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잃어버린 편지들 中

"인간의 권력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 (p.11)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법률은 국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처벌한다. 언제 국가가 이 말이나 저 말이 제 안전을 침해한다고 외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p.12)

어떤 이유로 그녀는 그에 대해 불만을 품었는데, 가장 비현실적인 관계(그녀가 알지 못하는 마스투르보프와의 관계)에 가장 구체적인 감정(눈물 속에 구체화된 감정)을 씌운 것처럼 가장 구체적인 행동에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불만족에 정치적 명칭을 붙일 줄 알았다. (pp.14-15)

아옌데 암살은 러시아의 보헤미아 침공에 관한 기억을 금세 뒤덮어 버렸고, 방글라데시의 유혈 사태는 아옌데를 잊게 했으며, 시나이 사막 전쟁은 방글라데시의 울부짖음을 뒤덮었고, 캄보디아 학살은 시나이를 잊게 했으며,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깡그리 잊을 때까지 사건이 이어졌다. (p.19)

그렇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훨씬 똑똑했다. 그들에게는 웅대한 계획이 있었다. 모두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계획이었다. 그들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큰 꿈이 없었고 단지 낡고 지루한 몇가지 도덕적 원칙밖에 없었다. 그 원칙을 그들은 기존의 질서라는 구멍 난 팬티나 기우는데 사용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 용감한 자들, 열광하는 자들이 미적지근하고 조심스러운 자들을 쉽게 이기고, 자신들의 꿈인, 만인을 위한 정의라는 목가를 실현하려고 서두른 것은 놀랍지 않다.
나는 만인을 위한이라는 말과 목가라는 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언제나 목가를, 꾀꼬리가 노래하는 정원을, 조화의 왕국을, 세상이 인간을 소외하지 않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외하지 않으며, 세상과 모든 인간이 유일하고동일한 물질로 만들어진 그런 왕국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흐의 숭고한 푸가ㅢ 음표 하나 하나가 되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의미 없고 불필요한 검은 점으로 남기에, 벼룩처럼 잡아서 손톱 밑에 대고 뭉개 버리면 그만이다.

목가를 위해 필요한 기질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목가란 본질적으로 모두를 위한 세상이므로,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목가를 부정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어 외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철창 뒤로 가게 되었다. 곧 수천, 수만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는데, 개중에는 고트발트에게 털모자를 빌려 주었던 외무부 장관 클레멘티스같은 공산주의자들도 많았다.
영화관 스크린에서는 수줍은 연인들이 손을 맞잡았고,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법정에서는 간통이 엄중하게 체벌되었다. 꾀꼬리들은 노래했고, 클레멘티스의 시체는 인류의 새 아침을 알리는 종처럼 흔들거렸다.
그러자 지적이고 급진적인 이 젊은이들은 문득,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닮지 않게 되었으며, 그들이 한 행위가 드넓은 세상에 나가 고유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기묘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 행위는 그들이 품었던 생각과 더 이상 닮지 않았고, 행위 주체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이 똑똑한 젊은이들은 그 행위를 하고 난 뒤 비명을 내질렀고, 그 행위를 부르며 비난하고, 뒤쫓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재능 넘치고 똑똑한 세대에 관해 소설을 쓴다면 제목을 `잃어버린 행위 사냥`이라고 붙일 것이다. (pp.20-22)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그가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얘기다. 마치 그의 삶은 해방되어 갑자기 미레크의 이해관계와는 전혀 들어맞지않는 고유의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식으로 삶이 운명으로 변하는 것 같다. 운명에겐 미레크를 위해 새끼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의향이 없지만(그의 행복과 안전과 유쾌한 기분과 건강을 위해) 미레크는 자신의 운명을 위해 무엇이건 할 각오였다.(운명의 위대함과 명료함, 아름다움과 스타일, 이해 가능한 의미를 위해서.) 그는 자기 운명에 책임을 느꼈지만, 그의 운명은 그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p.26)

대개 역사적 사건들은 별다른 재간 없이 서로 닮는다. 하지만 보헤미아에서 역사는 전대미문의 실험을 단행한 것 같다. 그곳에선 옛날 방식대로 한 무리 사람들(한 계층, 한 민족)이 다른 무리에 맞서 일어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한 세대의 남녀가) 자신들의 청춘기에 맞서 일어섰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붙잡아 길들이려고 애썼고, 어느 정도는 성공하는 듯했다. 1960년대에는 영향력을 점점 더 획득하여 1968년 초에 그들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바로 이 후자의 시기를 일반적으로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른다. (p.32)

그가 그의 인생 사진첩에서 그녀를 지우고 싶은건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지웠다. 그녀와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당 선전국이 고트발트가 역사적 연설을 한 발코니에서 클레멘티스를 사라지게 했듯 그는 그녀의 이미지를 사라지게 하려고 그것을 마구 긁어댔다. 미레크는 공산당이 그러듯, 모든 당이 그러듯, 모든 민족이, 인간이 그러듯 역사를 다시 썼다. 사람들은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외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불과할 뿐이지만 과거는 삶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얼굴이 우리를 약올리고 화나게 하고 상처 입혀,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거나 다시 그리고 싶어한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의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전기와 역사를 다시 쓰고 사진을 다시 손 볼 수 있는 암실에 접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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