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언덕의 안개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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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모든 것을 가린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렴풋이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안개 너머 저 편에 무엇이 있을지, 그 속에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안개는 이 모든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달맞이언덕의 안개>는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공전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저자 김성종님의 연작소설이다. 이 책은 부산 달맞이언덕을 배경으로 추리소설 작가인 노준기의 입을 통해 안개 속에 담긴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작소설이라는 이름으로 25편의 단편, 아니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적은 분량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저자의 전작들을 생각하며 당연히 추리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인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몇 편 담겨있지만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을 미스터리나 추리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담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은 가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기대했던 추리소설 종류는 아니었기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들도 너무 적은 분량에 이야기를 담다보니 추리소설이 주는 묘미도 그다지 많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사람이라는 가장 미묘한 존재들을 둘러싼 안개의 모습. 그 안개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찾아볼 수도 있고, 욕망에 빠져버린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담겨있고, 돈을 둘러싼 욕심이 일으킨 살인사건도 있다.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앞에서 묘사한 내용과 뒤에서 묘사하는 내용이 서로 맞지 않아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막막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설 속 화자인 노준기의 가족 관계가 육남매(24)로 그려졌다가 뒷부분에서는 41녀로 그려지고, 노준기의 아버지도 앞선 이야기에서는 소학교 교장으로 그려졌는데, 뒷편에서는 대학교수로 묘사된다. 물론 이런 부분은 아주 소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작중 화자인 노준기를 동일 인물로 보아야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인물로 보아야할지, 아니면 노준기가 그려내는 소설 속 인물로 보아야할지, 이 또한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개 낀 달맞이언덕의 풍경처럼 사람들도 각자 자신들의 안개에 휩싸여 삶을 살아간다. 그 안개 속에 담긴 흐릿한 모습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각자가 그려내야 할 몫일 것이다. 사랑일지, 욕망일지, 분노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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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니엘로의 날개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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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세상 근심을 끌어안고 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냥 즐거워해야 할 나이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열세 살이면 삶을, 집안을,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또래 아이들과 다른 이 아이들의 삶은 불행하기만 한 걸까?

 

이탈리아의 국민작가 에리 데 루카의 <라파니엘로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 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 열세 살인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후 부모님을 돕기 위해 목수인 에리코 선생님의 가게에서 일을 돕는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라파니엘로라는 이름의 유대인 구두수선공을 만나 나이를 떠난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주인공과 라파니엘로는 서로 닮은꼴이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주어진 환경은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서 결코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첫 출근 기념으로 사 준 부메랑을 매일 같이 던지는 연습을 하며 언젠가 부메랑을 멀리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 고향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고향 땅마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라져버린 라파니엘로는 예루살렘으로 가려다 나폴리에 정착하였지만 자신의 곱사등에 숨겨진 날개를 펴서 언제가 신의 산인 예루살렘에 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을 보면 예전에 본 <시네마 천국>의 장면들이 겹쳐졌다. 어린 소년과 영사를 돌리던 할아버지와의 따뜻한 우정이 이 소설에서도 그려진다. 어찌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아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라파니엘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보면서 저절로 따뜻해지는 내 마음이 느껴졌다.

 

함께 어우러지는 삶. 소년과 라파니엘로만의 관계 뿐 아니라 인쇄소 주인, 빵집 주인, 목수인 에리코와의 관계, 또한 집주인과의 잘못된 관계를 청산하고 애틋한 첫 사랑을 키워나가는 마리아와의 관계.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에서 또한 사랑이, 온정이, 따뜻함이 물씬 피어오른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는 나폴리의 풍경만큼 아름답고 따뜻함이 넘치는 소설이다. 그 속에 꿈이 있기에, 그 속에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나 보다. 주인공처럼, 라파니엘로처럼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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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 더 자유롭고 지혜로운 삶을 위한 철학의 지혜
천자잉 지음, 박주은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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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는 중국의 철학자인 천자잉이 2010년 중국의 잡지 <신세기>에 쓴 칼럼들, 그 후에 쓴 글, 인터뷰와 강연 내용 등을 추린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을 보고 삶, 그것도 아주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을 통찰하여 그것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 담긴 내용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이 책은 총 3부로, 1<나는 왜 철학을 하는가>, 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3<우리의 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철학을 원리, 이치를 따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이치를 따지는 철학의 본성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수없이 펼쳐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방식은 요즘 대세인 쉬운 철학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최근에 출판된 책들은 아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풀어나가지만 이 책은 이런 추세와는 달리 정통 철학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그렇기에 어렵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에세이 하나하나에 곱씹어야 할 주제들이 차고 넘친다. 곱씹어야 할 주제들이 많다 보니 책을 넘기는 속도도 점점 느려진다. 그러다보니 모든 주제에 관심을 쏟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한 번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임에는 분명하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내용은 논리적 설득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의 칼럼이었다. 이 칼럼에서는 논리적 설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논리적 설득이란 한쪽이 어느 한쪽을 납득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양쪽이 서로에게 납득당하는 것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설득을 좀 더 광범위한 것으로, 즉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p.107)

