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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희생양 -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
정일권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3년 4월
평점 :
붓다와 희생양
정일권
SFC출판부, 2013.
20세기 들어 서구에서 불교의 기세가 맹렬했다. 양자역학을 이미 불교에서 발견했다는 등의 과격한 찬양 일색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교에 대한 사랑이 주춤하는 편이다. 정일권 교수의 책은 그러한 경향을 잘 대변해준다. 그는 르네 지라르에 기반한 사회인류학을 바탕으로 불교를 해체하는데, 이는 사회인류학적으로 불교를 조망한 시도를 통해 불교 이해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이제 불교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이 책을 경유해야 할 것이다.
정일권 교수는 국내엔 몇 없는 지라르 전문가이다. 르네 지라르의 철학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다. 20세기 후반에 `거울 뉴런`의 발견으로 그의 위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 책은 지라르의 이론의 기초적인 부분을 소개하지 않으므로 최대한 간략히 언급하겠다. 르네 지라르는 인간을 `모방자`로 이해한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을 모방한다. 모방의 깊이는 매우 깊어서 심원한 욕망까지 모방자를 통해야만 한다. 예컨대 동생은 형이 가진 것을 갈망하고, 여자는 연예인의 패션과 얼굴을 모방한다. 모방의 열망은 모방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치열해져 모방자는 폭력마저 불사하게 된다. 모방자와 모방 대상과의 거리가 극도로 가까워지는 현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 그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는데, 이를 `무차별화`라고 부른다. 무차별화는 역병처럼 전이되며, 사회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다.
이 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찾은 해결책은 희생양을 만들어서 폭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희생양은 사회의 폭력을 담당할 정도로 사회에 속해 있어야 하지만 그 폭력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장애인과 고아, 거지는 희생양의 주요 후보가 되어왔다. 희생양은 폭력을 전담해야 하므로 그럴만한 죄를 지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희생양으로 하여금 온갖 금기와 죄를 짓도록 강요한다. 이렇게 하여 `무고한` 희생양은 까닭 없이 미움을 당하게 된다.
희생양에게 집단적인 린치를 가함으로써 사회의 누적된 증오가 해소된다. 폭력에 참여한 사람은 이러한 `기적`에 놀라 이를 신의 개입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무고한 희생양을 제물로 삼아 신의 존재와 행적이 입증되고 종교가 시작된다. 따라서 지라르는 신의 이면엔 희생양이 있고, 바로 그 희생양이 신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 원초적인 폭력의 효과가 떨어졌을 때 (실은, 다시 무차별화가 사회를 장악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과거의 폭력을 되풀이한다. 단, 이제는 이러한 폭력이 사회를 뒤흔들지 못 하도록 상당히 열화하여 모방한다. 위기와 폭력을 모방하는 기간에는 사회의 금기가 해방된다. 상당수의 금기(~을 하지 마라)가 무차별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금기, 복장에 대한 금기, 행동에 대한 금기가 허용되고, 오히려 권장된다. 모방은 사회 내의 비정상자를 제의화된 폭력의 제물로 삼고 그것의 영험한 효능을 느낌으로써 끝난다. 사회는 이러한 모방과정을 신의 이름 아래서 진행한다. 이것이 지라르가 말하는 축제의 기원이며 역사적인 역할이다. 그는 최초의 폭력을 문화의 기원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아닌 동물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가축을 치기 시작하고, 금기에서 윤리와 제도가 나왔으며, 제의적 축제가 사회를 응집시키고 문화를 배양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폭력을 발견하지 못한 부족들은 위기를 못이기고 사라진다. `자연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정일권 교수는 이러한 지라르의 이론을 불교에 적용한다. 그는 불교를 사회인류학적으로도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했을 때 불교의 알려지지 않은 면이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붓다가 사실은 희생양이었고, 승려들은 규격화된 희생양이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엄격히 나눠지며, 출가자가 희생양의 계율을 지키는 데 반해 재가자들은 온갖 욕망의 추구가 허용된다. 입적한 고승의 등신불은 복을 부르는 부적이고, 승려는 걸어다니는 사회적 시체이자 죄악의 정화소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승려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사회의 계층질서를 전적으로 긍정한다. 승이 사회적 시체라는 점이 중요한데, 공 사상과 불가의 수행이 여기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자역학이나 데리다의 해체 사상과 연결될 여지는 없다. 오히려 희생제의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가를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불교에 깃든 희생제의를 노골적으로 파헤친다.
