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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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아이템을 가지고, 그것도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이렇게 깊이 있고 상세하게 다루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을 집필한 역사 연구가 이승우씨의 모자의 나라 조선이 바로 그 사례에 해당하는 책이다. 사극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라 책 제목을 보고 곧바로 흥미가 생겼고, 책을 읽어가면서 감탄을 하였다. 책의 뒤편에 수록된 참고 서적참고 논문을 보니 대충 책 한 권을 출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을 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출간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조선의 모자를 모두 불러내어 얘기하자면 백과사전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 책에서는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사랑했던 모자를 골라 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따라가려 한다고 밝히면서 이 땅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모자를 만들어 내고,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이 땅에 정착했던 모자들이 왜 그토록 빨리 사라졌는지 의문을 가지고, 서양인들은 모자 왕국 조선과 조선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 궁금해한다. 인류가 모자를 쓰게 된 동기는 날카롭거나 위험한 물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와 눈을 피하고, 뜨거운 햇빛이나 냉기를 차단하는 등 자연의 위험에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썼다. 아울러 남성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표현하는 장식 기능을 위해서, 신분과 계급 또는 직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어 구별하고자 모자를 착용하였다. 모자를 쓰게 된 위의 여러 가지 동기 중에서 사실상 조선에서의 모자는 의복의 장식품 또는 장신구의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조선의 모자 가운데 특히 갓에 관심이 많았으며 갓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프랑스 선교사 페롱(Stanislas Feron)1869년에 펴낸 한불 필사본 사전을 보면 조선 모자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왕조 의궤 16권을 필사하여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남긴 앙리 슈발리에(Henry Chevalier)조선의 모자에 관한 연구에서 조선의 갓이 그 어떤 서양의 모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와 재질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조선을 방문하여 예술성이 뛰어난 수채화와 목판화를 남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는 누구보다도 조선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특히 조선의 모자를 사랑하여 모자를 쓴 조선인을 즐겨 그렸다. 저자는 조선에 왜 그렇게 많은 모자가 있었는가를 추적해 본 결과 그 원인을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을 하였다. 첫째, 조선의 모자는 조선인의 전통적인 상투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조선 성리학의 윤리관이 더욱 조선의 모자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조선인은 신체 각 부위 가운데 유별나게 머리를 중요시하는 특유의 존두사상(尊頭思想)’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유학적 선비 사상에서 비롯된 의관정제 의식(衣冠整齊 儀式)’이 철저하여 의복(衣服)과 관모(冠帽)를 함께 갖추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셋째, 특이하게도 한반도에서만 계승되었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왕조가 모자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다져진 문화는 단절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존하고자 하는 생명력을 갖는다. 이를 문화의 지속성이라고 한다. 넷째, 조선의 모자문화는 엄격한 유교 신분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계급사회라는 사회체제 아래에서 신분과 직업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고 제한해야 하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져 발전해 나갔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제5조선에는 어떤 모자가 있을까?’에서 조선의 모자를 용도와 기능에 따라 분류하여 면류관, 원유관, 익선관, 통천관, 죽전립, 공정책, 적관, 화관, 족두리와 같은 조선 왕실에서 쓰던 모자를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양관, 제관, 흑사모, 백사모, 고정립, 흑립, 옥로립, 백립, 저모립, 정자관, 동파관, 사방관, 충정관, 상투관, 탕건, 망건, 감투, 복건, 유건, 복두, 치포관, 장보관, 와룡관, 전립, 주립, 첨주, 원주, 면주, 투구, 등두모와 같은 문무관선비들이 쓰던 모자를 마찬가지 방식으로 설명을 하였다. 궁중의식에 쓰던 모자들과 서민들이 쓰던 패랭이, 초립, 벙거지, 정당벌립, 방립, 삿갓, 갈모, 송낙, 깔때기 전건, 효건, 굴건, 수질, 굴립, 돌모, 도롱이를, 조선 여인들이 좋아했던 화관, 족두리, 전모, 가리마, 장옷, 쓰개치마, 면사, 너울, 처네, 개두, 고깔, 호건 등을 마찬가지로 사진과 함께 기술하였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하고 독특한 조선의 모자를 우리의 선조들은 썩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1884년 의제 개혁과 1895년의 단발령의 시행과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이유로 부싯돌을 버리고 성냥을 선택하듯 극히 짧은 시간에 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으나 어느 겨울날 남바위와 조바위, 아얌과 풍차를 쓴 여인네들이 덕수궁 돌담길 거리를 거닐며 담소하고, 호건과 굴레를 쓴 아이들이 팽이를 치고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을 저자가 상상하며 미소를 지을 때 본인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선의 복식문화, 특히 모자에 관해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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