 중국에서 선종(禪宗) 등 대승불교로 발전하며 중국인의 사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섯째, 한나라는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망한 왕조이다. 후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외척과 환관 세력이 번갈아 가며 국정을 농단하여 결국 한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한나라 이후 역대 왕조는 한나라의 패망 원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정을 운영했다고 하지만 외척과 환관으로 인해 국정을 망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십상시(十常侍)’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한나라 시대의 악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섯째, 한나라 시대에 활약한 다양한 인물들은 훗날 특정 인물의 유형을 결정하는 모델로 완성되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반고의 한서(漢書), 범엽의 후한서(後漢書) 등의 역사서에는 한나라 405년 역사의 주인공들이 묘사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에게 특정 인물 유형의 전형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한사군(漢四郡)’ 설치 등 우리나라 고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나라의 역사를 객관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여 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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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상상력 공장 - 우주, 그리고 생명과 문명의 미래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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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85일 발사된 한국형 달 궤도탐사선 다누리가 발사 135일 만인 1217, 드디어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한다. 다누리는 현재 타원 궤도를 따라 달을 공전하고 있으며 앞으로 네 번에 걸친 궤도 안정화 작업이 예정돼 있는데 다누리가 임무 궤도에 안착하면 내년 1월부터 1년 동안 하루 12회 달을 공전하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달 표면을 정밀 촬영해 2030년대 초 발사될 예정인 달 착륙선의 착륙 후보지를 물색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다누리가 최종 성공 판정을 받게 되면 한국은 러시아, 미국, 중국, 유럽, 일본, 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 달 탐사국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과거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확보 경쟁처럼 앞으로는 달에 매장되어 있는 광물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요 가사에서처럼 단지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는 줄 알았던 달이 이제는 바야흐로 광물 자원 확보의 전초기지가 된 것이다. 필자가 달을 포함해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간 과학관에 설치된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을 통해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난 이후이다. 도시에서는 빛공해로 인해 밤하늘의 별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던 터라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우주에 관한 뉴스나 책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 수학만 조금 뒷받침해주었으면 아마 천문학으로 전공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입시공부의 고단함도 우주에 관한 책을 읽거나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면 신기하게도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우주는 필자의 관심 사항 제1순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우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그리고 스티븐 호킹 박사님의 시간의 역사는 이해 여부와 관계없이 수시로 읽게 되었다. 브라이언 그린의 또 다른 저서인 우주의 구조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라는 부제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이해하기에 힘든 부분이 많아서 읽는데 애를 좀 먹었던 책으로 기억된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는 하나의 우주가 아닌 다중우주(The Multiverse)’에 관한 내용인지라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나갔다. 하나의 우주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광막한데 다중우주 혹은 평행우주라니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솔직히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우주를 만지다를 쓰신 권재술 박사님의 우주, 상상력 공장을 접하게 되었는데 부제 우주, 그리고 생명과 문명의 미래에서 보듯이 여느 우주에 관한 책들과는 서술관점이 조금 다르다. 우주의 탄생인 빅뱅(Big Bang)과 시공간, 끈 이론 그리고 다중우주 등을 기술한 것은 대동소이하지만 단순히 우주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책의 곳곳에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와 상상까지 포함되어 있고, 심지어 과학서가 아닌 철학서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용이 심오하고, 남녀가 처녀, 총각으로 있던 모습과 결혼해 부부가 된 모습이 다르듯이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면 원자가 가지고 있던 성질과는 전혀 다른 특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처럼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고 있다. 