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성모병원에서의 첫 작업이며 이것으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있는 리모델링의 기나긴 대 장정이 되었습니다.

‘3월 18일 대전성모병원 부속실 3시 회의’라고 적혀 있는 2005년의 다이어리 속으로 들어간다.
원래 대부분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은 기대와 설렘에 나를 약간 흥분시키곤 하지만 오늘 신부님과의 만남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신부님의 얼굴을 뵌 후 후다닥 지나가버린 약 3분간의 대화 내용은 대강 이러하였다.
“507호와 607호는 특실로 만들게 부수고……임종실도 공사해봅시다. 계획안 언제까지 되나요?” 이렇게 다급히 간단하게만 말씀하시고 바로 자리를 일어나시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시설팀장님과 1층으로 내려와 구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
시설팀장님은 내게 공사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다시 해주고 방금 뵙고 온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부님은 부임하신 지 얼마 안 되었고, 성격이 급하시지만 젠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만큼 디자인의 선이 잘 맞아야 하며, 공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신단다.
정말 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신부님이시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 머릿속은 오늘 처음 들은 임종실에 대한 지시로 뒤엉켜 있었다. ‘도대체 임종실이 뭐야? 호스피스는 뭐지?’ 농담처럼 호스티스라는 단어가 연상되었다. 아까 잠깐 뵌 호스피스 수녀님께 들은 생소한 이야기도 낡은 필름처럼 떠올랐다.

“외국에서는 임종실을 멋지게 꾸며놓아서 죽기 직전에 가장 좋은 공간을 누려보며 일생을 정리하게 배려해요. 어떤 데에서는 새를 기르기도 하고, 나무도 있어서 정말 편안하고 품위 있는 장소에서 생을 마감하게끔 하지요.”

이 병원에서 호스피스 구역으로 설정된 곳은 2칸의 일반 병실과 그 앞의 복도인데, 병실 안은 1개의 채광창만이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지루한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어두웠다.

나는 한 편의 그림을 떠올려보았다.
‘창문 너머 꽃 만발한 예쁜 화단.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호수. 정말 수녀님 말씀처럼 새를 키워볼까?
새장을 그려놓으면 좋겠다. 정말 죽으면 천당에 갈까? 천당에 이르는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될까? 죽을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언제 죽을까? 나무도 있으면 좋겠지? 내가 죽을 때 내 곁을 누가 지켜줄까? 과연 내가 언제 죽을지 인식할 만한 시간 여유가 있을까?
그때 무슨 색이 보일까? 노란색? 연두색? 아니야, 보라야, 그렇지. 노인이 숨을 거둘 때 편안한 분위기여야 할 텐데. 임종실에서 유언장도 건낼 텐데. 본인에게는 정리의 단계, 가족에게는 준비의 시간이 될 텐데.
그래, 외국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며 추모식을 여는 것을 봤어. 어느 영화에서 봤는데. 슬퍼 보이지 않았어.’


이렇게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모든 발상은 ‘임종실 분위기가 슬플 필요는 없다’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며칠 동안의 고민을 하얀 종위 위에 정리해보았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이 겉표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슬픔만 가득한 곳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온한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아늑한 창문과 새장을 이번 제안서의 첫인상으로 부각시켰다.
드디어 신부님과의 두 번째 대면. 오늘은 내가 준비한 12장의 제안서에 대해 좀 길게 설명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종이를 빠르게 넘기시더니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공사 시작합시다”라는 간단한 한 마디만 남긴 채 자리를 일어나셨다. ‘마음에 드셨나?’ 이것이 기회이고 시작이라는 나의 자체 판단 하에 계획안을 품고 가슴 벅차게 부속실에서 내려왔다.
 

