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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평점 :
이 서평은 허블 출판사로부터 도서 무상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억’과 ‘사랑’. 이 두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이다. 기억을 소거함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사람과, 돌려받지 못하는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이라는 이 상황은 이들이 만나기를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기억 담당 업체인 ‘유니언워크’는 이들이 서로를 기억하려 애쓰는 그 모든 과정을 막는다. 정말 기억만 관리한다면 기억 관리 서비스 이용자가 서비스 이용을 중단하고 자신의 기억을 돌려받고 싶어할 때, 막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유니언 워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억’일까, 기억 속의 ‘감정’일까.
이 책의 유니언 워크는 사람이 자신을 잃지 않는 최소한만 남겨두고 소거하는 기억 소거 서비스를 실시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억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기억을 제거당한 인간은 과연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공장의 톱니바퀴처럼 기능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사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능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을, 그 상태가 유지되도록 통제하고 싶은 유니언 워크는 최근의 AI사용을 남발하는 현재와 닮아 있다. 사실 유무는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챗GPT에 자아 의탁하여 답을 찾는 요즈음을 보면 이 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최근 지브리풍 AI 그림 변환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들과 ‘지브리’의 저작권을 생각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저작권을 생각하는 것과 윤리 의식 없이 AI를 사용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존재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 책의 안과 정한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다시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호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예전의 호수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서로를 기르워하는 마음이 서로를 새로운 호수로 이끌어, 마침내 평범한 연인처럼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산책하는 장면은 눈물겹도록 평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다 읽은 뒤 제목에 대해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는 ‘안’과 ‘정한’의 이야기가 소문으로 퍼지지만, 퍼지는 소문 속에 그들의 사랑이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에 이 제목을 지은 건 아닐까. 온 세상에 쫓기더라도 그렇게 바라던 서로를 만난 ‘안’과 ‘정한’의 행복을 빌며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점이 계속 바뀌고 서로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대화가 되는 것인지 아닌지 다소 헷갈리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몰입하여 안과 정한의 만남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SF소설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특히 ‘순애’에 진심인 분이라면 부담없이 읽으실 것 같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