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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고백 - 돈과 시장을 이긴 미완의 철학
조지 소로스 지음, 이건 옮김 / 북돋움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억만장자의 고백
조지 소로스, 이건 역.
북돋움, 2014.
“그러나 오늘의 나를 만든 이 개념의 틀 자체는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고와 현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방법으로, 예부터 철학자들이 널리 연구해온 주제입니다.”(p.17)
조지 소로스는 네 장에 걸쳐 자신의 개념 체계를 소개한다. 1, 2장에서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오류성과 재귀성을 설명하고, 3장과 4장에 걸쳐 열린 사회와 도덕성을 덧붙인다. 이 개념들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다. 이는 철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듯 하나 결국 금융시장의 챔피언에 머무는 소로스의 정체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어설픈 철학도 행세 때문에 독자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투자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부록에서 보이는 그의 태도로 볼 때, 자신의 설명 자체가 시장에 끼칠 영향을 막으려는 것 같다. 소로스의 선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의 전작, “금융의 연금술”(국일증권경제연구소, 1998)을 찾아봐야 한다.
이제 그의 개념체계를 살펴보자. 먼저 오류성은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행태경제학과 심리학의 업적을 통해 인간 인식의 불완전함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소로스는 여기에 엉성한 철학적 개념을 끼얹는데, 바로 재귀성이다. 재귀성은 인간의 오류가 객관적인 현실을 변형시킨다는 것을 가리킨다. 소로스는 인간을 두 기능으로 파악한다. 한 기능은 현실을 인식하고 다른 기능은 현실을 조작한다. 문제는 이 두 기능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사실이고 더 큰 문제는 소로스가 갑자기 재귀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재귀성에 대한 그의 설명은 피카소의 그림보다 혼란스럽다. 다행히 그가 말하는 재귀적 피드백 고리는 보다 명료하다.
“사람들의 생각은 사건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사건 흐름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영향이 연속적이고 순환하므로 피드백(feedback) 고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순환 과정은 관점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상황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p.29)
이 재귀적 피드백 고리를 설명하기 위해 소로스는 현실을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으로 나눈다. 외부 현실은 객관적이고 단 하나뿐이지만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상이 맺힌다. 현실의 주관적인 측면은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다. 행동을 통해 현실의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이 연결되면서 피드백 고리가 나타난다. 피드백 고리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긍정적 피드백 고리는 마음속의 상을 강화하지만 부정적 피드백 고리는 현실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의 차이를 상쇄한다.
2장에서 피드백 고리는 ‘거품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금융 시장에 적용된다. 이 모델은 과학적 모델보다는 현실과 기대가 어긋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에 가깝다. 거품 모델을 설명하기 전에는 긍정적 피드백 고리와 금융 시장을 연결지은 말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소로스는 가치투자자와는 달리 금융 시장을 `장기적으로는 저울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투표 계산기`로 보지 않는다.
“나는 금융 시장이 펀더멘탈을 바꿔놓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시장 가격과 펀더멘탈이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p.47)
소로스는 레버리지 효과를 들며 이를 간단히 입증한다. 이 문구는 소로스에게 있어 금융 시장이 일종의 아고라라는 점을 암시한다. 소로스의 아고라는 사회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지금은 반파된 효율적 시장가설 추종자를 반박하는 한편 가치투자자가 시장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감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 실제 기업은 시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치투자자의 선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로스가 옳다면, 가치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치투자자는 금융계의 보수주의자다. 이들은 가치에 대한 신조를 고백하는 한편 현실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투자 기업의 수를 늘렸고 워렌 버핏은 기업 자체의 성장성마저 꿰뚫어보았다. 피터 린치는 기업의 인기를 생활 속에서 먼저 확인하여 이 위험을 줄였다. 조셉 칼란드로는 “투자 천재들의 가치투자 실전 운용법”(부크홀릭, 2010)에서 소로스의 거품 모델을 수용했고 이를 통해 거시 경제의 변동에서 기회를 찾으려 한다. 물론 그의 거품 모델이 현실과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재귀성 개념을 설명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다른 두 개념은 어떨까? 3장에서는 소로스가 스승에게 물려받은 ‘열린 사회’가 등장한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조지 소로스의 열린 사회가 같은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소로스의 열린 사회에서 균형이 일반적일지도 의문이다. 소로스는 열린 사회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나 목적 자체로서나 더 바람직한 사회조직 형태”(p.90)라고 단언한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열린 사회는 그가 바라마지 않는 사회의 이상형으로 보인다. 아마 그는 이 이상을 바탕으로 사회의 조직을 평가하지 않을까?
