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21세기 북스. 2014.

이 책은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행복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행복에 대한 기존의 조언들이 가진 편견을 밝히고, 최근까지 밝혀진 행복에 대한 과학적 이론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실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설명들이 저자에 의해 파헤쳐진다. 그러면서도 책의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인데 바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p. 192)”

서은국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행복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진화 심리학의 관점으로 인간과 행복을 바라본다. 책에 의하면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한 진화의 결과물인 뇌에 큰 영향을 받으며, 행복은 뇌에서 경험하는 쾌락이다. 저자는 이런 진화심리학의 토대 위에서 책을 서술해 나간다. 책을 읽고 나면 생존에 필요했던 음식과, 생존을 도와주었던 사회성이 현재의 행복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존에 출판된 진화 심리학에 바탕을 둔 교양서는 공격적인 무신론과 성적 가십에 치중한 내용이라는 한계를 보였다. 지나치게 기독교 진영을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유사 과학인 창조론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또한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진화 심리학이 성에 대한 파문에만 유용하게 인용되는 모습은 너무 가볍게만 보였다. 서은국 교수는 이러한 기조를 비틀어 행복이라는 중후한 주제를 다루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만의 주제라고 여겨졌던 행복이 이제는 과학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되는 ‘통섭’은 과학이 인문학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날까?

저자는 행복에 대한 설명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 이론과 다윈으로부터 유래한 이론으로 나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만물에 목적이 있다고 보기에 관찰자의 주관과 시대의 편견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진화론에 기반한 설명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 있다. 실험에 의한 통계가 주관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설계된 실험들이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린다. 저자는 이러한 실험들의 의미를 자연스러운 비유로 그 의미를 풀어낸다. 행복은 ‘동전탐지기’이며 ‘아이스크림’과 같고, 인간은 ‘사람쟁이’이다.

이 책은 상당히 건질 내용이 많다. 저자가 공격하는 편견은 실제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활 속의 사소한 즐거움이 행복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오히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야 한다. 또한 돈이나 외모, 건강 같은 객관적인 조건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조건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 개인의 행복을 좌우한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가 유전자라는 점은 알고 있는가? 얼핏 보면 유전자 결정론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이 함정마저 비켜나가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지는지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왜 한국인이 그 높은 경제수준을 가지고도 불행에 빠져있는지를 분석한다. 책의 전반부가 인간은 왜 행복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라면, 후반부는 그 설명을 현재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 요약하자면, 행복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인 사람과의 관계가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비록 한국의 문화에 대한 처방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만(이는 책이 다루고자 한 범주를 벗어난다), 불행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시각을 보여준다. 전반부의 결론이 행복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전한 설명이므로 진화심리학을 꺼리는 이도 수긍할 만 하다

진화심리학은 이제 기존의 심리학이 다루고 있던 주제에 대해서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문학은 행복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진화심리학을 비롯한 과학에 치이고 있다. 앞으로 과학은 더욱 더 대담한 주장을 펼쳐 나갈 것이다. 지금은 과학이 신과 도덕을 재구성하고, 행복을 설명해 내는 시대이다. 과연 인문학과 같은 분과학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답하려는 과학의 야망에 아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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