책의 목차를 보면 CHAPTER 0 태초(太初), CHAPTER 1 존재, CHAPTER 2 우주, CHAPTER 3 생명, CHAPTER 4 정신, CHAPTER 5 문명, CHAPTER 태종(太終)으로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순히 우주에 관한 정보를 기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 존재의 의미, 우연과 필연, DNA, 진화, 외계인과 UFO, 의식, 인공지능(AI), 지구 문명과 우주 문명 그리고 종말(과학의 종말, 생명의 종말, 정신의 종말, 문명의 종말, 종교의 종말, 우주의 종말)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다루고 있으며,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호기심 가질만한 책이라 생각되고,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책의 말미에 수록한 참고문헌을 모두 읽고 싶은 욕심이 난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광활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오래되었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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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 우리 책의 근원을 찾아가는 즐거운 독서 여행
김기태 지음 / 새라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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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독서나 음식의 취향이 다르니까 일률적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김치나 와인처럼 시간이 지나 숙성된 것을 선호하는 것과 같이 통상 자신이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세월이 어느 정도는 흘러서 세인들의 평가가 괜찮은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식이 아무래도 책을 구입하고 나서 후회할 가능성을 낮추어 주는 경험에서 나오는 태도인 것 같다. 필자도 그런 편에 속하는데 책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신간이 나오자마자 구입했다가 오탈자가 범벅이 되어 내가 지금 책을 읽는 건지 교정을 보는 건지 혼란스러운 경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810일 초판 1쇄 발행된 삼인출판사의 김대중 자서전2011411일 초판 1쇄 발행된 불교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모 출판사의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이었다. 김대중 자서전의 경우에는 이메일로 출판사의 편집장께서 직접 감사의 글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여러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출간을 앞둔 책의 교정과 교열 의뢰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 역시 초판본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세명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디지털 콘텐츠 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김기태 교수님의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우리 책의 근원을 찾아가는 즐거운 독서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1990년대 중반에 시간강사를 하면서 먼 지역의 대학에 강의를 가는 길에 비는 시간을 활용해서 그 지역의 헌책방을 들렀는데 우연히 들른 서대전역 인근 헌책방에서 창비시선 초판 1쇄본을 발견한 이후로 광주 송정역 인근 헌책방에서, 대구 대학가 헌책방에서,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그리고 신촌로터리 인근 헌책방 등에서 초판본을 찾아다닌 시절을 회상하며 안도현 시인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도종환 시인의 대표적인 시집 접시꽃 당신초판 1쇄본을 발견한 일과 비교적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부산 보수동 헌책방을 뒤지다가 198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던 현암사판 어둠의 자식들꼬방동네 사람들초판 1쇄본을 구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한다. 저자는 초판 1쇄본뿐만 아니라 정기간행물 중 첫 번째로 발행된 창간호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하니 가히 의지의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다 보니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은 단행본 초판 1쇄본이 약 5만여 종, 신문, 잡지, 기관지, 사보와 같은 정기간행물이 약 15천여 종이 된다고 한다. 이 많은 책들을 보관할 장소도 부족해 컨테이너에 의지하는 처지에 이렇듯 많은 초판 1쇄본이나 창간호를 수집하는 이유를 단행본 초판 1쇄본이나 정기간행물 창간호는 이제 막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얼굴을 내민 순간의 존재처럼 가장 먼저 독자들과 만난 존재이기 때문에 저자나 편집자가 잡아내지 못한 오류를 비롯해서 의도하지 않았던 기록들과 창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 인물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 초판 1쇄본과 창간호를 발견과 앎의 기쁨을 주는 매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19511121일에 발행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에서부터 19891120일에 발행된 박완서 장편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까지 15권의 초판 1쇄본이 소개되고 있는데 젊은 층에서는 다소 생소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중에는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도 있어 한국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저자나 책의 이름은 들어보았으리라고 본다. 한 작품 한 작품 상세하게 책의 표지나 속표지 그리고 발간()에 따른 기록()을 담고 있는 지면()’이라는 뜻의 간기면(刊記面)’을 실제 초판본의 사진을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소월 전문가로 알려진 구자룡(具滋龍) 시인의 조사에 따르면 대중가요로 작곡되어 불린 소월의 시가 59, 노래를 부른 가수도 원곡 가수와 리메이크 가수를 포함해 320여 명에 이른다.”