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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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책 뒷표지에 있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추천사에 홀려서 읽게 된 책. ‘도저히 신인 작가라고 믿을 수 없다. 주도면밀한 구성과 탄탄하고 이지적인 문장에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는 문장에서 이 작품이 궁금해졌다. 책에 빨려 들어갈 듯이 읽고 난 후, 작가님의 이력을 보고 ‘13계단이 데뷔작이라는 것에 기함했다. 어떤 글은 읽고 나면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부러움이 느껴지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데뷔작이 이런 완성도면 제노사이드나 도서전에서 나온 신간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어떨지 궁금할 정도다.

 

사형수 기하이 료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 전후로 몇 시간의 기억이 없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갑자기 계단을 오른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무죄를 밝혀내라는 익명의 의뢰를 받은 스이가라 변호사는, 교도관인 난고에게 일을 맡긴다. 난고는 교도소에서 상해치사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최근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준이치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 난고와 준이치는 료의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우쓰기 고헤이 부부를 살해한 건 료가 아님을 직감한다. 과연 그들은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고, 료의 사형 집행을 저지할 수 있을까?

 

‘13계단은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형은 단순히 취소가 되는 게 아니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을 말한다. 사형 집행 제도의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며 그 서류에 찍히는 도장의 힘, 결재자의 부담, 사형수의 심리적 불안감이 서술되는 문장을 읽노라면 사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사형만이 법적 단죄일까. 만약 사형수가 잘못된 조사로 인해 억울하게 수감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작가는 법의 힘을 빌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집행관의 고충과 트라우마도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부담감과 윤리적 죄책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제목인 13계단은 사형수인 료가 떠올린 계단이면서, 동시에 사형수의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절차를 따르는 집행관과 사형수의 심리적 압박감을 나타낸 건 아닐까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적복수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등의 사회적 문제를 글로 잘 풀어낸 추리 소설이라 홀린 듯이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해치운 책이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갱생이 힘든 범죄자는 사형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그 갱생의 정도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사적 복수를 저지른 사람은 갱생이 불가한 범죄자인 것인지, 우리는 갱생과 목숨의 경중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단죄한다는 명목 하에 한 사람의 생명을 쉬이 여긴 것은 아닌지, 게임 캐릭터가 죽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또한,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 외에, ‘사형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와 이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형 이외에 갱생 불가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 방법 또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야 한다. 무거운 주제지만, 극강의 페이지 터너라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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