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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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

 

이 책의 표지만 보고 애니메이션 암살교실을 떠올렸는데, 그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지뢰 글리코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마토가 구엔 시합에서 구누기 선배를 이긴 후, 다른 상대들을 하나씩 게임으로 이기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일본 추리 소설은 누군가 죽은 후부터 시작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 책은 그 편견을 깬 책이다.

 

지뢰 글리코는 에피소드들로 전개가 되길래, 혹시 단편소설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각 에피소드에 던져놓았던 복선들이 하나둘씩 회수되는데 그걸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게임 규칙 이해를 못할까봐 약간 겁먹었는데, 전혀 아니다. 게임 규칙이 굉장히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으로도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을 펼쳐나가면서 등장인물들이 게임 전개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고 이해를 도와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그 사이에서 바둑처럼 수싸움이 펼쳐지는데, 그 과정이 엄청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뒤 에필로그를 읽으며 비명을 질렀다. 작가님 속편 내주시는 거겠죠? 제발요!!

 

일본 추리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님만 알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작가님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역시 리드비 책들은 믿고 읽을 수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 소설인 소시민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이 책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타르트 시리즈보다 더 생동감 넘쳐서 재밌게 읽었다. 마토의 두뇌 싸움은 그동안의 추리 소설에서 보였던 두뇌 싸움과 궤를 달리해서 창의력이 정말 통통 튀는 전개를 보인다. 그렇지만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개연성도 충족시키면서 사람이 죽지 않는데 재밌는 추리 소설? 정말 귀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마토의 두뇌 싸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도 마토의 게임을 구경하는 동급생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연출로 느껴진다. 지니어스 게임 시리즈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뇌 싸움 예능을 좋아한다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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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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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혜화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뉴스 거리는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못 타도록 막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들이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달라 요구하는 것을 불법 시위라 명명하며, 장애인들을 휠체어에서 마구잡이로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뉴스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비장애인들도 짐이 많거나 다리를 다쳤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그게 ꖶዞ 불법 시위이고 부당한 요구일까.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은 이런 차별과 혐오를 겪은 이들을 위해 일하는 공익 변호사단체에서 쓴 책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별, 나이, 장애 여부, 성적 취향 등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틀린 것이라 말하며 그들을 배척하려 한다. 마치 그것을 인정하면 내가 한 일들이 진짜 잘못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혐오를 일삼고 차별을 말하는 자들은 이미 안다.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입으로도 그 말을 들으면 정말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기에, 아득바득 내 잘못이 아니라고 떼쓰는 것이다.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단체, 회사, 크게는 국가기관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잘못한 일을 잘못이라고 인정하면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문제가 되는 거라고 느끼는 것처럼.

최근 대만의 천쓰홍 작가님이 북토크에서 하신 말이 인상깊었다. ‘한국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있지만, 우리 나라는 동성 결혼이 합법인 나라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결코 가볍게 생각할 만한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동성애를 두고 찬반을 논한다. 너무나 웃기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걸 두고 찬성 반대를 논하다니.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사랑하는 이의 성별이 동성일 수도 있고 이성일 수도 있는데 그게 찬반을 말할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성소수자의 이야기, 난민, 외노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과 함께 권리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들이 직접 쓴 글이기에, 경계선에 서서 인권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공존해야 하지만, 그걸 소리내서 말하는 사람은 적다. 그렇기에 무력감에 휩싸이기 쉽다. 나 혼자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러나 아니다. 내가 소리내면 그런 생각이 있구나를 깨닫는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 혼자 한다고 달라지는 건 있다. 나는 아직도 SPC를 불매하고, 남양을 불매한다. 처음에는 너 혼자 불매한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지는데 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꾸준히 한 지금 내 주위 사람들은 나와 동조하고 함께 불매한다. 나 혼자만의 불매 운동이 매출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겠냐만은, 나는 사람의 피가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의 피가 묻은 빵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고서 유난히도 차가웠던 지난 겨울이 떠올랐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으로.” 그 추웠던 광장에서 우리가 한 목소리로 외치던 구호다. 계엄령이 선포되던 날부터 탄핵이 선고되던 날까지 너나할 것 없이 모여 함께 연대하고 서로를 독려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그 우리에는 비장애인들, 이성애자들만 모인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들, 장애인들, 농민들, 학생들, 여성들 등 우리 모두 나와서 함께 소리쳤다. 함께 해서 ‘우리‘가 되는 경험은 특별했다. 마침내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우리가 투쟁하여 마침내 봄을 마주한 것처럼, 모두가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함께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책은 차별의 행태를 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평등이라는 것을 재조명한다. 책에서 평등이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틀림과 다름이 동의어로 쓰이는 우리 사회에서, 평등이 실효성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름‘을 ‘다름‘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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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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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책 뒷표지에 있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추천사에 홀려서 읽게 된 책. ‘도저히 신인 작가라고 믿을 수 없다. 주도면밀한 구성과 탄탄하고 이지적인 문장에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는 문장에서 이 작품이 궁금해졌다. 책에 빨려 들어갈 듯이 읽고 난 후, 작가님의 이력을 보고 ‘13계단이 데뷔작이라는 것에 기함했다. 어떤 글은 읽고 나면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부러움이 느껴지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데뷔작이 이런 완성도면 제노사이드나 도서전에서 나온 신간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어떨지 궁금할 정도다.

