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7. SAT
아침부터 미리 끊어둔 조조영화 시간을 맞추기위해 서둘러야했다. 눈떠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7:32a.m. 영화는 9시에 시작이었다. 사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조조영화를 예매한 것은 주말마다 늘어지고 게으르게 퍼져있는 나 자신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말에 늘어져있는게 가끔씩은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너무 자주하다보면 너무 늘어져서 일어날 생각도 하기 싫어지고 월요병이 도지고, 주중 일상이 힘겨워지는 나비효과가 있기때문에 바람직한 습관이 아니다. 그리하여 영화관에 도착해보니 나 말고도 3명이 같은 상영관에 앉아있었다.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뭐 때문에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여기 앉아있을까..ㅋㅋ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참 예뻤다.)
내가 토요일 아침부터 보겠다고 선택한 영화는 <The Age of Adeline>. 어느날의 교통사고로 시간을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그날의 사고로 29세의 나이에서 멈췄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면 그 날 사고로 그녀는 벼락을 맞았고 그 전류(?)가 그녀의 DNA에 변화를 일으켜 노화가 일어나지 않게되었다는... 설정이었다. 사실 조금은 황당한 설정이었지만 영화가 2시간이나 남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기로했다. 그 설정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 이후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가였다. 늙지 않는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것이다. 늘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하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자연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순리를 따르고 있기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곁에는 그녀의 비밀을 아는 오직 한 사람. 그녀의 딸만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자신의 어머니보다 늙은 모습으로 어머니의 삶을 바라봐준다. 이 둘의 관계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녀는 서로를 어머니와 딸로서 대할 수 없게된다. (물론 둘만 있을때엔 다르겠지만) 딸이 어머니의 표면적인(?) 나이를 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친구로, 어머니로, 심지어 할머니로 자신을 소개해야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매번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집, 직장을 찾아야했고 그렇게 세상에 스며들기위해 늘 긴장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연은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게된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밀어내고 묻으려 애썼던 인연들은 오랜 시간을 돌아 결국 그녀 자신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끝에서 그녀는 그녀에게 돌아온 그 모든 시간들을 함께 견뎌줄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고장난 시계는 다시 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가 더이상 그녀에게 소중한 이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우리처럼 평범하게 시간의 순리를 따라 늙어가는 사람에게나, 아델라인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의미에서. 우리처럼 멈추지 않는 시계를 가진 사람들은 그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위해, 소중한 순간을 붙들기 위해 애쓴다. 반면 아델라인은 그런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홀로 그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둘 다 매우 힘든 여정일 것이다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후자보다는 전자의 삶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견디는 삶을 택할 것이 분명하다.
암튼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되었다. 시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잡아둘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렇게 기록을 남기고 사진도 찍고 그걸 다시 돌아보고 하게된다. 나에게 소중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들여다보고 싶어서. 뭐라도 흔적을 남겨서 내가 그 때 그렇게 행복했구나, 슬펐구나, 힘들었구나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그 때는 너무 당연하고 너무 일상적인 것이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자꾸 생각나고 돌아가고 싶어지는 순간들도 있다. 잡아두지 못해서 더 아쉽고 생각나는.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 생각나고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한 것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과 만나면 그 순간을 함께 떠올리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영화가 떠올랐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와 <인터스텔라>. <벤자민 버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로 죽는 기묘한 운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 시간이 멈춘 것이든 시간을 역류하는 것이든 자연스럽지 못하고 평범하지 못한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에서 생긴 시공간의 왜곡으로 인해 우주와 지구 사이에 생긴 시차로 아버지와 딸이 (아델라인과 딸의 시간이 엇갈린 것처럼) 나이가 엇갈리게 된다. <인터스텔라>에서도 그 나이의 엇갈림이 묘하게 느껴졌는데, 아델라인과 그녀의 딸을 볼 때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묘함이 느껴졌다.
우주와 지구 사이의 시차로 서로 엇갈린 나이의 아버지와 딸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모녀의 관계를 숨기고 자신의 어머니를 자신의 친구로, 딸로, 심지어 손녀딸로 대해야만 하는 상황.

(자신에게만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숙명으로 (할머니가 된 딸과 그녀의 손주들을 마주하게 되는 매튜 맥커너히..)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브레드 피트..)
+ (그냥 영화에 대한 이야기) 모든 영화는 어떤 어쩔 수 없음에 대한 변명이다. 좋은 영화는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좋은 변명을 하고, 그냥 그런 영화는 그 상황에 대해 제대로 변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치밀하거나 모든 것이 이치에 맞는 ‘설명’이 아니라, 어떻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또 다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오게 되었는지, 그 많은 노력과 애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기에 서있는 것인지. 그 사람이 서있는 자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자면 그 사람의 상황에 몰입하게 하고, 내가 만약 그 자리에, 그 상황에 놓였더라면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렇게 다른 이들의 어쩔 수 없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나’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게 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