소로스는 4장에서 도덕성을 언급하지만 재귀성을 설명할 때처럼 횡설수설한다. 도대체 그가 말하는 도덕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소로스는 도덕성의 존재를 말하고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대리인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책임의 필요설을 설파하지만, 책임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물거리고 만다.
나심 탈레브의 평가가 옳았다. 소로스의 책을 접하기 전에는 칼 포퍼의 사상을 실천하는 제자로 생각했었다. 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중앙북스, 2010)에서 소로스를 치켜 올리는 와중에 그를 깎아내린다. 옮긴이의 말에 그 비판의 요지가 들어있다.
“탈레브는 소로스가 단지 지성인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 우월한 지위를 얻으려 했던 것이라고 보았다. 여자를 유혹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통하지 않자, 마침내 빨간색 페라리를 장만한 사내와 같다고 비유했다.”(p.8)
이 문장은 소로스의 철학적 소양을 날카롭게 평가하는 말이다. 예컨대, 그의 열린 사회가 합의할 균형에 과연 진리가 있을까? 객관적 현실과 진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가 말하는 도덕성과 진리의 관계는? 철학자라면 빠져들고 마는 진선미의 유혹조차 그를 이기지 못한다. 게다가 소로스는 재귀성을 설명할 때 엄밀한 정의에 도달하지 못한다. 재귀성에 대한 추상적 명제들은 어설픈 아포리즘들이 가닥가닥 엉킨 실뭉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가 언급하는 사례를 종합하여 유추하는 것이다. 물론 사례를 수집하는 내내 두괄식으로 쓰인 요점들이 머리를 산만하게 휘젓는다.
소로스의 책은 내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오류성과 재귀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좋은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둘째, 소로스는 포퍼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재귀성에 대한 소로스의 횡설수설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재귀적 피드백 고리 때문이다. 재귀성으로 뭉쳐서 설명하는 인간의 두 기능, 피드백 고리, 인간 불확실성의 원리는 포퍼보다는 현상학이나 해석학에 가까워 보인다. 현상학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반성하는 능력과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 자기의 체험을 경험하는 능력과 타인의 체험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이는 소로스가 말하는 현실의 주관적 측면과 유사하다.
그가 잠깐 설명하고 지나가는 자기 재귀성도 흥미롭다. 그는 타자의 시선 자체도 나의 행동을 조작한다는 점을 놓친다. 먼 과거의 산물인 파놉티콘을 들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메이요와 뢰슬리스버거가 실시한 호손 실험도 불완전하게나마 이를 입증하니까. 이는 타인의 선택에도 흔들리는 금융시장 참가자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개념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온갖 선택의 순간에도 유용하다. 나아가 객관적 현실, 진리, 영원, 가치, 나의 선택의 연결 관계에 대한 질문들도 파생된다. 그리고 균형이 아닌 세상에서 이익을 취하는 기술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소로스가 금융시장에서 사용한 차익거래 말이다. 아무래도 그의 전작을 들춰봐야겠다.
그렇다면 과연 소로스는 포퍼를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소로스는 철학자의 방법을 따르는 사상가라기보다는 천재에 가깝다. 그의 사상이라고 내놓은 재귀성이 검증의 칼날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다는 점, 스스로 고백하듯 객관적 현실을 ‘일종의 신앙’처럼 여긴다는 점을 고려한 결론이다. 사실 그가 검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능력이었다. 그는 프랑수아 줄리앙이 “전략”(교유서가, 2015)에서 묘사한 천재적 능력을 소유했음을 보였다.
