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이른 사랑을 했습니다
황연태 지음, 황유진 그림 / 부크크(book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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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톡 깨톡하루에도 여러 차례, 많을 때는 수십 차례 울어대는 톡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특히 단톡방에서 무슨 안건이라도 협의한다면 그날은 하루종일 폰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문명(文明)의 이기(利器)인지라 거부할 순 없겠지만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다소 불편한 점을 필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말 연초에 지인들에게 톡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 인사라도 할라치면 너무 성의 없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그 신속함과 편리성에는 감탄을 하게 된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 연하장이라도 보내려면 받을 분들의 주소를 알아낸 후 연하장 속지에 일일이 감사의 글을 적고 겉봉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국이나 우체통까지 직접 가서 보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송달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최소 3일 이상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보내야 하니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답장이라도 기대하는 친구나 연인 간의 손편지라면 왕복 일주일 정도는 소요되고 그때부터는 우체부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대문 앞을 서성거려야 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런 경험을 한 지도 꽤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아련히 손편지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리운 57통의 손편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힌 우린 너무 이른 사랑을 했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소설이나 에세이, 그것도 남녀 간의 사랑이 주제가 되는 책은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가 필자가 가입해 있는 인터넷 독서카페의 회원이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사용하는 닉네임이 서로 아주 유사하여 동지애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4년 전인 2017년에 이 책 저자의 전역 군인 생존 바이블을 읽고 글을 쓴 경험이 있어 아무래도 읽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젊은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힘든 시기에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또한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1년여 기간 동안 주고받은 57통의 손편지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과 함께 7년의 연애 기간과 결혼 후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던 아내와 제 앞가림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남매를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수많은 손편지와 국제전화로 서로를 그리워했던 우리 부부의 지난 추억들도 소환해 주었다.

 

   책에는 24세의 남자와 23세의 여자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한 채 유진이라는 딸을 낳고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채 되지 않아 육군 장교 임관을 위한 훈육대로 떠나게 되고, 여자는 1살 된 딸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서로 만날 시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힘들고 고단한 하루하루의 여정을 57통의 손편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그저 평범한 두 남녀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시작한 이른 사랑으로 겪은 1년여 기간의 인생 이야기이다. 서로 애틋하고 가슴 절절한 심정으로 써 내려갔던 손편지에는 군생활의 힘든 과정 속에서도 아내와 딸 유진이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인내하고 극복하는 남자의 책임감이,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혹여나 훈련 중 남편이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소대장으로 임관한 후 직책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할까 걱정하는 아내의 연민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책의 중간중간 손편지 속에 등장하는 딸아이인 유진이가 그린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어 27년이라는 세월 동안 참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구나 싶다. 글을 쓰기 전에 참고삼아 저자의 블로그를 검색해 보았는데 저자는 소령으로 예편해서 현재는 전국의 부대를 순회하며 군사보안에 대한 강의를 하고 계시고 - 실전 사례로 익히고 배우는 군사 보안 첫걸음(2019)도 출간 딸 유진씨는 미술조형 디자인(서양화)을 전공하고 임상상담심리 석사과정을 마치고 직장생활과 아이들 그림지도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출산을 하지 않아 책에서는 당연히 등장하지 않았던 유진씨 남동생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간부 장교로 임관하여 대를 이어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으로 나온다. 책임감 있고 반듯한 삶을 살아온 부부이었기에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한 것으로 보여 흐뭇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내밀한 두 분만의 손편지인지라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어지간한 용기로는 힘들었을텐데, 이 책을 통해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도 부부간의 사랑과 인내로 힘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책 사이사이에 글과 연관된 유명인의 명언이나 시()도 끼워져 있어 자칫 가벼울 수 있는 내용에 무게감을 더해 주는 듯하다. 참고로 필자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 않고 조금 번거로웠지만 편지를 쓴 날짜의 순서대로 아내의 편지를 읽고 남편의 답장을 읽는 혹은 그 반대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이해도를 높이고 연결이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었다. 언제 날 한 번 잡아서 우리 부부의 연애 시절 빛바랜 편지들을 꺼내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한 가지 아쉬운 옥의 티라면 오탈자가 예상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내용 파악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어 보고 싶은 분들이나 아날로그 삶의 방식을 접하고 싶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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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인문학 - 25년차 대입 논술로 풀어보는 인문학 쟁점들
조진태 지음 / 주류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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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은 대학입학 전형이 너무 세분화되고 복잡해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학력고사 세대인 필자가 대학 입학할 당시에는 시험을 먼저 보고 난 후 배치표에 기재된 대학교와 학과를 자신의 시험점수에 맞춰 지원하는 방식이라 의외로 간단하였다. 하지만 지원 마감날까지 혹여 상위권 대학의 인기학과에 미달이 없는지를 확인하려고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 마감시간 직전까지 소위 눈치작전을 벌이는 해프닝도 심심찮게 일어났고 매년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필 필자가 입학할 때 지금과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어쨌든 논술전형이 추가되어 부담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거의 30년이 다 된 2014년에 딸내미가 수시 논술전형으로 대입을 응시하여 수학능력시험 공부와 병행하여 논술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그 당시가 떠올랐다. 이번에 ‘25년차 대입 논술로 풀어보는 인문학 쟁점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논술 인문학을 읽게 되었는데 이제까지 각 대학에서 출제된 논술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논술은 단순한 글짓기가 아니라 저자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사고력이며, 이는 개인의 지적 체험과 비례하는 것이었다. 20여 년 동안 현장에서 논술을 지도하면서 논술 시험의 순기능과 한계를 동시에 목격한 저자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사색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논술은 입시의 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논술고사의 본래 취지가 상당 부분 훼손은 되었지만 논술 고사에 담긴 지문 속에서 학생들이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글을 쓰게 한 공로는 인정하여 매년 양질의 지문을 선별하고 고민해서 치열한 지적 사유를 제공한 대학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공유되는 인문학적 고민들을 묶어 기록하고 싶은 욕구로 이 책을 기획하였다고 머리말에서 밝힌다.