 

 
이번 공사에서는 우리 직원인 유형규 과장과 손발을 맞추었다.
안경을 쓰고 다소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유과장은 나와 오랫동안 일해온 성실한 직원이다.
우리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합판으로 임종실 앞 복도에 임시 가벽을 세우고 쪽문을 만들어 통로를 내었으며, 그 안쪽에 비닐 장막을 덧대어 분진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 병원 업무와 환자에게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작업 전 선공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곳과의 첫 만남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획한 시간과의 싸움 이외에 사람들과의 마찰이 늘 발생했다.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변화를 바라보는, 현재 이 자리에 익숙한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 낯설고 따가울 수밖에 없다.

슬그머니 장막을 열고 들여다보는 사람, 시끄러운 공사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먼지가 발생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용역 아주머니들, 그들은 모두 변화에 대해 반신반의한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저항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이 공사를 대했다. 2005년 5월 4일, 임종실 2곳, 대특실 2곳, 소특실 2곳이 완성되었다.

아침마다 공사 현장을 말없이 둘러보시던 카리스마 신부님의 얼굴에 처음 밝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 순간 보름 동안 나를 짓누른 긴장과 조바심이 사라져버렸다.


밝고 따듯한 원목 질감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면 화사한 임종실로 향하는 전실이 펼쳐진다. 대기 공간에는 화분이 그려진 노란 벽지를 병풍처럼 설치하였다. 보라색 소파 뒤로는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그림벽지로 깊은 공간감을 표현하였다. 두 병실에는 새로운 길로 향하는 또 하나의 창문을 설치하였다.

슬프지 않게, 그렇다고 희극적이지도 않게!
어쩌면 이곳은 가장 이상적이고 혜택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사는 정말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편안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내가 예전부터 해온 생각을 더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병원에서 맞은 첫 과제인 임종실 공사는 복잡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완성해야 했던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이곳에서 앞으로 진행해가야 할 일의 방향을 구축하고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더운 7월의 첫째 주 토요일. 병원 자재팀에서 숨 가쁘게 의자, 책상, 소파, 기타 집기류를 이동시켜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철거 장비인 크렉셔와 코아가 준비되었고, 벽을 털어내어야 할 인부 3명, 목공팀 8명, 전기팀 5명, 타일팀 4명, 도장팀 6명, 덕트공사팀 3명 등이 한 치의 시간도 아까워 공사 예정 시간 전부터 미리 현장 주변에 도착해서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공사 시작 시간을 알리는 기계음, 벽을 부수는 크렉셔의 쇳소리, 목수들의 타커 작동 소리, 에어 콤프레셔의 소음 등 모든 소리가 혼합되니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느덧 우리 모두 이렇게 모든 공정이 한 공간에 모여 제각기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시작 시간이 ‘땡’ 울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안전모를 쓰고 장비를 든 우리 팀원들이 전쟁터에 나갈 태세로 등장했다. 앞으로 목공팀은 3일 연속 밤샘 작업을 해야 하고, 목공 작업 끝나면 바로 연이어 페인트팀과 타일팀이 마감 공사를 해야 이번 작업은 간신히 끝나게 된다.
 


모든 의료진이 삼엄한 눈초리로 행여나 진료에 차질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고, 책임이 막중한 내과파트장의 안색은 공사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파랗다. 공사 현장의 어질러진 모양새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니 모두들 시간 내에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어 공사장의 분위기는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오후 5시, 목수 한 분이 천정에서 타커로 목공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그는 응급실로 달려가 붕대로 손을 감고 나서도 “빨리 가서 일해야 해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여기 직원들은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약이라도 먹나요?” 하고 간호사가 농담을 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책임과 열정으로 뭉쳐 있었다.

먼지와 소음에 휩싸여 작업자의 땀방울이 굵어져만 갔다. 저녁 시간이 다된 시각에 도배팀 10명이 합류하였다. 80평 대기실과 20평 복도에 40명의 작업자가 빼곡히 들어섰다. 대화도 필요없이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이러한 분들이 있기에 난 언제나 든든하다.