“천재적 능력은 무엇인가? 정확히 말해 천재적 능력은 선행하는 모든 모델화들, 참모본부 회의실에서 세운 모든 계획들을 무시하고 직접 마주친 상황에서 생기는 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즉 ‘주도’ 요인들을 재빨리 포착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런 ‘천재적 능력’은 유럽적 합리성에 파국을 드러내는 것에 구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유럽적 합리성을 파열시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계획되 행동을 갑자기 내버리고 영감과 즉흥성을 도움으로서 요청하니 말이다.”
(프랑수아 줄리앙, 전략, p.27)
소로스가 사용한 기법이 널리 알려진 자본기법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의 생각도 한 물 갔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그 차익거래를 해 냈기 때문에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모델의 통제를 벗어난 순간을 지배했으므로. 철학적으로도 엄밀하지 않고 검증의 영역조차 빗겨가는 소로스의 개념은 그가 바라보는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이해하기 힘든 개념체계들이 소로스로 하여금 모델의 측정치 너머의 영역을 직관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니 탈레브의 비평은 극찬에 가깝다. 전쟁터와 같은 금융시장 속에서, 소로스가 실제로 ‘빨간 페라리를 장만’해 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자로 평가받길 바라는 소로스로서는 씁쓸하겠지만.
이제 그를 포퍼와 더불어 생각해 보자. 요즘은 자본주의의 도덕적 후유증이 드러나는 때라 그런지 사상적 문맥을 드러내는 자본가들이 눈에 띈다. 자본주의의 적자 중에 사상가를 등에 엎고 활동하는 사람을 하나 꼽자면 피터 틸이 있다. 그는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자본 속에 녹여내는 사람이다. 그와 소로스를 비교해보면 지라르와 포퍼 이론의 윤곽이 드러난다. 공통점은 둘 다 전체주의를 싫어하고 이론 속에서 군중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업가에서 투자자로 변한 틸의 커리어는 지라르 이론의 다산성을 보여준다. 마치 포퍼 이론의 다산성을 소로스가 보여주었듯 말이다. 그렇기에 과거 여러 나라의 통화 체제를 황폐화시키며 보여준 소로스의 비도덕성은 포퍼의 한계일 수도 있다. 포퍼를 읽어가며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1장에서 사회과학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소로스의 비판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심지어 한 발 더 나가고 싶다. 도대체 이들은 왜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는가? 내로라 하는 지식인이 대부분 안전지대에서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이미 진흙탕과 단단히 묶인 상황인데, 그 길을 밟는 게 그토록 두려운가? 소로스와 틸을 사회에 참여하게 몰아가게 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가가 진단한 현대의 위기다. 이 사회의 임박한 파국이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지식인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 데서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마는, 사회를 바꾸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사회를 위해 쓰고 있다고 자평하는 소로스가 사회에 더 도움이 될까 두렵다.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가 평가하듯, 새로운 경작물을 자라게 한 농부가 철학사 상의 모든 현자보다 인류에 공헌을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실리콘벨리의 창업가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것 같다. 사상가들은 자본의 논리를 좀 더 공부해야 한다. 안전지대에만 머무르거나 학교로 도피하지 말고 자본주의 안에서 싸우는 이들이 필요하다. 조지 소로스와 피터 틸처럼.
끝으로 책의 번역 혹은 편집에 대해 아쉬운 점 하나만 지적하자. 진리관에 대해 명확한 주석이 없다는 것이다. 1장의 재귀성을 설명하는 부분에 명제적 진리를 언급하는 것을 볼 때, 그가 나름대로의 진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에서 다루는 진리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면 소로스의 생각을 이해하기 좀 더 쉬웠지 않았을까.
내가 읽은 책이 2014년 개정판인데, 소로스가 스승으로 모시는 칼 포퍼(Karl Popper)를 ‘카를 포퍼’로, 자유주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을 ‘아이제이어 벌린’으로 옮긴 걸 고려하면 편집자가 정말 이 방향에서 무관심했음을 알 수 있다. 최고의 투자 전문 번역가를 모셔온 것을 보아하니 이 책을 투자 철학서로만 여긴 것 같다. 아아 현실의 주관적 측면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