 

   목차를 보면 자본주의와 삶의 방향’, ‘개인과 사회’, ‘문화변동과 동서양의 만남’, ‘인간과 경제 기구’, ‘급변하는 현대 사회’, ‘언어와 지식, 그리고 역사’,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문학과 전복(顚覆)적 사고’, ‘부연9개 단원으로 분류하여 32개의 인문학적 쟁점들을 몇 년도에 어느 대학교에서 출제되었는지를 기재한 다양한 제시문과 함께 사진이나 도표 등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불리는 문학, 역사, 철학과 관련된 지문들이 제시되어 사실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넘어섰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시된 지문 하나하나에는 대학의 치열한 지적 설계가 담겨있어 인간과 사회를 둘러보는 다양한 사유를 이해하는 이정표이자 인문학적 물음들의 보고(寶庫)라고 말하며, 일방적인 논술 해설서나 자습서가 아닌 저자가 대학과 학생 사이를 오가며 느낀 고민을 정리해서 지적 성찰과 기록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소설처럼 휘리릭 읽고 책장을 넘길 성질의 책은 분명 아니었다. 모르는 용어나 인물,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검색하며 읽다 보니 생각 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저자의 표현대로 딱 떨어지는 무엇을 얻을 수는 없지만 여러 각도에서 사유하는 지적 체험의 소중한 경험은 분명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긴해 보이므로 읽어보시기를 권해 본다. 책의 말미에는 각 대학이 요구하는 서술의 방법들을 수록하여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이 어떤 서술법을 요구하는지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만큼 읽고, 읽은 만큼 쓸 수 있다는 저자의 인식에 백 번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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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버스 특서 청소년문학 20
고정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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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가방 들어주는 아이안내견 탄실이를 통해 고정욱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작가님 역시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작가님이 실제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였고, 교수 임용까지 좌절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고정욱 작가님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자기계발과 리더십 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독자들의 메일에 꼭 답장을 쓴다고 하니 작가님의 인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새로 출간한 스토리텔링 버스는 작가가 꿈인 은지와 별다른 꿈이 없는 지강이가 주인공인데 이들 두 사람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여 아빠와 단둘이 산다는 것과 고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은지 아빠는 지방의 건설 현장 기사인지라 은지 혼자 원룸에서 살고 있고, 지강이 아빠는 화성에 있는 작은 사출 공장의 공장장이기 때문에 공장에 딸려 있는 숙소에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집에는 가끔 일이 있을 때만 들른다고 한다. 은지와 지강이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둘 다 외롭고 상처받은 짐승처럼 고독하다는 사실 하나뿐이므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혼율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 같아 초반부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성폭력 예방 특강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 이 소설은 남녀 관계는 동등하므로 건전하게 사귀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서로 간의 동의와 책임을 강연의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 둘 사이에는 동아리 모임인 합창부에서 소프라노 역할을 맡고 있는 민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공장장으로 일하는 지강이 아빠는 회사의 모든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데다가 최근에는 거래처로부터의 결제 대금 입금이 안되어 더욱더 집안 일을 돌 볼 겨를이 없다. 모처럼 집으로 온 은지 아빠 역시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다가 은지를 집까지 데려다 주려고 함께 온 지강이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된다. 학교에 가지 않는 개교기념일에 은지의 부탁으로 지강이와 민영이는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가는지도 모른 채 성남으로 가게 되고 어느 3층짜리 낡은 건물 1층 김밥가게에서 은지 엄마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작정 찾아오긴 했지만 정작 엄마가 일하고 있는 가게 앞에 이르자 은지가 발을 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본 지강이가 가게로 들어가고 주문한 김밥 세 줄을 싸고 있는 은지 엄마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은지 핸드폰으로 전송해준다. 지강이 역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게 되고 페이스북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제니퍼 리 하트란 이름으로 캐나다에 살고 있음을 알아낸다. 살다보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라면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을 정신적인 충격과 고통을 한 번쯤은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강이가 속한 합창부 페가수스는 가을에 있을 전국 청소년 합창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국 청소년 합창 대회에 나가 3등까지 들게 되면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 합창 대회에 나갈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면 지강이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강이의 실수로 4위에 머무는 바람에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페이스북에서 검색한 엄마 앞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한참 후에 엄마로부터 지강이에게 페이스북 전화가 오게 되어 엄마와 헤어진 뒤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합창대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없게 되어 의욕을 잃고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기분에서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합창 대회에서 떨어진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알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온 지강이는 아빠가 공장장으로 일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게 된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불똥이 지강이에게 튀게 되어 엄마한테 지강이가 연락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로부터 결국 폭언과 손찌검까지 당하게 된다. 