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산에 혼자 살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포도주나 치즈를 대접하는 전직 의사를 만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도인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세상사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영원의 수업>에 나오는 마태오에게서는 왠지 그런 느낌보다는 그 속에 무언가 알지 못할 슬픔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산 속에 혼자 사는 그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와의 만남,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의 모습이 보이지만 말이다.

 

<영원의 수업>은 마태오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회상하는, 또 자신의 아내였던 노라에게 들려주는 독백이다.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들려주는 마태오의 이야기는 이런 고통이 나에게도 주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통해서 말이다.

 

마태오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 첫째 아들 다비데와 함께 친구의 중고차를 가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아내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모두 잃고 만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라리사와 또 다른 인연을 이어나가고 그 속에서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낙태를 부탁하고 홀로 떠나버린다.

 

마태오와 같은 고난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때 차를 가지러 가지 않았다면, 만약 친구에게 부탁해 낙태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인생에는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매 순간을 보내고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에 빠져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마태오가 아버지 귀도의 편지를 받고 새롭게 자신의 인생에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새롭게 인생을 살아나가게 할 작은 울림이 있다. 마태오와 기차에서 만난 부인의 이야기 중 한 구절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느님은 자신을 들여보내 주는 곳에 있어요”(p.262)

 

그녀의 말처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분의 존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 문을 닫고 있기에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새롭게 내게 있는 빛을 꺼지지 않게 하는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삶이라는 마태오의 말,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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