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시리즈 중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와 ˝사도 바오로˝는 시공사 로고스 총서 시리즈의 책을 다시 출판했다. 제목이 달라졌지만 저자와 목차가 같으니 부인할 수 없으리라 본다.

1류 석학들이 쓴 입문서이기에 살 수 있다는 사실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만 가격은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아아 그놈의 물가상승률...

관심이 가는 책은 아무래도 헨리 채드윅의 아우구스티누스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입문하고 싶은데 피터 브라운의 대작은 너무 두껍다. 채드윅의 것은 얇으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총체를 보여줄 수 있겠지.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이 중세 학계를 규정한데다가 신국론은 베스트팔렌 조약 이전의 유럽 정국을 지배했다는데, 막상 그 자신의 책은 읽히지 않는다. 전에도 큰 맘 먹고 고백록(최민순 역)을 손에 들었다가 열 장을 채 못 넘기고 던지고 말았다. 중2병 돋는 문체가 문제였다.

사실 요즘 중학생들은 급식체(...)를 쓰니 맞는 말은 아니다만 무릎을 탁! 칠만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신론자 E. P. 샌더스가 소개하는 사도 바울도 매력적이다. 샌더스는 유대인에 대한 기존 관념을 갈아엎은 학자다. 교회에선 들을 수 없는 바울의 신선한 모습을 그의 책에서 읽을수 있다.

개신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으려 노력한다`고 보았다면 샌더스는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해낸 신의 은총에 머물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본래 개신교도들이 유대인들의 열심을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헛된 시도로 여겼다면 샌더스는 그들 역시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반박한 셈이다.

샌더스의 성과가 일으킨 돌풍이 여전히 바울 신학계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학식 있는 기독교도들에게는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냐`가 매우 중요한 주제기 때문이다. 그 대략을 볼 수 있는 책을 꼽자면 ˝칭의 논쟁˝(새물결플러스)이 있다. 고급반 독자께선 ˝최근 바울과 율법 연구 동향˝(베로니카 코페르스키)를 읽으시면 되겠다.

이 쪽과 관련된 이론이 이른바 칭의론인데, 관련 도서를 읽어보면 이쪽 분야가 사실은 개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교인들은 중세시대에서 헤매고 있다. 구원파가 이단으로 몰린 이유가 칭의론과 구원관에 문제가 있어서이지만, 일반 교인들에게 관련 논점을 물어보면 구원파와 별 차이 없다. 어휴.





덧) 바울이든 바오로든 명칭을 통일했으면 좋겠다. 바울, 바울로, 바오로 등 한 사람을 가리키는 번역이 너무 많다. 바울은 개신교 신자가, 바울로와 바오르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아마 역자는 가톨릭이 아닐까

신기하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택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어거스틴은 개신교가, 아우구스티노는 가톨릭이 주로 사용하는 걸로 안다.

RISS에서 검색해보니 아우구스티누스는 학위논문이 392건, 학술지논문이 465건이 나오고, 어거스틴은 학위논뿐 580건, 학술지논문이 320건이 나오는 반면 아우구스티노는 학위논문이 22건, 학술지논문이 29건밖에 없다. 아우구스띠노로 검색해도 각각 4건과 9건이 추가될 뿐이다.

일단 알라딘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로 명칭이 통일된 것으로 보인다. 어거스틴으로 검색해도 아우구스티누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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