은지 역시 용기를 내어 성남의 엄마가 일하는 가게로 갔다가 장을 보고 오던 엄마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엄마는 은지의 기대와 달리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나중에 어른이 돼서 만나자고 하자 은지는 엄마가 품에서 꺼내준 돈 몇만 원을 집어 던지고 울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달려간다. 지강이와 은지는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실망감을 서로 위로하며 황금 연휴 때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을 한다. 지강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속초에 있는 콘도 하나를 예약하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은지와 함께 고속버스를 타게 된다. 37번과 38번이 둘의 좌석번호이다. 은지가 준비해 온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먹고 지강이가 스마트폰에 잔뜩 저장한 음악을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가운데 꾸물꾸물 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우로 변하여 문막을 지나 강원도 산악지대를 지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서버렸다. 새로 난 고속도로에 사방공사를 해놓았는데 이번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완전히 막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군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도로를 긴급복구하고 있지만 산 절삭면이 물을 잔뜩 머금어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하느라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졸지에 고속버스 속에 갇힌 승객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도로가 빨리 복구되기를 기다리게 되고 일부 승객들은 갓길로 걸어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겠다고 하여 버스에서 내리게 된다.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34번 아저씨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자신이 알고 있던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 놓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고국에 남아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김상복씨가 부인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현지 남자를 사망하게 하는 교통사고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된 상황에서 사우디의 전통에 따라 교통사고 같은 과실치사로 어느 집의 가장을 죽이게 되면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하든지 아니면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네 명의 부인을 거느리게 된 이야기와 196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를 다니던 하태우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ROTC장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군사교육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교로 임관하기 전 훈련을 받기 위해 광주의 보병학교로 갔다가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그 뒤로 딸을 두 명이나 더 낳아 키우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이야기, 복지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은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소녀와 캐나다의 왼손의 마법사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와의 감동적인 만남,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럭비 월드컵의 공식후원업체 선정에 실패한 모 은행의 신문 1면 광고면에 호소문을 쓰기까지의 유명한 어느 카피라이터의 이야기 등을 듣게 되는데 은지와 지강이가 타고 가던 고속버스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스토리텔링 버스였던 것이다. 이 네 편의 스토리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책임감이었다. 은지와 지강이는 버스 속에서 들었던 스토리가 모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고 아직은 지강이가 은지를 책임질 수 없음을 인식하고 나중에 커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서울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책의 말미에 저자는 책임감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고 학교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덕목 가운데 하나가 책임감임을 강조한다. 스토리텔링 버스 청소년 평가단이 쓴 10편의 서평 글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책의 중간중간 저자의 위트 넘치는 단어나 문장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예전에 학교 단체소풍 때 빠지지 않고 했던 보물찾기기분으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법과 같은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 버스에 탑승하길 원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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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초걈 트룽파 지음, 이현주 옮김 / 불광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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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경(華嚴經)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도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고 하였고, 불교의 유식사상(唯識思想)’ 역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불교의 팔만사천법문을 한 글자로 나타낸다고 하면 마음 심()’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마음이라는 것만 우리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마음이나 마음 공부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들을 어지간히도 많이 읽었고, 포털사이트나 각종 카페에 로그인 할 때 쓰이는 닉네임에도 마음(maum)’이 들어간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관심을 두고, ‘마음에 관한 책을 읽었고,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해왔음에도 솔직히 아직 마음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모르겠다. 