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의 아이들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11
김혜정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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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한파 속에서 따뜻하고 아팠던 저자의 소설 모나크 나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라온의 아이들을 만났다그러니까 시작은 이별의 말 한 마디 못 한 채 이별한 이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작가의 말)는 이야기.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라온이라는 섬에 와서 갇혀버린 아이들. 보라색 피부를 가진 그들은 그 섬으로 오는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부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무엇보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고작 열여덟 안팎인데.

 

  “이름을 가져야 비로소 자신이 되는 거야.”라고 번호로만 불리던 그들에게 기주, 고얼, 무애, 주안, 시형, 마로......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시루 선생님이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섬 주민일 뿐이다. 선생님 또한 섬 주민들 중 유일하게 보라색 피부를 가졌다.

  이방인의 표식인 보라색.

 

백과 사전에도 없는 보라색 피부라니. 왜 우리 피부는 보라색일까. 이 섬의 비밀은 뭘까. 이 섦 밖의 세상은 이 섬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가 살았던 곳은 어떤 곳일까. 우리는 거기서 뭘하며 지냈을까.”(p.26)

 

  라온의 아이, (기주)가 품게 된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은 아이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서서히,  회복하는 기억의 양에 정비례하여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몸의 통증도 느끼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불러내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한다.”(p.35)

  “사라지려고 하는 힘에 맞서는 것 또한 기억이지!”(p.36)

  “기억을 되찾아야만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테고.”(p.36)

 

  고래배를 만들며 오랜 세월 고독하게 자존을 지켜온 의사 첸은 라온의 아이들이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들 스스로 길을 찾고 힘을 갖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제사장(박쥐)에게 발각이 되면 안 된다. 박쥐가 기억을 되찾은 아이들을  ‘붉은 사막’에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라온은 전부터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온화하고, 지형 조건이 좋아 농작물이 풍성하며 동식물의 번식이 왕성했다.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수위 차가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도 많았다. 또 염생식물과 다양한 종의 어채류가 서식했다. 다만, 인접해 있는 붉은 사막이 문제였다. 원래는 섬이었는데 기후변화로 갑작스럽게 사막화되면서 일부 사람들의 몸이 기형적으로 변했다. 그들의 몸을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몸이 필요했다. 그것이 멀리서 아이들을 사들이는 까닭이었다."( p.75)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서사 속에서 아이들이 처한 라온의 현실과 붉은 사막에 대한 비밀이 드러날 때, 라온의 아이들 못지않게 독자인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출구가 없는 라온에서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끼리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함께 가는 길을 찾아내는 라온의 아이들,

  그 길을 함께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마로와 고얼, 주안을 지켜보면서,

  가라앉은 배에 아직도 갇혀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첸이 만들어준 고래배를 타고 힘차게 출발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인간 욕망의 윤리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작가의 말을 아프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할게.

기억이 몸의 통증을 불러온댔지?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댔지?

그러니까  기억할게.

그 기억으로 오래 아플게.

 

오늘은 두 개의 해가 뜨고 두 개의 달이 떴어. 어느 것이 진짜인가. 어느 것이 가짜인가. 세상에 너무 많은 가짜들.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

무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 P48

"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잘해 왔잖아. 이제 너희들 스스로가 만들어 갖게 된 힘을 과시해 봐. 그 무엇도 너희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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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미 민음의 시 169
김행숙 지음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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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를 넘기니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2020. 11월 2일

    물기 머금은

    가을 나무를

    보며

    다시 펼치다.

 

 시집을 처음 사서 읽은 것은 시집 출간 즈음이었겠고,

 올해 11월 초에 이 시집을 찾아 다시 펼쳤었나 보다.

 오늘 다시 이 시집을 펼쳐서 읽은 첫 번째 수록 작품인 <포옹> 참 끌린다.

 

'포옹'의 찰나.

순간의 영상 한 컷 속에

관계의 의미를 이렇듯 아찔한 이미지로 그려넣을 수 있다니!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 시인의 말--

 

 '시인의 말' 이

겨울나무를 젖게 한다.

'열렬하고 고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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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어디서도 틂 창작문고 3
김선재 지음 / 문학실험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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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 읽으면 시인 듯, 시인가 하면 소설 같은 책.

언제나 나는 사이에 있다. 당신들이 누운 간격 사이. 혹은 당신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어둠과 그 어둠의 뒤편 사이. 오래된 과거와 길지 않은 미래 사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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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크리스마스 이브에 배달되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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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크 나비 반올림 50
김혜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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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큰 도시에는 첫눈이 오고 있다는데 남도 소도시의 하늘은 겨울비를 잔뜩 품고 있다. 시집을 읽다가 말고 다시 모나크 나비를 꺼내 드는 12월의 도서관. “수능이 끝난 도서관은 여백이 많은 그림 같다. 그 여백이 지어내는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모나크 나비의 첫 문장 같다.

