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이른 사랑을 했습니다
황연태 지음, 황유진 그림 / 부크크(book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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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톡 깨톡하루에도 여러 차례, 많을 때는 수십 차례 울어대는 톡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특히 단톡방에서 무슨 안건이라도 협의한다면 그날은 하루종일 폰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문명(文明)의 이기(利器)인지라 거부할 순 없겠지만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다소 불편한 점을 필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말 연초에 지인들에게 톡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 인사라도 할라치면 너무 성의 없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그 신속함과 편리성에는 감탄을 하게 된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 연하장이라도 보내려면 받을 분들의 주소를 알아낸 후 연하장 속지에 일일이 감사의 글을 적고 겉봉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국이나 우체통까지 직접 가서 보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송달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최소 3일 이상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보내야 하니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답장이라도 기대하는 친구나 연인 간의 손편지라면 왕복 일주일 정도는 소요되고 그때부터는 우체부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대문 앞을 서성거려야 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런 경험을 한 지도 꽤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아련히 손편지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리운 57통의 손편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힌 우린 너무 이른 사랑을 했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소설이나 에세이, 그것도 남녀 간의 사랑이 주제가 되는 책은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가 필자가 가입해 있는 인터넷 독서카페의 회원이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사용하는 닉네임이 서로 아주 유사하여 동지애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4년 전인 2017년에 이 책 저자의 전역 군인 생존 바이블을 읽고 글을 쓴 경험이 있어 아무래도 읽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젊은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힘든 시기에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또한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1년여 기간 동안 주고받은 57통의 손편지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과 함께 7년의 연애 기간과 결혼 후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던 아내와 제 앞가림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남매를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수많은 손편지와 국제전화로 서로를 그리워했던 우리 부부의 지난 추억들도 소환해 주었다.

 

   책에는 24세의 남자와 23세의 여자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한 채 유진이라는 딸을 낳고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채 되지 않아 육군 장교 임관을 위한 훈육대로 떠나게 되고, 여자는 1살 된 딸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서로 만날 시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힘들고 고단한 하루하루의 여정을 57통의 손편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그저 평범한 두 남녀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시작한 이른 사랑으로 겪은 1년여 기간의 인생 이야기이다. 서로 애틋하고 가슴 절절한 심정으로 써 내려갔던 손편지에는 군생활의 힘든 과정 속에서도 아내와 딸 유진이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인내하고 극복하는 남자의 책임감이,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혹여나 훈련 중 남편이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소대장으로 임관한 후 직책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할까 걱정하는 아내의 연민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책의 중간중간 손편지 속에 등장하는 딸아이인 유진이가 그린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어 27년이라는 세월 동안 참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구나 싶다. 글을 쓰기 전에 참고삼아 저자의 블로그를 검색해 보았는데 저자는 소령으로 예편해서 현재는 전국의 부대를 순회하며 군사보안에 대한 강의를 하고 계시고 - 실전 사례로 익히고 배우는 군사 보안 첫걸음(2019)도 출간 딸 유진씨는 미술조형 디자인(서양화)을 전공하고 임상상담심리 석사과정을 마치고 직장생활과 아이들 그림지도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출산을 하지 않아 책에서는 당연히 등장하지 않았던 유진씨 남동생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간부 장교로 임관하여 대를 이어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으로 나온다. 책임감 있고 반듯한 삶을 살아온 부부이었기에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한 것으로 보여 흐뭇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내밀한 두 분만의 손편지인지라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어지간한 용기로는 힘들었을텐데, 이 책을 통해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도 부부간의 사랑과 인내로 힘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책 사이사이에 글과 연관된 유명인의 명언이나 시()도 끼워져 있어 자칫 가벼울 수 있는 내용에 무게감을 더해 주는 듯하다. 참고로 필자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 않고 조금 번거로웠지만 편지를 쓴 날짜의 순서대로 아내의 편지를 읽고 남편의 답장을 읽는 혹은 그 반대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이해도를 높이고 연결이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었다. 언제 날 한 번 잡아서 우리 부부의 연애 시절 빛바랜 편지들을 꺼내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한 가지 아쉬운 옥의 티라면 오탈자가 예상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내용 파악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어 보고 싶은 분들이나 아날로그 삶의 방식을 접하고 싶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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