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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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가 욕실에서 한 짝뿐인 운동화 옆, 새빨간 피가 점점이 묻은 딸의 팬티를 발견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나머지 한 짝의 파란 리복 운동화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아주머니의 딸 린디는 뇌진탕에 시달리며 자기 방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어린아이의 침대였던 그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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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명의 용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
지독히도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이제 30대가 된 화자가 약 20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989년의 어느 여름날 저녁, 이웃집에 사는 소녀 '린디'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누군가의 손에 채여 머리를 강타당한 후 성폭행을 당하고, 이 사건으로 그 작고 평화로웠던 '배턴루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그렇게 린디는 사건 전의 린디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린디를 깊이 사랑하던 '나'는 그녀를 위해 무얼 해주어야 좋을지, 아니 그 전에 그녀가 당한 일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강간'이란 뜻조차 모른 채 그저 짜증나는 일을 겪었구나, 게임 같은 것에서 뭔가 잘못 됐구나 정도로 인식한다.

그렇게 '나'의 어리숙한 사랑과 표현방식 때문에 린디는 몇 번이고 더 상처받게 되고, 화자는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했던 행동들에 대해 반성하면서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달라 말한다.

당신은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린디가 망가져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던 '나'는 용의자 중 한 명이자 입양아였던 '제이슨'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데려간 자신의 양아버지 방 벽장에서 온갖 사진들을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 중엔 유독 린디가 많았고 비상식적인 사진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의 '나'는 그 사진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가져와 자신의 비밀 상자(린디로 가득찬)에 넣어둔다.

그리고 후에 어머니가 그 상자를 발견한 후 그의 가족 역시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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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숲으로
장세이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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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좋아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제주에 머무르며 숲에서 주운 제철 글감으로 글을 짓고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며 살고 있는 저자의 숲 혹은 나무 혹은 자연을 다룬 에세이이다.🌱

차례만 펴보고도 '아, 이 책 재밌겠다.'라고 생각했다.

계절별로 6종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포근한 색연필 그림과 함께 쓰여있는데,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 혹은 겪었던 일에 대해 말하면서
"그럴 땐 이 나무를 좀 보세요."라며 연결시켜 준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보고 지나치는 나무.
그저 봄에는 벚나무로, 가을에는 단풍나무로 눈요기나 하며 살아온 지난 날들이 부끄럽게도 나무에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상의 이치와 지혜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동나무는 왜 좁은 상자에 들어가려는 대형견처럼 크게 자라는 제 본성을 무시하고 기어코 좁은 자리를 택해 뿌리를 내리는 걸까?

주로 악기나 가구를 만들 때 오동나무를 쓰는데 그만큼 조직이 단단하려면 너른 자리에서 자란 것보다 비좁은 자리에서 느리게 자란 '석상오동'이 최고라고 한다.

자신의 취약점을 알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힘든 길을 택하는 오동나무의 견고함이란.

🌳다른 식물과 어울리지 않고 스스로 고립을 택한 고고한 소나무.

이유는 햇빛을 가리면 결국 죽어버리는 '극양수'이기 때문에 다른 식물과의 햇빛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서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소나무의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뿌리에서 특유의 화학 성분을 내뿜어 다른 식물이 가까이 살지 못하게 한다.


차례가 <겨울>부터 시작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나무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라는 것이다.
잎도 꽃도 없는데 뭐 볼 게 있다는 걸까?

바로 '겨울눈'이었다.

줄기나 가지에 붙어 앙증맞게 자라기에 잎이나 꽃이 열릴 때는 보기가 힘들다.
이 작은 겨울눈 안에 잎과 꽃이 가득 들어차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저자는 오랜 시간 잡지 기자로 일하다 책방을 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매출이 0원인 날이 늘고 1인 가구로써의 고독감이 깊어질 때면 그저 숲으로 향한다.

성인 두 사람이 끌어안아도 모자란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일들이었나 다시금 깨달음을 얻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냥 숲과 나무를 좋아하긴 했어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론 좀 더 사랑과 존경을 담아 나무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110p.
백목련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비파나무는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과연 누가 앞서고 누가 뒤섰다 할 것인가.
그저 모든 생명은 제게 알맞은 때에 꽃피우며 살아갈 뿐이다.
이 귀한 진리를 잊으려 할 때마다 백목련꽃은 '모두의 제때는 저마다 다른 법!' 이라고 봄마다 환히 일깨운다.

🏷118p.
자연 발아에는 많은 우연이 존재한다.
씨앗은 바람이나 물, 새나 곤충이 자신을 실어 나를 곳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당도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싹을 틔울 뿐이다.

🏷220p.
나무의 너비와 그늘만큼 내려앉은 붉은 낙엽은 '내 아래 내가 남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강렬하게 전했다.