정일권 교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불교가 동양의 불교인지 서구의 낭만화된 불교인지 묻는다. 서양의 불교는 서양이 자신의 문화를 투영해서 오독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교토학파의 선불교는 서양을 모방하려는 질투의 발로이다. 숭고한 윤리를 자랑하는 평화의 종교로서의 불교는 최근에 고안된 작품이다. 사회질서에 비판적이고 소외된 자를 신원하는 윤리적 전통은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의 예언자들에 닿아 있다. 아쉽게도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교토학파 선불교의 시도는 일제의 전제주의를 사상적으로 정당화하면서 파국을 맞는다. 불교 근대화의 바통을 프로테스탄트 불교가 건네받지만 아직은 서구 문명의 근대성을 따라잡기 요원하다. 여기에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불교를 수용하는 사상가들이 반민주주의적이고 비윤리적인 희생제의를 정당화하지는 않는가 캐묻는다.
˝붓다와 희생양˝을 읽기 위해서는 제반 지식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상당히 불친절하다. 동서양의 불교뿐 아니라 불교를 수용한 사상가들의 이론까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교를 그것의 기원에서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싯다르타 시대의 인도에 대한 거친 스케치조차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을 원숙하게 비평해낼 수 있는 독자가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비록 방대한 양의 참고문헌이 신뢰성을 보장해주지만 저자가 대결상대를 좀 더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정일권 교수가 이 책의 내용에 기독교를 포함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서술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지라르의 관점은 서구 문명과 기독교 전통의 우월성을 주장하는데,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이는 단순한 기독교 변증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문제를 공개하고 해결의 단초를 지라르의 입장에서 간략히 설명했으면 좀 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라르에 대한 비판을 암시적으로 남겨놓은 점도 아쉽다. 지라르의 이론은 저자가 표현한 대로 사실을 `거칠게` 다룬다. 이 때문에 심리적인 거리감이 들기 쉽다. 예컨대 나는 아직 지라르가 왜 사회인류학적인 이론인지 궁금하다. 사회인류학적 이론의 평가 기준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지라르의 이론이 왜 과학적인지(반증가능성의 기준에 따라 어떻게 반증이 가능할지), 그리고 지라르의 이론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시해준다면 지라르의 관점을 기반으로 한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저자가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불교에 적용한 것처럼 지라르의 관점은 활용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어로 출판된 책을 소개하자면 경제학에 적용하여 자본주의를 비판한 책으로는 김진식 교수의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 비판˝이 있다. 김진식 교수의 문제의식을 공감하지만 자본주의를 긍정하며 경영과 창업에 대해 적용한 책은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이 있다. 사람들은 이 책이 독점을 옹호한다고 비판하지만 피터 틸의 문제의식은 `경쟁을 일반화한 현대의 무차별화현상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피터 틸이 제시한 대답은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기업은 독점기업이 되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의 비관적인 인간이해로 볼 때 피터 틸이 독점기업의 폐해를 정당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르네 지라르는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세계적인 이론가이다. 르네 지라르의 입장에서 포스트모던주의의 사조를 평가한 책은 정일권교수의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이 있다. 이 책도 대결상대의 사상에 대해 소개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그러한 소개가 포함되었다면 책의 분량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을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의 밀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정일권 교수가 쓴 책들을 살펴봤을 때, 그의 의도는 논증과 증명보다는 르네 지라르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학술적 성과들을 소개하는 것에 가깝다. 르네 지라르의 학술적 결론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