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옮기는 바람 - 청풍명월의 심상지도
김덕근 지음 / 놀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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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건네는 언어를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깃든 시인들의 언어를 찾아 읽고, 내 방식으로 응답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서문 중에서)

물길을 고갯길을 오르내리던 배와 사람들은 사라지고 나루터에 흐드러지던 주막과 장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지만 그곳을 스쳐 간 사람들의 시와 말을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라 믿는 시인은 자신만의 응답 방식으로 책을 엮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연재로 시작하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이지만 지도 위에 깃발을 꽂듯 총 4장으로 나누어 충북의 대표적인 심상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 장소에 담긴 이야기가 아니다. 끝없이 사람을 부르고 다녀가게 하는 그곳만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길 위에서 날것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오래된 부도 하나, 강가의 바위 하나, 고갯길의 나무 한 그루마저 기억의 다른 이름이어서 우리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인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좌정해 있는 산에서 강물을 가로질러 내려와 순풍의 청량함을 선물”하는 청풍淸風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 책과 함께 누구라도 길을 나서면 시인묵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장에서는 ‘길 위의 숨결’이란 소제목으로 제천의 청풍루와 보은 회인의 인산객사, 영동의 월류봉과 가학루, 제천 박달재를, 2장에서는 ‘머무는 공존’으로 하여 음성 감곡 매괴성모 순례지, 충주 하늘재의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상, 청주 육거리시장에 묻힌 남석교, 구곡의 나라 괴산을 둘러보고, 3장에서는 ‘바람의 경전’ 아래 단양 도담삼봉을 거쳐 진천 두타산 영수사 영산회괴불탱을 우러르고, 청주 탑동의 양관과 괴산 연풍의 마애이불병좌상을 만난다. 4장에서는 ‘느린 기다림’ 아래 충주 목계나루 가흥창, 문의의 문산관,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탑비를 들렀다가 옥천 용암사의 동서 삼층석탑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인은 대장정의 길목에서 지치지 않는 전기수傳奇?처럼 해박한 역사 지식과 아울러 손을 들어 가리키듯 곳곳의 장소에서 유념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시인의 서정 어린 언어에 잡히지 않고 자기만의 이야기로 써가야 할 노정기路程記를 완성하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충북의 심상지리라는 소제목 아래 ‘그림자를 옮기는 바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만큼 책을 들고 꼭 가봐야 할 곳이다. 한 번에 가기보다 길을 내고 물길을 가던 옛사람들의 심정이 되어 대화하며 가야 할 것이다. 과거와 오늘을 그림자처럼 옮기는 바람을 느껴본다면 또 다른 심상지리를 발견하게 될 테고 어느새 자기만의 이야기로 새로운 장소를 개척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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