초기 불교에서는 마음작용을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육식(六識)으로 분류하였고, 유식론자들은 마음의 심층에서 육식(六識)에 영향을 미치는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육식(六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말나식(末那識)’을 추가해서 마음 작용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였다. 물론 현대의학에서 마음은 뇌와 뇌신경의 화학적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것은 논외로 하기로 한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마음 공부에 관하여에 필자의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는 카르마 드종(Karma Dzong) 명상센터에서 티베트 스님이자 명상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초걈 트룽파(Chögyam Trungpa,1940~1987)에 의해 행해진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강연에서 저자는 마음 공부란 마음의 깨어 있는 상태를 만들어 세우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지럽히고 있는 미망(迷妄)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라고 하며 온갖 미망을 불사르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망의 핵심은 지속적이고 단단해 보이는 ()’가 따로 있다는 아상(我相)’을 지니는 것으로 우리들은 이러한 자아(自我)를 지속적이고 단단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여 고정된 자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고 애쓰게 되고 이러한 노력이 바로 에고(Ego)의 행위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에고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모양의 군주’, ‘언어의 군주그리고 마음의 군주라는 물질주의의 세 군주를 소개한다. 문제는 에고(Ego)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이용해 진정한 마음 공부의 길을 교묘하게 방해한다는 데 있다. 마음 수련에 대해 불교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하여 설명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생각, 감정, 개념과 다른 마음의 작용들을 면밀히 성찰한 부처님은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물질주의의 세 군주에게 지배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수고의 부재, 그 자체가 자유이고 에고 없는 상태, 그것이 곧 불성(佛性)의 성취라고 한다. 명상 수련을 통해 지금까지 에고의 욕망을 표현해 오던 마음을 바꾸어 본래의 깨달음을 표현하도록 이끌어가는 과정이 참된 마음 공부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토록 많이 수집하여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에고의 과장된 자기표현의 한 부분이요, 으쓱거리는 에고의 기질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마음 공부를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소개하면서 명상의 목적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데 있음을 이해하고, 무엇인가 얻으려는 기대로 가득 찬 어리석은 수행을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1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의 뒤쪽에 마음 공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을 수록하여 앞부분에서 놓쳤거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내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지면의 한계와 향후 이 책을 읽어보실 분들을 위하여 더 이상 언급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종교의 교리나 영적인 내용을 문자로 옮기기에는 필자의 능력 부족도 있지만 그 참뜻을 훼손시키는 것 같아 조심스러움이 있다. 마음 공부에 관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일독을 권해 보지만 곱씹어 봐야 할 부분들이 많아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은 다소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염려도 함께 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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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부르는 노래 : 바가바드기타 인도 정신문화 총서 1
배해수 편역 / 지혜의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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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가바드기타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제6권에 포함된 약 700편의 시문(詩文)으로 이루어진 신이 부르는 노래로 알려진 힌두교의 경전이다. 베다, 우파니샤드와 함께 힌두교의 3대 경전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 사이에 성립되어 8세기경에 상카라(Shankara), 11세기경에 라마누자(Ramanuja)의 주석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나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에 고전 작품의 시각에서 벗어나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하여 지금 시대에서 공감하게 하려는 의도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밝힌 배해수 박사님의 ()이 부르는 노래-바가바드기타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바가바드기타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 차원에서 인도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특히, 종교문화의 다양성에 관해 상세한 해설을 해놓아 바가바드기타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아울러 바가바드기타의 이해를 위해서 그 배경이 되는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정리한 점 역시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바가바드기타1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판다바스 다섯 형제 중에 셋째인 아르쥬나와 인간의 모습으로 화현하여 아르쥬나의 마부 역할을 맡은 크리쉬나 신()과의 문답형식으로 전개되어 간다.