 

사형수 기하이 료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 전후로 몇 시간의 기억이 없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갑자기 계단을 오른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무죄를 밝혀내라는 익명의 의뢰를 받은 스이가라 변호사는, 교도관인 난고에게 일을 맡긴다. 난고는 교도소에서 상해치사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최근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준이치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 난고와 준이치는 료의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우쓰기 고헤이 부부를 살해한 건 료가 아님을 직감한다. 과연 그들은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고, 료의 사형 집행을 저지할 수 있을까?

 

‘13계단은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형은 단순히 취소가 되는 게 아니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을 말한다. 사형 집행 제도의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며 그 서류에 찍히는 도장의 힘, 결재자의 부담, 사형수의 심리적 불안감이 서술되는 문장을 읽노라면 사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사형만이 법적 단죄일까. 만약 사형수가 잘못된 조사로 인해 억울하게 수감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작가는 법의 힘을 빌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집행관의 고충과 트라우마도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부담감과 윤리적 죄책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제목인 13계단은 사형수인 료가 떠올린 계단이면서, 동시에 사형수의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절차를 따르는 집행관과 사형수의 심리적 압박감을 나타낸 건 아닐까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적복수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등의 사회적 문제를 글로 잘 풀어낸 추리 소설이라 홀린 듯이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해치운 책이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갱생이 힘든 범죄자는 사형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그 갱생의 정도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사적 복수를 저지른 사람은 갱생이 불가한 범죄자인 것인지, 우리는 갱생과 목숨의 경중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단죄한다는 명목 하에 한 사람의 생명을 쉬이 여긴 것은 아닌지, 게임 캐릭터가 죽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또한,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 외에, ‘사형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와 이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형 이외에 갱생 불가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 방법 또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야 한다. 무거운 주제지만, 극강의 페이지 터너라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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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독립
최지현 외 지음 / 무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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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독립

 

절대 이 책을 카페에서 읽지 마세요. 카페에서 사연 있는 사람 되니까.

 

사나운 독립은 최지현, 서평강, 문유림 작가님 순서대로 글이 실려 있는데, 딸이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밖에 없다. 최지현 작가님은 남자 없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셨고, 서평강 작가님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님이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일기로 쓰셨고, 문유림 작가님은 결혼 후 사별로 남편을 보낸 글을 쓰셨다. 모든 글들이 다 울컥하는 감정을 품게 만들었지만, 특히 서평강 작가님의 글인 나선형의 물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나선형의 물은 오랜 시간 동안 폭언에 가까운 언행을 듣던 엄마가 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쓴 글이다. 다른 글과는 다른 형식을 보이는데, 말 그대로 소용돌이치는 글, 강에 가득 범람하려 하는 글을 쓰셨다. 직관적으로 자신의 불안감이 넘실거리는 게 보이는 글이라 신선하면서도 충격이었다. 글을 읽지 않아도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게 참 애잔했다. 엄마에게 가지는 애증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사랑과 공허만 남는 그 지난한 과정을 일기로 쓰셨는데, 담백한 서술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 담백함이 슬픔을 배가시켜서 읽다가 엄마한테 효도해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하던 글이다.