 
내가 저녁을 샀다.
그것도 소고기로. ‘역시 이런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해.’
틈틈이 식당 아주머니의 수박 참과 관리부장 수녀님의 아이스크림 세레모니가 있었기에 정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일할 맛이 절로 났다.
밤 12시가 되어도 소음은 여전히 굉장했다. 그나마 철거 때문에 발생하는 진동은 더 이상 없었다. 천정 디자인 목공사가 모두 끝났지만 페인트 VP 도장 때문에 작업대를 걷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작업대 때문에 진찰실로 가려면 그 밑으로 기어가야 했고 지독한 더위 때문에 작업 조끼를 입지 못할 정도가 되자 타일공사팀 사람들은 먼지 속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 일했다.


 
리모델링 작업이 이토록 힘든데 쉽게 더러워지는 마감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그래서 벽면에는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오래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색상에, 때가 잘 타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는 타일을 시공하였다. 한편 타일 공사를 할 때, 기존 페인트 위에 단순히 에폭시 본드로 타일을 붙이는 방법은 타일을 페인트에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따라서 기존 페인트 벽면에 흠집을 내어 시공을 했다. 이 짧은 시간에 200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타일 시공까지 해내야 하니 좀 고달프기도 했다.


현장에 엄마와 시아버님이 오셨다. 밤샘하고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나는 바쁜 일정을 탓하며 눈인사만 드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도배 아주머니의 맛있는 커피도 오늘은 쓰디썼다.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벽면에는 또 하나의 시원한 풍경이 연출되었고, 그 앞에 실내조경팀이 물레방아를 설치하였다. 좀더 세련되고 이국적인 디자인을 생각했지만 ‘한국의 물레방아는 다 이런가?’ 하고 생각하며 바쁜 와중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풍경 그림에 투명 유리를 3조각으로 나눠 붙였는데 어느 신부님이 이를 보시고 1장으로 붙일 수 없냐고 말씀하셔서 나는 다소 당황했다. 그림 크기가 가로 3600센티미터, 세로2600센티미터인데, 이 크기의 유리를 병원 출입구를 통해 2층의 계단을 지나 이 자리까지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일 벽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연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자형 벽감을 만들고 예쁜 선인장을 진열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냥 앉아서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 50인치 크기의 PDP 정광판 4대로 TV 프로그램과 병원 홍보 프로그램, 그리고 호명된 환자가 명시되도록 하였다.
물레방아와 이러한 시설은 환자의 입장에서 마련한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환자가 순서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은 금세 가지 않을까 싶었다. 늦은 밤. 도배팀도 페인트팀도 작업을 끝냈다. 남은 일은 필름과 전기 작업, 오후부터 들여온 가구 배치, 전산팀의 컴퓨터 설치 등이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병원 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우리를 격려하고, 일이 빨리 마무리되도록 근무 외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룻밤이 가고 월요일 새벽. 아침 9시면 진료 시작이었다.

전기팀은 작업을 마무리하고 유유히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의미로 약간의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는지 나머지 팀원들도 이들에게 목례를 하고 남은 일에 전념했다.
병원의 인원 동원 능력은 사뭇 놀라웠다. 새벽 4시부터 청소 용역의 청소가 시작되었고, 5가 되니 간호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행정팀의 주요 요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입가에 놀라움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가 집을 짓고 갔나?
멍하니 바라보며 흠 잡을 데 없나 하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었다. 완벽한 타일 마감과 천정의 곡선 디자인.
이는 단순한 기능으로서의 작업이 아니다.
우리 직원들의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의지가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져 완성된 것이다.

이 공간에 일했던 모든 작업자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어떤 곳보다도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에는 호스피스병동을 보여드리려구요..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이 병동을 공사한 후 '안녕 아빠'라는 타이틀로 말기 암 환자 이준호씨가 이 병원에 머물면서임종직전까지 생활하던 모습의 다큐멘타리를 보고 결정을 했어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 보았었지요..

병원이라는 공간에 다양한 삶이있다는 것을...
 


