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애 (緣愛)
서민선 지음 / 머메이드 / 2024년 2월
평점 :
[연애]라는 제목을 들으면 남녀간의 사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은 아흔 살 시어머니와 사십 대 막내 며느리의 이야기다.
고부 사이의 이야기라니. 재미있을까? 읽어도 답답하지 않을까?
책을 접하기 전에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유명한 만화 ’며느라기‘만 봐도 속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한 고부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사실 굳이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내 주위에 고부갈등이 있는 집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굳이 책으로까지 그런 갈등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제목이 [연애]란다. 어째서 이런 책에 [연애]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그러고 보니 연애의 한자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랑하여 사귐을 표현하는 연애(戀愛)가 아니다.
연 자가 인연을 나타내는 연(緣) 자인 것이다.
그래서 책 표지에 인연이 맺어 준 사랑이라고 적혀 있었구나.
서민선 작가님은 서른에 결혼을 하며 당시 75세인 할머니 시어머니를 만났단다.
키는 작지만 고집 있고 강단 있어 보이는 시어머니에게 예쁨 받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집안이나 그렇듯 갈등이 생겼고, 그걸 싸우고 화해하며 풀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하나둘씩 쌓인 에피소드들을 말로 하지 못해 글로 적어놓은 기록이었다.
적어놓고 보니 나쁜 기억도 있지만 좋은 기억도 많아, 시어머니는 작가님의 뮤즈가 되었다.
책을 받고 소파에 편히 앉아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장 펼쳐 읽고서는 그대로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애틋해지는지,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이 울렁거렸다.
내 단순한 표현력으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라는 생각. ’나도 시어머니가 되겠지.‘ (안될수도 있지만..^^)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13년 차 며느리이다.
시댁에 첫 인사를 드리러 가기 전, 그때 당시 남친이 나에게 그랬다.
“이 세상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 없어.”
사실 난 그때 좀 코웃음을 쳤다. ’너도 효자구나.‘라며.
그런데 13년 차 우리 어머니 며느리로써 말하지만 진짜 우리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없다!
큰 애 임신했을 때 시댁에서 내가 했던 말.
“아, 그냥 여기서 어머니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시어머니의 모든 모습을 다 좋아할 순 없겠지만 나도 어머니와 13년의 인연을 쌓고 보니 애틋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이것이 인연이 맺어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마음을 가장 울렸던 건 책 마지막에 “도현 엄마예요, 어머니.”로 시작하는 에필로그.
도현 엄마-를 읽는 순간 왜 그랬는지 눈물이 차올라 버렸다.
이 책은 독자를 그렇게 만든다.
담담하게 고부사이를 써 내려가기까지 작가님은 얼마나 많은 마음수련을 하셨을까.
그리고 90대의 할머니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겠지.
’엄마‘의 모습 이전에 ’여자‘의 모습도 있었을텐데. 라며 책 속에 동화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은 후 흐르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스무 살의, 나이가 제일 예뻤던 시절이 벌써 훌쩍 지나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세월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갈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잘 살고 있는걸까.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의 노년을 맞게 될까.
세상의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그 시대를 살아오신 모든 어르신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추천한다.
어른들의 여러 모습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는 방식과 모습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애기, 얼른 들어가."
"들어가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어."
"담뱃잎이 엄청 매워."
어머니는 항상 같은 계절에,
항상 큰딸 집을 돕기 위해, 답뱃잎을 말리기 위해,
꼬박 10년 20년 30년 큰시누이 집으로 오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나에게 그리 말했다. 얼른 들어가라고, 담뱃잎이 맵다고.
어느 남자에게 받는 사랑보다 따뜻했다. - P66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내게 시어머니 이상의 어떤 존재인 것 같다.
생의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과 측은지심.
나보다 먼저 태어나 살다가, 노인이 된 사람에 대한 애처로움.
그리고 나도 곧 그 노년을 맞이할 것이기에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유대감.
그런 것들의 합이 어머니에 대한 내 감정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내 남편을 낳은 분,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는, 다만 그런 감정은 아니다.
- P103
결국 저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어요.
남편과 결혼해서 저는 며느리가 되고, 작은 동서가 되고, 제수씨가 되고, 작은엄마가 되고, 올케가 됐어요.
그런 역할들이 이제는 익숙하지만 때때로 조금은 고단했는데,
어머니께서 그 모든 고단함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해 주셨어요.
제가 늘 꿈꾸던 것, 작가가 되게 해 주셨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는 일단 계속 잘 살아 볼게요.
어머니도 계속 지금까지처럼, 살아 내 주세요. - P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