 

작가님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그 슬픔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딸의 존재로 힘내면서 그 슬픔마저 껴안으려 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조용한 병실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엄마의 머리칼을 조심 조심 쓰다듬는 딸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내 보호자였는데, 지금은 내가 엄마 보호자로서 존재한다. 엄마가 나를 어려워하다가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하는 마음에 막 대하는 게 보인다. 나는 엄마가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장녀라면 많이들 공감하겠지만, 엄마는 참 어려운 존재다. 어렸을 때는 엄마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엄마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엄마의 이해가지 않던 행동들을 자꾸만 이해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엄마도 나이를 먹고 나를 낳은 뒤에 할머니를 그렇게 이해하셨겠지.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홀로 오롯이 나로서 서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 독립인데, 그게 참 어렵다. 가장 사랑했던 할머니와의 이별, 애증의 관계였던 엄마와의 이별, 반려자와의 사별.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이별이 아니어서 그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서야 로서 설 수 있다. 아프고 슬펐던 감정을 곱게 접어 잘 개켜놓고, 마음 한 켠에 볕이 잘 드는 곳에 놓는 것. 이게 독립이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지난한 요동침을 겪고 나면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여성들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웃고 울면서 상처난 마음을 치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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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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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도서제공

 

궤도90분에 한 번씩, 하루에 총 16바퀴를 도는 우주선에 있는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여섯 명의 우주 비행사가 이 우주선에서 생활하지만, 누구 하나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우주선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짧은 분량의 책이고 꽤 속독한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이 책은 절대 빨리 읽을 수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게 되는 매력이 있어 더디게 읽었는데, 글의 묘사가 아름다워서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먹으며 소화시키느라 완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광활한 우주에서 태양이 지구를 비추며, 어둠 속에 잠식되어 있던 지구가 색을 되찾는 순간의 묘사가 참 좋았다.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구의 아름다움이 더 잘 나타나는 묘사인 것 같다. ‘궤도를 읽다 보면 우주에 나가지 않고도 지구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나조차도 우주비행사처럼 지구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지구에 남아있는 이들을 보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우주선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선망의 대상이며 유토피아 같은 곳이다. 그들이 실제로 살았던 곳이지만, 현재 갈 수 없기에 그곳에서의 기억이 미화된 곳이다. 우주 비행사들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지구와 실제 지구는 다를 수 있다고.

 

지구에서의 삶은 중력이 작용해서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걸어야 하고, 사람이 부유하지 않으며, 체내 시간 감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주 비행사들은 이미 우주선에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들은 1분을 어림하여 셀 때 130초가 걸리기도 하고, 45초가 걸리기도 한다. 지구에서의 삶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려 하지만, 우주선은 중력의 작용을 받지 않기에 근육이 계속 빠진다. 그들은 자신이 지구에서 제대로 적응해서 살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그래서 지구가 아닌 우주선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들은 허무와 체념을 습득한 게 아닐까.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고 계속 그리워하더라도 당장 갈 수 없으니, 그리움과 공허함을 체념으로 학습한 게 아닐까.

 

우주선 내에서는 국가도 인종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들만이 느끼는 고독과 유대감은 지구에서 사는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연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그렇기에 궤도를 읽고서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 곳이 새롭게 보였다.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음에도 중력으로 발을 붙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며 우산을 쓰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갑자기 내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이 모든 일상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해졌다. 그래서, 이 지구의 환경이 더 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순간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서평에서 지구 예찬을 펼쳤지만, 책은 오히려 우주의 광활함이나 우주선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구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고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 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우주에 나가보지 않았음에도 우주를 경험한 것처럼 묘사한 작가님의 필력에 매 순간 감탄하며 읽었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나라 간 경계조차 잘 보이지 않기에 이 지구 안에서 싸우고 탐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독자들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전쟁과 폭력이 만연한 요즘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다. 지금까지의 SF소설과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라, SF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읽어보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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