 

설득의 목표는 상대가 내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식 수준을 높이는 데 잇다.(p.107)

 

논리적 설득이라고 하면 내 주장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를 넓혀 양자 간의 새로운 이해(인식 수준의 향상)라는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논리적 설득이 필요한 상황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만나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철학적 사고가 도출된다. 문득 이것이 바로 삶이 철학이 되는 과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지만 종교, 과학,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사고의 폭을 넓혀준, 두고두고 다시 곱씹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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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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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학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지금과는 달리 내가 학교 다닐 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한정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이 아파도, 시험이 있어도, 급한 일이 생겨도 빠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요즘 청년들이 정규직을 갖지 못하고 알바로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고은규의 <알바 패밀리>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일 걸까? 알바라는 비정규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토닥여주고 싶은 걸까? 소설은 대학생 로라와 로민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삶의 모습을 들려준다.

 

로라는 파워 블로거이다. 한 때 제품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구매 후기를 쓴 후 제품을 반품하는 일이 반복되다 결국 업체들에게 반품 왕으로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제품 리뷰를 할 수 없게 되자 보라보라 스포츠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리뷰를 쓴 후 제품을 반품하는 로라에게는 호두가구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가 망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반품 때문이다. 호두처럼 단단한 제품을 만들어 팔고자 했던 아버지는 경쟁 업체의 1+1 행사로 팔렸던 제품들이 반품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반품이라는 동전의 양면에 아버지와 로라가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지 않는가?

 

로라 엄마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깐깐한 소비자에서 어느 순간 마트 계산원이 된 로라의 엄마. 자신이 취했던 행동을 이제는 역으로 자신이 받아야 하는 상황. 인생은 이처럼 묘하다. 앞인가 했는데 어느 순간 뒤가 되어버리는.

 

작가는 슬픈 로라 가족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나간다. 웃음 뒤에 숨은 슬픈 현실. 그렇기에 더욱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 전성욱님의 작품 해설에 나온 이야기처럼 생존을 위해 비극적인 삶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지만 그 속에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한 줄기 웃음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의 의도대로 책을 읽으며 종종 크게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 단긴 슬픔을 지울 수 없었던 건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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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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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혼자 살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포도주나 치즈를 대접하는 전직 의사를 만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도인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세상사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영원의 수업>에 나오는 마태오에게서는 왠지 그런 느낌보다는 그 속에 무언가 알지 못할 슬픔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산 속에 혼자 사는 그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와의 만남,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의 모습이 보이지만 말이다.

 

<영원의 수업>은 마태오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회상하는, 또 자신의 아내였던 노라에게 들려주는 독백이다.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들려주는 마태오의 이야기는 이런 고통이 나에게도 주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통해서 말이다.

 

마태오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 첫째 아들 다비데와 함께 친구의 중고차를 가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아내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모두 잃고 만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라리사와 또 다른 인연을 이어나가고 그 속에서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낙태를 부탁하고 홀로 떠나버린다.

 

마태오와 같은 고난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때 차를 가지러 가지 않았다면, 만약 친구에게 부탁해 낙태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인생에는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매 순간을 보내고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에 빠져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마태오가 아버지 귀도의 편지를 받고 새롭게 자신의 인생에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새롭게 인생을 살아나가게 할 작은 울림이 있다. 마태오와 기차에서 만난 부인의 이야기 중 한 구절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느님은 자신을 들여보내 주는 곳에 있어요”(p.262)

 

그녀의 말처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분의 존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 문을 닫고 있기에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새롭게 내게 있는 빛을 꺼지지 않게 하는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삶이라는 마태오의 말,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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