 


호스피스 병동에는 많은 사연이 깃들여 있다.
가톨릭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으로 기능할 호스피스 병동에 그 어느곳보다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사랑과 치유를 받으며 단 며칠이라도 이곳에서 편안히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봉사자들이 협력하였고, 병원 측에서도 영적 보살핌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원목실과 경당의 연결 동선이 이 병동과 수평적 배열을 이루도록 배치하였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53병동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 중 민 파트장의 꼼꼼하고 세심한 의견은 큰 도움이 되었는데, 필요한 물품과 가구, 상세한 치수, 병동 관계자들의 희망사항 등을 메모해 주어 도면 설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또한 “한쪽 벽에 수족관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어떤 의사의 바람을 반영하여 휴게실 한쪽에 양면 수족관을 넣어 보았다.
수족관은 지금도 그 의사선생님이 계속 관리에 도움을 주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말기 암 환자의 병상일기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5부작 중 “안녕 아빠” 편이 이곳 호스피스병동의 일부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아빠가 암을 선고받고 병원에서 긴 시간 동안 투병하며 겪은 아픔과 고통, 마지막까지 가족과 나눈 애절한 사랑의 모습은 제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해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을 애처롭고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하였다.
호스피스 병동은 이 가족이 겪은 가슴 아픈 사연의 배경이 되었다.

‘과연 이 가족에게 우리가 만드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될까?’

잠시나마 고통이 덜할 때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경당에서 가족과 함께 기도를 드리거나 휴식 공간에서 쉬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있는 테이블 위의 꽃, 실내 정원, 그림과 같이 환자의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 소품 하나하나가 그 환자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 사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환자들이 고통과 싸울 때, 환자의 가족들이 그를 돌보며 절망의 시간을 보낼 때, 꽃을 보고 그림을 보며 잘 정돈된 병실에서 찰나의 안락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작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호스피스 병동을, 말기 환자의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쉽게 표현해 왔다.
삶의 끝에 와 있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공간적인 편안함을 제공하여 그들의 만족감을 얻으리라는 나의 입장은, 진정한 환자의 입장이 되지 못하고 설계자의 입장, 공사자의 처지에서 생각한 부끄러운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창피함에 어쩔 줄 모르겠다. 멋들어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바꾸어 가는 것이다. 나는 공사 내내 과연 환자의 입장이 어떨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가족이 병원에 머물던 시점에 나는 병원 어느 구석에서 과거의 잔재를 없애고 새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깨부수고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 호스피스 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수족관 속 물고기를 바라보거나 실내 정원의 꽃을 바라보면서 휴식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아마 그 가족의 모습도 있었을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스피스 병동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는 이곳은 호스피스병동공사를 진행하면서 같이 리모델링하였는데 천정의 기본 골격만을 둔 유지한 상태에서 모두 리뉴얼하였다. 천정에 원목의 석가래*를 넓은 x자로 트러스형태를 만들고 벽체는 인조라임스톤으로 기둥과 기둥사이를 아취를 만들어 붙이고 마감하였다..
제단에서 바라보는 고해실 위의 정면 벽에는 벽화처럼 대형실사로 성화를 붙여 빛을 비추어주게 하고 양옆 아취형 기둥 위는 자연채광을 이용하여 성화그림들을 작게 이미지화 하여 불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연출하였다. 제단의 정면은 십자가 형태의 분할을 하여 간접조명을 넣었고 제단 앞을 넓게 돔형식의 아취로 감싸 안은 모양처럼 만들었다.

확실히 성당 공사인지라 신부님들의 관심도가 뜨겁다.
원목신부님은 오르간위치와 성체등에 조언을 주셨으며 병원장신부님도 공사 때 자주 들리셔서 격려를 해 주시곤 했다. 또한 원목 수녀님의 안목으로 선택되어진 십자가의 길은 독특하고 예쁘다. 소성당으로 연결되는 복도는 철제로 돔 형태를 잡은 후 목공으로 덧붙여 아취의 긴 복도를 만들었다.
아취의 테두리를 따라 나무 잎사귀를 그려 넣으니 좀 더 생동감 있어 보인다. 공사할 당시 머리를 쥐어짜고 어떻게 할까 하던 고민들이 이렇게 가지런히 정리가 되고나니 어디 있었냐는 듯 하다.

