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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지나는 시간 ㅣ 문지 푸른 문학
강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평점 :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학교와 학원, 직장과 가정의 시계들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인문계 사립 남자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주인공 민준과 창우를 소제목으로 엮은 9편의 연작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장편 같다. 첫 번째 수록된 「적응」은 1학년 3월에서 시작하여 여덟 번째 작품 「작은 괴벨스」까지는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3년 세월이, 마지막에 수록된 「길」은 수능이 끝나고 대입 결과가 나온 시점으로 후일담의 성격이 짙은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인문계 고등학생의 모든 길은 대입으로 통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이 수험생으로 살아야만 되기 때문에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인 친구 관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선생과 학생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 갈등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민준은 초딩 때부터 절친이었던 창우가 아닌 공부 환경이 비슷한 성택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민준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닌 자식을 의대 보내는 것이 꿈이 되어서 민준의 대입 내비게이션이 되고 있다. 담임이 생기부를 쥐고 있는 한 학생은 언제나 약자이고 생기부에 글 한 줄 올리기 위하여 3년 동안 뼈 빠지게 활동했다면서 대놓고 떠들어대는 학생들 속에서 담임 서근영은 써근영을 거쳐 썪은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코스프레 수업」에서 창우는 교실이 사막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황량한 땅, 세계에서 가장 강수량이 낮다는 사막. 창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교실을 둘러본다. 희멀건 벽과 천장, 실내를 비추는 창문과 형광등, 엎드린 애들......그 위로 쏟아지는 모래 무더기.” “건조한 흙바람이 불고 해와 달이 무심히 떴다가 지는 곳, 생장이 억제된 선인장만이 산다는 그 사막을 여기, 이 교실에서 느낀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사막’이 아니라 ‘지나는’과 ‘시간’에 초점을 두고 읽어진다는 것이다. “적응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적응에 대한 반항”을 느리지만 천천히 함께 도모해 가야 하지 않느냐는 작가 의식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 같은 인문계고등학교의 교실 환경에서 “아는 것은 나누자. 늦더라도 함께 가자.”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지는 학생 참여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과정형 평가를 미끼로 쓰며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학생들은 또 다른 평가의 족쇄로 반응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생들의 활동과 사고에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 교과융합수업과 특별심화수업이라는 인문학 강좌, 소인수 수업에서 모둠 활동과 토론 토의 등 학생들의 참여 수업의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그려진 청소년 소설은 흔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수업 방식들이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만 현실에서는 사막을 변화시킬 대안이 되어줄지, 평가의 또 다른 족쇄이거나 학생부에 한 줄 더 적고. 100%의 임펙트로 치장할 “1%의 팩트”로만 기능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에게 강미 작가는 화두를 던졌다.
<긴긴 사막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지나야 할 것인가?>
답은 우리의 몫이다.
“재희다. 친구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고 난 후 재희는 공부도 웃음도 놓아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예전의 재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어나 수학뿐 아니라 상심한 친구를 위로하는 방법도 학교에서 가르쳐주면 좋겠다.
인간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적응이라는 행동 습관은 우리의 진화에따라 점점 본능으로 깔렸고 이에 우리는 적응을 당연히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이 마냥 좋을까?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라는 인류 최악의 수용소를 세웠다. 그런데 온갖 비인륜적 행위가 일어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고 모두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적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도덕적 행위라 할지라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밀레니얼 칠드런>에깔린 인식이다. - P23
안 그래도 갑갑하고 지루한 시간, 녀석들은 누구 하나가 흥분하기를, 꼭지가 돌기를 기다리고 있다. - P45
"요즘은 그림 안 그리세요? 화가가 꿈이셨다면서요." "꿈은 무슨? 잊은 지 오래야. 요새 내꿈은 네가 의대 가는 거 뿐이야." 자신이 아닌 자식이 왜 꿈이 되어야 하는지, 그게 자식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돌인지, 민준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 P61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추락할 걸 알면서도 내리막길을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슬픈 그림자 속에 자신도 있다. - P77
하지만 그늘이라고 내내 어둡기만 할까? 아버지가 꺾어온 진달래처럼 그늘에서 피는 꽃도 있겠지. - P79
능력이라니 (개뿔) 노력이라니(개뿔)
벽 속의 벽돌일 뿐
기만하지마 차라리 고맙다고 해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들러리니까 - P127
경쟁하는 동안 너의 영혼은 어디로
적응하는 동안 너의 시와 음악은 어디로
내비게이션 No 차라리 길을 잃을래
내비게이션 No 차라리 길을 잃을래
- P142
그렇다.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것도, 당장 답을 얻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길을 좀 걷자는 것 뿐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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