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일본으로 가서 살게 되었어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이라서 그런지 이 친구와도 연락이 뜸하게 되었는데 작년에 뜬금없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친구와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 친구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일본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 혹은 재일교포들에 차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외국에 나가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에 대해 말하지만 일본인들에 의한 차별은 더욱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친구를 통해서 재일교포 혹은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들어서 그랬던 걸까요? 그들에 대한 삶을 그려낸 소설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읽어보기로 했어요. 친구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예전에 읽은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에서 느꼈던 울분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했어요.
제가 선택해서 읽은 책은 이민진의 <파친코>에요. 두 권으로 된 책이라 분량으로 따지면 750여 페이지 정도로 상당한 분량의 소설이에요. 적지 않은 분량이라 읽는 데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책에서 전하는 내용이 너무 강렬하고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거든요.
이 소설은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USA투데이 올해의 책, 영국 BBC 올해의 책, 파이낸셜타임스 평론가가 꼽은 최고의 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외국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소설이에요. 작가의 이름이 한국인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계 1.5세대인 작가가 미국식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부산의 작은 섬 영도에서 살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 가족을 통해 재일 자이니치들의 삶을 그리고 있어요. 양진, 순자,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솔로몬에 이르는 4대가 겪은 삶의 굴곡은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시대적 배경 때문일까요, 일본이라는 나라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감정적인 반응 때문일까요, 그들의 모습에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가슴 아파하며 소설을 읽어야했던 이유가요.
일본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그들의 삶. 그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일 뿐인가요?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첫 문장에서부터 이렇게 말하지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또 이렇게도 말하지요.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2권 p.95)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삶. 그런 삶이 그들 가족이 삶을 이어온 가장 큰 힘이었겠지요. 이젠 이방인으로서, 또한 엄마로서,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간 그들처럼 지금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의 눈과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희망과 꿈을 말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