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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 AI 이후의 생존 전략
헨리 키신저 외 지음, 이현 옮김 / 윌북 / 2025년 8월
평점 :

밀리의 서재에 담아두기만 했던 책을 출판사에서 보내주셔서 이번에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게 되었다. 방송사의 책 소개 코너에 오르내리고, 최근 KBS에서도 다뤄질 만큼 지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책장을 펼치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외교의 거목 헨리 키신저와 구글 전 CEO 에릭 슈밋, MS 전 연구 책임자 크레이크 먼디가 함께 쓴 이 책은 기술적 해설을 넘어 정치, 안보, 금융, 과학을 아우르며 현실적이고 무거운 고민을 던진다. 단순히 기술 발전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문명적 도전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는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읽는 내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은 인공지능이 불러올 범죄와 금융 질서의 위기다. 최근 예스24가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48억 원을 지급했다는 기사를 봤다. 단순히 온라인 서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된 현실에서 인공지능이 은행 계좌를 조작하거나 자금을 동결시킨다면 개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 일본의 ‘치매 머니’가 2,400조, 한국에서도 150조가 넘는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예금자 본인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이 돈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심각한 금융 불안 요소로 작용된다. 만약 이런 제도적 허점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악용한다면, 개인은 문제를 제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범죄 연루 계좌에서 단순 송금만 받아도 전체 계좌가 동결되는 사례가 있는데, 인공지능이 이러한 제도의 허점들을 장악한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키신저가 강조하듯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가 될 수 있기에 이런 위험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163쪽, 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통제되지 않은, 오픈소스로 인한 분산은 표준 이하지만 상당한 AI 역량을 갖춘 소규모 범죄 조직이나 부족의 출현을 야기할 수 있다. 이들이 가진 역량은 제한적이나마 스스로를 관리하고 지원하며 방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고 분산된 금융·통신·통치를 선호하는 인간 집단 사이에서 원시적 무정부주의가 확산될 수 있다.
책은 원자폭탄의 등장을 인공지능 시대와 자주 비교한다. 인류는 핵무기라는 절대적 파괴 수단을 만들고도 수십 년간 인내와 관리, 국제적 협력을 통해 간신히 공존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도 그렇게 통제할 수 있을까? 핵무기가 물리적 파괴를 초래했다면, 인공지능은 금융, 정보, 통신은 물론 인간의 존엄과 자유까지 위협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키신저는 인공지능의 위협이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차원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적 미래 전망을 넘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을 촉구한다.
내 책 『IB로 대학 가다』에서도 강조했듯,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핵심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류적 가치와 세계시민적 태도다. 결국 『새로운 질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류는 인공지능 시대를 피할 수 없으며, 문제는 이 기술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제어할 것인가이다. 그 관리의 주체가 인류이기에 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나 역시 교육자로서 미래 세대를 세계시민적 책임감을 지닌 존재로 길러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편리함 뒤에는 반드시 지켜야할 존엄과 자유가 있으며,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이 책은 미래 사회의 주인인 학생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