긴장 속 공사기간 촉박 그 가운데 나의 변덕들 또 갈림길... 자재의 빈곤들
이 모든 것이 벽바닥천정이 되어 말없이 하나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소성당을 리모델링하니 많은 환자들이 미사에 참석한다고 한다.
성가를 들으면서 이 공간 앞을 지나 갈 때에 가슴 부듯함을 느낀다.
 





로비로 진입하는 근처에 있는 자리..
환기와 냉방이 잘 되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기도실에 사람이 뜸해졌다..
신자라면 한번쯤 문열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인데 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

작고 아담한 기도실로 변신하는시간 10일 공간에 비해 시간 좀 걸렸다.
바닥을 원목으로 마감하였는데 오일스테인 작업으로 칠을 입히다보니 마르는 시간만 3일쯤 걸렸다.
환기와 냉방도 모두 개선되어 쾌적한 환경으로의 변신이다. 아늑한 불빛이 감돌고 작고 아름다운 성채함*이 제대 위에 놓여있다.

양옆에는 조금은 화려한 듯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나무줄기의 패턴이 벽화처럼 그려지게 하였는데 작은 공간이니만큼 눈앞에 볼거리를 많이 주어 허전함을 없애야 한다.

성체함 성체등 제대 십자가 성모상 스테인드글라스 회벽위 나뭇잎패턴터치 엔틱벽등 식물패턴 벽지와 필름... 그리고 원목바닥.. 화이트 레드 그린 엘로우 월넛 블루 ...
 
오늘도 기도실 엷은 불빛이 밖에서 아련히 보인다.
몸이 많이 불편한 한 환자가 휠체어에 의존하여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쳐 목인사를 드렸다.
그는 나를 바라보는지 아닌지도 모를 표정을 짓고 단지 앞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에 또한번 숙연해짐을 느낀다.
또한 수많은 환자와 사람들의 다른 목적과 희망들을 이 곳에서 바라고 염원하는 작은 공간이 보다 신성하고 고요한 다른 어떤 곳의 공간들보다도 부드럽고 따사롭게 표현되어 잠시 머물러 주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온기를 드릴 수 있는 곳이되길 기도드리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 층의 배관교체와 층별의 쓰임이 다양하게 구성하여 병원의 최첨단 시스템화 구축 및 입원실도 가장 최근의 지침에 따라 설계하여 전 병실의 화장실과 준비실이 마련되고 침상간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넓은 공간배치와 쾌적한 실내공기의 덕트 공조 배관을 포함한 그야말로 중부권의 최고의 입원실 병동을 지향하는 병원으로의 리모델링을 추구하려고 한다.
벽은 구조안전진단에 의거한 최대한 변형...

건물이 도막도막 이어져 증축된 관계로 곳에 따라 어떤 곳은 벽체가 60cm 나 되는 무지막대한 곳도 있다.
털려나가는 벽체에 맞춰 구조보강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5층에서 9층이 리모델링되기까지 언제나 구조 보강팀은 계속 따라다녔다.


 
철거의 소음을 최소화하기위해 크레셔로 벽체를 떨어낸다. .크레셔는 벽을 마치 집게로 젓가락질 하듯 집어서 가루를 내며 철거를 하기 때문에 소음은 적으나 사실상 작업 소요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단시간에 작업하기 위해서는 철거되는 양에 따라 기계장비가 많이 필요 시 되는 단점이 있다.


 
헐려진 벽체에 맞춰 도면대로 벽을 세우는데 하중과 유해부분을 생각하여 ALC 블록*으로 벽체를 쌓았다.