 

김혜정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나는 늘 한동안 다른 책을 손에 잡지 못한다. 모나크 나비에 수록된 6편의 단편들을 읽고도 그렇다. 왜 그럴까.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람들의 표정과 뒷모습과 움직임에 눈길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여섯 편의 작품 한 편 한 편 속에는 펼쳐진 서사의 출발점은 아이들의 죽음과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작가의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서러움이라고나 할까. 도저한 어떤 것이 배어 있, “더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이 터져 나온 게 분명” (모나크 나비)할 것이다. 세상에는 왜 교통사고, 세월호 사건, 학교 폭력, 성폭력 등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또 병들게 하는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아이들이 왜 내쳐지고 버려져야 하는지.

그러나 그 서사를 끌고 가는 주된 동력의 키워드는 연민과 사랑, 동행과 일상의 단단한 힘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에 걸려 멈춰서고, “혼자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저나 나나 외로운 인생인데 서로 의지하며 살면 얼마나 좋았겠어.” (모나크 나비) “동행이란 말 좋지 않냐? 함께 간다는 것 말이다.”(물이 끓는 시간)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도 일상을 단단하게 소유할 수 있는 힘”,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살아가는 동물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고양이들을 순하게 만들 수 있는”(뱀파이어 울샘) 힘이 아닐까.

 

아프고 따뜻하다. 어둠이 내리는 겨울 도서관 앞뜰 나무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가만가만 모나크 나비를 쓰다듬어 본다. “0.55g의 연약한 몸으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는” ‘모나크 나비들의 고단하고 아름다운 날개짓 소리 들리는 듯하다.

"왜 피안으로 가지 않고 이곳을 선택하셨는지 여쭤 봐도 돼요?"
"과거는 과거에 불과할 뿐이거든. 기억이라는 것도 돌아보면 마음만 아플 뿐이야."

느낄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아름다운 숲과 호수, 나무도만질 수 없다면 다 뭐란 말이냐.
- <나를 기억해 줘> - P.15

이제 수애의 고통스런 기억들이 사라질 것 같구나. 누군가가 진정으로 수애를 사랑하면 수애의 고통스런 기억들이 사라지거든. 네가 수애를 사랑하는 마음이 수애의 고통들을 지워 준 거야.
- <나를 기억해 줘> - P.30

노란 리본들이 그를 둘러싸고 바람에 펄럭였다.
"저 리본들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도 하게 되고."
.......
공부 말이야. 전에는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니야.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 나 글을 쓸까 봐. 네가 무슨 글이야? 증언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 <물이 끓는 시간> - P.45

한 국자 한 국자, 국자마다 간절한 기원을 담아서. 몇 들통의 물로 바닷물을 데울 수야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
"물이 끓기 시작하면 딸이 당신 곁으로 오는 걸 알 수 있대. 엄마의 직감으로 말이야."
-- <물이 끓는 시간> - P.56

"처음에는 이 물이 끓는 시간이 100년도 더 되는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단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100년이라고 해도 긴 시간이 아니지. 우리 딸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 <물이 끓는 시간> - P.57

지완의 말을 듣고 있는데 내 몸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깊고 푸른 달빛이 길게 드리워 지완과 나를 감싸주었다.
- <푸른 달빛, 그림자> - P.85

모마크 나비 말이야, 밀크위드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지아가 물었을 때 나는 독을 만들어서라도 살았겠지, 라고 했다. 독을 만들어? 독기를 품는 거지. 아, 그렇구나. 독기를 품으면 되는 구나. 그렇게 말했던 지아는 독기를 품지 못한 걸까.
-<모나크 나비> - P.137

잘 들어. 중요한 건 네가 처음부터 그 일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야. 네 방에 틀어박혀서 마구 먹어 대더니 고깃덩어리가 됐고. 또 이렇게 숨어버렸잖아. 그 자식들 말이야, 지금이라도 신고 해. 그게 너를 위해서도 그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아. 제3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잖아.
- <루체> - P.146

탈피를 꿈 꾸지 않는 너와 달리 탈피하고 새로운 쉘을 찾는 우리 꼴이 보기 싫었던 거라고. 우리를 보면 네 자신이 더 미워졌으니까. 그래서 내 친구들을 괴롭히고, 죽인 거야. 비겁하게.
.......
넌 네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도 조작하고 있어.
- <루체>
- P.160

충격이 크면 잊고 싶고 실제로 잊히기도 하는 법잊. 백 번 이해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이킬 순 없잖아. 이젠 네 스스로 일어설 기회야. 지금이 그 기회야.
- <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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