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 큰 도시에는 첫눈이 오고 있다는데 남도 소도시의 하늘은 겨울비를 잔뜩 품고 있다. 시집을 읽다가 말고 다시 『모나크 나비』를 꺼내 드는 12월의 도서관. “수능이 끝난 도서관은 여백이 많은 그림 같다. 그 여백이 지어내는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모나크 나비」의 첫 문장 같다.
김혜정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나는 늘 한동안 다른 책을 손에 잡지 못한다. 『모나크 나비』에 수록된 6편의 단편들을 읽고도 그렇다. 왜 그럴까.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람들의 표정과 뒷모습과 움직임에 눈길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여섯 편의 작품 한 편 한 편 속에는 펼쳐진 서사의 출발점은 아이들의 죽음과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작가의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서러움이라고나 할까. 도저한 어떤 것이 배어 있”는, “더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이 터져 나온 게 분명” (「모나크 나비」)할 것이다. 세상에는 왜 교통사고, 세월호 사건, 학교 폭력, 성폭력 등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또 병들게 하는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아이들이 왜 내쳐지고 버려져야 하는지.
그러나 그 서사를 끌고 가는 주된 동력의 키워드는 연민과 사랑, 동행과 일상의 단단한 힘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에 걸려 멈춰” 서고, “혼자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저나 나나 외로운 인생인데 서로 의지하며 살면 얼마나 좋았겠어.” (「모나크 나비」) “동행이란 말 좋지 않냐? 함께 간다는 것 말이다.”(「물이 끓는 시간」)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도 일상을 단단하게 소유할 수 있는 힘”,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살아가는 동물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의 “고양이들을 순하게 만들 수 있는”(「뱀파이어 울샘」) 힘이 아닐까.
아프고 따뜻하다. 어둠이 내리는 겨울 도서관 앞뜰 나무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가만가만 『모나크 나비』를 쓰다듬어 본다. “0.55g의 연약한 몸으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는” ‘모나크 나비’들의 고단하고 아름다운 날개짓 소리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