 

   바라타 왕국의 후계문제로 인해 쿠루쿠쉐트라 대평원에서 카우라바스 형제들과 사촌들인 판다바스 형제들과의 전쟁이 벌어질 무렵 아르쥬나는 상대편 진영에 도열한 사촌들을 포함한 친족들을 바라보며 회의와 고뇌를 느끼며 동족을 죽이고 왕국을 차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의 손에 죽는 것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며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린 수행자의 삶을 원하지만 크리쉬나 신()은 아르쥬나에게 의무를 다하는 싸움에 임하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아무리 전장이라고 하지만 신이 친족들을 죽이라고 부추기는 것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적인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크리쉬나는 전쟁 수행이 전사에게 부여된 의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피할 수 없는 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 가르침의 본질은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나약한 의지를 확고하게 정립하려는데 있다. 아르쥬나의 망설임과 우유부단함을 확고한 의지로써 당당하게 받아들이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쉬나와 아르쥬나의 계속된 대화는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나약함을 드러내고 존재의 이유와 궁극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대변하는데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순과 갈등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존재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 내면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 번뇌와 갈등 속에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크리쉬나는 그 실천적인 방법으로 요가라는 길을 제시하는데 이 요가의 가르침은 형식적인 제의나 무지에 의한 집착을 버리고 분별의 지혜를 획득하여 영혼의 불멸성에 이르기를 강조한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세 가지 요가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분별하는 지혜, 실천적인 삶 그리고 신에게 헌신하는 길이다. 첫 번째, 분별하는 지혜는 말이나 논리가 아닌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영원한 것과 덧없는 것에 대한 구분을 의미한다. 수행자는 육체, 마음 그리고 자아라는 의식까지도 진정한 진아(眞我)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실천적인 삶이란 덧없는 논의의 이어짐이 아니라 분별하는 지혜로써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가지고 진리를 향하는 삶의 태도이다. 요가 수행자의 행위는 무조건적인 포기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는 욕망의 단념이라고 강조한다. 세 번째, 헌신의 요가에서 귀의자의 태도는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다른 방편보다도 우월하게 깨달음의 자각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신분이나 계층, 지식의 구분 없이 순수한 영혼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제시된다. 이 세 가지 요가의 길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연결되어 있는 수행자의 길이다. 지혜가 없으면 무지한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카르마의 과업을 낳게 된다고 말한다. “바가바드기타의 주요한 주제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윤회인가, 살아서의 해탈인가 하는 안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5행위의 실천에 나오는 아르쥬나와 크리쉬나의 문답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불멸의 영혼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아르쥬나가 묻기를,

크리쉬나여! 당신은 행위의 포기를 높이 평가했고, 또 다시 행위의 요가(Karma yoga)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둘 중에 더 나은 하나가 무엇인지 제게 명확하게 말씀 해 주십시오.”

 

크리쉬나가 대답하기를,

행위를 포기하거나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두 가지 모두 좋으 나, 행위를 회피하는 것보다는 행위를 실천 수행하는 요가가 좋다. 대립되는 어떤 것을 혐 오하지도 어떤 것도 갈망하지도 않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은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도 증오도 포기한 귀의자이다.”(p.151~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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