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 이론과 쟁점 현대의 지성 117
고부응 외 11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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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가 여러 명인 책의 장점은 비빔밥을 먹는 것과 같다. 한 권으로 대략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반면 하나하나 자세한 논의를 진행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특히 처음 만나는 용어들과 개념들을 접하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낯설게 뱉어내는 용어나 인물들 중에서 아는 이름이라도 하나 만나는 것은 색다른 기쁨이다.

탈식민주의(post colonialism)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논의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부정적인 근대성을 극복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극복대상인 근대성은 전지구적으로 동일한가? 여기에서 지역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근대성이 형성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군다나, 제3세계의 근대성이란 대부분 자생적이라기보다 그 출생시기가 식민시대와 궤를 함께 하지않는가.

탈식민주의는 그러한 근대성이 식민시대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탈식민주의이라는 말이 인기리에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탈식민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류정도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탈식민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이론으로 탈식민주의를 해석한 바바, 스피박과 같은 학자들을 주류로 파악하는 것도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해석은 탈식민주의에게 다시 '유럽행 우표'를 붙이는 것과 다름없다. 극복대상인 근대성을 전지구적으로 동일시하는 것도 또 다른 유럽중심주의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정리되기 이전에도 제3세계의 투쟁의 역사는 존재했다. 사이드가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유럽중심의 역사의식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탈식민주의학자인 아마드(Ahmad)는 사이드를 '문화적 양서류'라 비판한다. 그들에게 탈식민주의의 뿌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이들에게는 사이드보다 <검은 피부, 흰 가면> 파농(Fanon)의 발자취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는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다. 동거를 찬성하는 쪽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가 갖고있는 매력에 이끌리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중심적인 거대담론을 해체하여 주변화되었던 제3세계 '타자'들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동거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메스에는 눈이 없다. 들이대야할 환부와 다른 부위를 구분하지 못한다. 서구중심의 거대담론뿐 아니라, (어쩌면 다른 의도에 의해) 그나마 제3세계가 갖고있던 보호기제까지 해체하려든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장에 무방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문들을 모여있어 효율적인 효과는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들이긴 하지만, 그 논의의 깊이가 깊어서 완전한 이해는 요원한 듯싶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내 무식함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들이 모두 영문학자라는 것이다. '영어'라는 제1세계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제3세계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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