 
복도의 단조로움이 싫다. 결국 층별마다 각기 다른 예쁜 타일들을 이리저리 물색하여 ALCOVE를 만들어 벽마다 넣어보았다.
층별 다른 아이템의 이미지월을 만들어 계단으로 오갈 때 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디자인하였다. 그리고 복도의 벽에는 상단과 하단에 무광의 타일로 라인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반유광으로 때가 쉽게 타지 않고 세척이 용이하도록 선택하여 시공하였다.
병실마다 색상을 은은한 파스텔톤의 상 하단을 넣어 느낌을 달리 하도록 하였으며 도어는 미닫이 반자동 슬라이딩도어를 넣어 개폐에 소음이나 공간차지의 피해가 없도록 배려하였다.

52병동의 공사는 이번공사의 선발대였기 때문에 공사의 시간도 많이 걸렸으며 진행 중 실수도 다소 있었다.
기존에 있던 화장실 바닥의 방수면을 철거하여야만 바닥면이 수평이 되므로 이를 깨어내는 데에 병실에 입원중인 환자들에게도 적잖은 불평을 들어야만 하였고 거의 완공 시점에 복도의 폭이 도면과 맞지 않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도면 보다 복도간격이 약 10cm 정도 좁아졌음) 롱카를 대령하여 실제 체험을 해보는 큰 실수도 있었다.
층별마다 설비 배관들이 모두 이동되어 시공되어야 하기에 결국 3층의 창고부분은 나중 여성병동으로의 리모델링이 되는 그날까지 천정이 마감되지 않은 채 펄럭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6층부터 한 층한 층 올라가며 전 층의 시행착오를 줄여가면서 변모되는 모습으로 62/72/82/92는 오픈 되어져 갔다.

정신과 병동 72병동은 ......
이중 72병동은 정신과환자 수용을 위한 병동으로 가장 제일 나중에 완성되었는데 마치 집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로 원목 대문을 두드리는 형식의 첫 게이트를 만들고 가정의 넓은 거실의 분위기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환자의 휴게실이 될 수 있도록 원목의 질감과 프로방스풍의 그림으로 큰 효과를 주었다.
72병동의 평면 회의 때에는 화기애애한 웃음을 일관하기도 하였는데 지금까지의 리모델링 기간 동안 가장 즐거웠던 회의 시간이었다.
교수님과 파트장의 하이조크와 대화내용이 너무도 범상치 않아 별로 웃지도 않으시는 카리스마 신부님마저도 그 때에는 호응을 하시는 터에 웃음을 참아가며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 했던 72병동이라 공사 중 나의 발길은 이곳에 더욱 많이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일반적인 정신과 병동하면 떠오르는 감옥과 같은 철창들은 오히려 장식이 가미된 주물을 디자인하여 대체하였고 창문의 유리는 강화유리를 넣으니 정신과 병동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행복한가?
이러한 분위기가 되니 72병동의 환자들은 오히려 좋아하고 많아지고 밝아졌다고 ???!!! ....
더욱이 가장 오래되고 낡았던 30년 쾌쾌묵은 입원실들이 이렇듯 반듯하게 되살아나니 일반 환자들의 방배정도 경쟁이 되어 서로들 새 병동으로의 배치를 희망하는 쟁탈전의 해프닝까지도....
 
 





