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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8월
평점 :
처음으로 전아리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스무 살, 쿨하고 싶은 젊음들의 일기라는 문구가 왠지 모르게 지나간 날에 대한 기억을 되돌리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20살의 무모함과 밝음과 활기가 넘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문장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오늘은 내 스무 살 생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열흘이 흘렀다.(008⦁009)
한참 즐겁고 활기차야 할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슬픔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잘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 슬픔이 뭔지 알게 되었으니까. 가족의 죽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프다. 매일 매일 새롭게 그 아픔이 다가온다. 그래서 이 첫 문장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밝고 유쾌한 이야기를 상상했건만.
이 책은 정우와 난쟁이 찹이 함께 보낸 5.30일에서 12.17일까지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스무 살 정우는 어떻게 어머님이 돌아가신 자리를 메울까? 첫 문장이 준 강한 인상 때문에 정우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관심이 갔다. 작가는 우리의 슬픔이나 고통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치유된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우의 집은 강아지와 찹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아지트로 서서히 변해간다. 친구인 윤식과 나중에 여자 친구가 되는 지예나 노출광 유리뿐 아니라 동성연애자인 외삼촌 커플, 봉사활동에서 만난 체리, 앞집으로 이사 온 작가, 심지어는 20년 만에 만난 아버지마저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와중에 어머니가 사용하던 방, 어머니가 만든 김치 등 어머니와 관계된 것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진다.
내 경우를 돌아보면 지금까지도 슬픔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어떤 순간에 너무나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정우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과의 삶 속에서 아주 조금씩 슬픔이 닦여나갔던 것 같다. 아마 찹의 마법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찹에게는 눈에 띄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저 정우네 집에 죽치고 있으면서 담배 피고 먹고 마시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찹이 있으면서 어떤 이들, 특히 아버지와는 조금 더 편한 관계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찹의 능력은 살아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의지하게끔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찹은 정우에게서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다른 누군가를 찾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내 마음 속에 묻혀있던 슬픔과 고통이 다시 한 번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