🏷230p.
미풍에 흔들려도 서로에게 상흔을 남기지 않는 마음, 자신을 지키며 타인 또한 스스로 지키도록 도우려는 마음, 자신뿐 아니라 깃들어 살아가는 뭇 생명까지 아우르는 마음!
그렇게 나무의 거리를 보며 관계의 거리를 가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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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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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길'이라는 한 남자가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마주친 한 클래식 자동차에 타게 되면서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그가 들어간 파티장에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는 황홀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 책이 그렇다.
우연히 마주친 황홀함 같다.

18세기부터 최근까지 다양하게 활동했던 33인의 예술가들의 이야기.
화가는 물론이고 조각가,가수,무용수,만화가,영화감독,배우,건축가,사진가,작곡가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이렇듯 다채롭게 차려놓은 예술 뷔페라니!

뱅크시는 알았어도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는 몰랐다.
찰리 채플린과 최대 라이벌이었던 키튼을 몰랐다.
1982년생 김지영 이전에 나혜석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영화촬영중인 그녀의 흑백사진 한 장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움을 느꼈다.

비단 누구나 들어봤을 유명한 예술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옆에서 미처 빛을 보지 못한 채 사그라든 예술가, 여성이란 이유로 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예술가, 죽은 뒤에야 재평가 된 무명의 예술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꽉 채워져 있다.

단 몇 페이지로 그들의 삶을 다 알수는 없지만 이 책의 매력은 따로 있다.
내가 찾아서 보고 듣게끔 한다는 것이다.

괴짜라 불리우던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제는 슬픈 전설이 되어버린 '천경자'의 <환상 여행>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고두고 음미하며 즐기고픈 책이다.
제발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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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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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4년간 기자로 일하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의 길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길을 벗어나 돌연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미국의 한 시골로 들어가 사는 것을 택한다.

번듯하고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의 삶이 아니라
낡은 조립주택에서 계절마다 재철 채소나 과일 등을 따먹고, 직접 통밀을 갈아 빵을 굽고, 된장을 만들어 먹으며 온전히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상상해봤을 법한 삶을 직접 실행에 옮긴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

그녀에게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비난도 있었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워서 고작 그런 삶을 살다니.'
'아이들 교육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 등등...

처음엔 작가 역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가 싶었지만
'왜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건데?'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자
그들의 비난을 더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도시의 누구 못지 않게 풍요로운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자연과 함께 하며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싶은 일만 하며 최소한으로 벌고, 쓸데없는 소비는 하지 않으며
도시에서 살았을 때보다 훨씬 많아진 시간을 TV나 인터넷, 유튜브에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가족과의 시간으로 채운다.

그들이 행복하지 못 할 이유가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시골에서의 소박하고 은은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푸릇푸릇한 자연 속에서 코로나 따위 감히 접근도 못 할 것 같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삶.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였을 뿐.
실제로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꽤나 깊이 있고 철학적인 내용이 많았다.
평소 철학과는 거리를 두고 산지라 살짝 긴장하며 읽었는데
다행히(?) 잘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아직도 아리송한 부분도 있다.
내게 철학은 여전히 어려운 세계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내 생각을 여러모로 뒤집는 글들이 있었고 이 책은 정말 유기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릴 것 없이 모든 장이 영양분으로 꽉 차있다.
웬만한 비슷한 류의 어설픈 심리도서보다는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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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과 망원 사이 -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
유이영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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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8회 대상 수상작》

신문기자 9년차이자 마포구에서만 7년째 독립하여 살고 있는 작가의 동네 탐방기이다.

그녀는 주로 홍대 근처에서 거주하며
기존 원주민들과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섞여 풍기는
묘하고 설레는 이 동네 분위기를 사랑한다.

여행하기 어려운 요즈음,
오히려 가까워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신의 동네에서
보물찾기를 해보길 권하는 그녀.

허름한 식당에서 혼밥을 해보기도 하고 시장을 둘러보기도 하며
밤에만 찾아오는 쌀국수 트럭에서 뜨끈한 쌀국수를 먹기도 한다.

그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와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쓰고 달리기'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녀가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보면서 읽어내려가니
그 동네의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지면서
'아 저 식당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란 생각도 들었다.

비단 서울의 핫한 동네라서 볼거리가 많다기보다는
나 역시 한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가보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이참에 슬슬 걸어다니며 우리동네 골목깨기(?)를 해볼까 싶다.

이제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금지라니...
심심한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우리동네 보물찾기나 하며
그것 또한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가서 걷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숨은 맛집이란 걸 알게 된다면 더욱 기쁠 것 같다!)

💬작가의 말

"동네를 거니는 나의 여정이, 멀리 떠날 수 없는 시기에 독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밖으로 나가 동네를 걸어보라고, 숨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라고 동네 보물찾기를 제안하고 싶다.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보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감각에 가장 가까워지는 경험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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