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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고립되지 않는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24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여운은 결코 짧게 남지 않는다. 팬데믹이 계속되는 사회에서 양성판정을 여러 차례 받은 우식은 눈총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고, 자신보다 먼저 퇴직한 마태공의 회사에 취직한다. 어느 날, 휴먼북 조기준을 발견한 우식은 그의 이야기를 열람하고, 조기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조기준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몸에 있는 바이러스 때문에 고립되어 있었는데, 자신을 보호하던 안나의 죽음 이후 고립된 이유를 알게 된다. 자신을 납치한 안나 때문에 고립되었던 기준은 감독에 의해 발견된 이후, 많은 후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기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준은 안나의 죽음 이후에도 왜 고립을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기준은 정말로 고립된 게 맞을까?
책을 읽으면서 조기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꼈다가, 역겨움을 느꼈다가,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 복합적인 감정이 터져나오며 책을 덮게 된다. 조기준이 징그럽기도 하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책을 덮는데 이게 과연 조기준에 한정된 감정인가 싶다. 기준이 누구인지를 추리해가며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기준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혹은 관계의 단절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그 어떤 시대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되어 있다. 채팅을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친구와 소통을 하기도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좌절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찝찝하면서도 묘하게 희망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차오른다. 상황이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조기준이, 소년이 언젠가는 나오게 될 거라는. 책에서 ‘방탈출 필승 공략법: 일단 나가고 싶어 한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건 방탈출에 국한된 게 아니다. 내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 방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밖으로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이 떠올랐다. ‘더 라스트 맨’도 각자의 이유로 상처받고 스스로 고립되기를 택하지만, 그러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란다. 고립의 이유도 사람이지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열쇠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자신이 히키코모리임을 밝히며, 악플을 많이 받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자 했다는 유튜버의 영상을 봤다. 악플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유튜버의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은 응원하는 댓글을 달았고 결국 그 응원에 힘입어 자신의 방문 밖으로 나가 다시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바깥 세상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영상이었는데 보면서 인류애가 차올랐다. 어떤 시대보다 가장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고립이라는 저주를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연결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표지를 보면 작은 사람이 방문을 열려 하고, 누군가는 원통 안에서 사람을 꺼내주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사람은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듯 해서 표지를 계속 바라보게 된다. 책의 표지까지가 이 책을 완성시키는 것 같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우리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