고 하여 김소월 선생님의 작품을 읽을 때는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들으며 읽었고,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이 집의 책장에 있는 경우엔 꺼내서 함께 읽다 보니 완독하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입체적으로 접하다 보니 훨씬 책 읽는 맛이 배()가 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1권 초판본은 다음과 같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김윤식 시집 영랑시선, 노천명 시집 사슴의 노래,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 김승옥 소설집 서울 1964년 겨울, 김병익 문화론집 지성과 반지성, 법정 수상집 서 있는 사람들, 김성동 장편소설 만다라, 피천득 시집 금아시선, 이동철 장편소설 꼬방동네 사람들,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 최인호 장편소설 고래사냥, 김대중 저() 김대중 옥중서신, 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 박완서 장편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이다. 저자는 서문 말미에서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아우라(Aura)’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초판본과 창간호를 찾아보라고 일러주고 싶다.”라고 밝혔다. , 김기태 교수님이 쓴 이 책도 202298일에 초판 1쇄 발행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자가 몇 개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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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아이온총서 1
박인성 지음 / 경진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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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 그리고 염화미소(拈華微笑) 등의 방식으로 불법(佛法)의 진리를 전달하는 선불교(禪佛敎)에서 중생들이 세속에서 사용하는 언어(言語)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면 이미 그 본질(本質)에서 동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생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불법의 진리를 알려줄 방법이 없기에 할 수 없이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으로 가득한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고 임제 스님의 할()이나 덕산 스님의 방()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불경이나 여러 조사(祖師)의 논서(論書)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불교 용어가 많다보니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선불교에서 사용하는 공안(公案) , 화두(話頭)를 보면 대체로 짧으면서도 수행자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힘이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명예교수로 계시는 박인성(朴仁成)교수님의 저서 화두(話頭)읽어보면서 불교 경전이나 여러 조사들의 논서가 아닌 화두를 통한 깨달음의 방식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린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언어를 쓰지 않고는 독자분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완전한 의미 파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책 화두(話頭)는 고려의 혜심(慧諶) 선사가 편찬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에 실린 화두(話頭)들 중에서 마조 선사의 화두 7, 남전 선사의 화두 10, 조주 선사의 화두 82칙을 해독하여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선사들의 깊은 사유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특히,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화두를 해석하는 방식을 언급하였으며, 책의 뒤편에 보론:들뢰즈와 무문관의 화두들을 별도로 수록하였으니 본문을 읽고 난 후 참고하거나, 그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것도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저자는 화두를 해독하는 과정을 책의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다. 화두 혹은 공안을 해독하는 과정은 화두를 읽어갈 때 일어나고 사라지는 우리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읽어가며 활구(活句)를 발견하여, 이를 사구(死句)와 관련지어 풀어간다고 한다. 활구는 평이하게 등장하는 사구들로부터 불현듯 돌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활기 없는 사구가 되어 불현듯 침잠하기도 하므로 독자 혹은 수행자들은 바짝 긴장해서 활구와 사구의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고도의 집중과 사색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주 선사의 공안(화두)은 깨달음으로 가는데 방해를 하는 언어를 언어로써 해체시켜 언어를 통해 곧바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고 한다. 조주의 화두가 이런 기능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주 선사가 언어의 본질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며 심원한 철학적 사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조주 공안의 가장 큰 특징은 문답 상대자의 말이 싣고 있는 육중한 무게를 깨면서 말을 통해 문답 상대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에 실린 1,463칙 공안 중에서 99칙을 소개하고 있지만 공안의 해독 과정을 반복해서 참구하다 보면 흔히 말하는 1,700 공안들을 활연히 해독하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책을 한 번 보고는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독학으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반복해서 읽고 공안을 해독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선불교의 참선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두(話頭)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이 있기를 당부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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