2005년 4월
대 특실공사를 위한 607 507호는 공간자체가 특실로 꾸미기에 안성맞춤이다.
약간의 전실을 만들기 위한 복도의 끝 공간을 포함하여 사선형의 데드 스페이스로 건물의 짜투리 부분을 포함한 다른 한 개의 병실까지 결국 3부분의 영역을 하나의 특실공간으로 보는데 이는 넓다고는 할 수 없으나공간 구획을 두어 대 특실만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디자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두 개의 무균실을 사이에 두고 (이는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기 얼마 전에 이미 완공되어 있는 터라 공사할 수 없었음) 옆으로 두개의 특1인실이 있어서 6층 한쪽 라인이 무균실 2개를 포함하여 특실병동으로 구성되게 하였다.
이 공사는 앞서 이야기한 임종실(사랑과 맏음의 방)과 같이 우리 회사가 맨 처음 공사한 곳으로 병원사람들에게 우리의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서로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지만 맨 처음 공사 할 때의 낯설음과 텃새를 생각해 보니 2년 반 전의 두근거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든 특실 공간은 다른 병동의 입원실에 비해 월등한 차별화가 되어야 하기에 마감재 및 시설의 배치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해야하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입장에서 가격적인 부담이 선택 후 편안함과 누릴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

공간의 이미지 : vip 라는 대접받는 느낌
집에서 보다도 더 편안하고 좋아야 하겠지?
내 시야에 두고 쓰는 사물이 모두 곁에...
그래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자랑도 해야 하는데...
뽀대 있는 예쁘고 편리한 방을 만들테야.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여기까지...
룸과 룸 사이에 보호자가 환자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벽에 가로형의 넓은 창을 넣었다.
침대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도어의 폭도 넓고 특히 환자와 보호자사이의 도어는 언제나 열어놓을 수 있도록 포켓도어를 설치하여 개폐에 도어의 차지가 없게 하였다.
방의 분위기는 환자의 안락감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파스텔톤의 벽지를 몰딩으로 분할하여 조금씩 다른 색들을 붙였다... (언제나 나는 색깔을 중요시 한다. 특히 작은 공간일 때에 지루하지 않게 꼭 2가지 이상의 색이나 다른 마감을 쓴다. 사람의 시야는 고개를 돌리면서 바뀌어 가는데 특히 작은 공간에서는 바라보면 벽이니 이곳저곳에 볼 것이 없으면 얼마나 지루하겠어...)
 

 
2007년 7월
나는 현장체험학습을 했다. 환자체험...
결국 이 특실병동에 머물게 된 것이다.


머릿속을 검사를 위해 3일 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마냥 빠르게만 달려왔던 나의 생활에 경종을 울린다.
매일 잠 못 자고 일하고 고민하고 상담하고 또 아이들 돌보며..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나에게는 예쁘고 소중한 아이가 셋인데 그저 즐겁게 커주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양쪽 부모님의 손자손녀 사랑해주시는 마음이 내 일을 하게 하는 큰 복인 것 같다. 정신없이 지내는데 요즘 들어 극심한 두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쁘진 않았지만 앞으로는 몸도 돌봐 가면서 일해야겠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것은 내 생활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왔다. 난 일을 즐기면서 완성되어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들었던 과정을 잊었고 또 다시 도전해 왔다. 인테리어에 관한 월간지를 볼 때마다 화려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를 낯선 단어들과 무슨 주의다, 지향이다 하는 퍼대는 말들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공간 예찬을 보면서 요즘 나이어린 학생들이 나의 직업에 대한 이상을 꿈꿀텐데 과연 무엇이 이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와야 하는지 꼭 말해 주고 싶다.

공사현장에 그림 몇 장 가지고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하고 반짝이는 구두 털면서 나가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그저 tv에서 나오는 허상일 뿐이다.

현장에서 하나의 개체들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쁜 호흡의 숨결을 먼저 이해하고 각 공간마다의 특성을 당시 유행에 껴 맞추어 도면 디테일의 멋부림과 말의 장식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공간에서 머무를 사람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그러면서도 이것들을 완성미 있게 조화로이 풀어가면서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그러기엔 아직 멀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간을 꾸며가며 만족을 위해 스릴을 느끼는 생활하려하는지도 모르겠다. 특실에 머물면서 내가 만든 것 들 중 몇 가지가 맘에 안 든다. 그 중 컴퓨터의 책상 높이가 약 5CM높게 만들어졌고 평면 tv의 각도도 침대에 누웠을 때 각이 직각이 아닌 약간의 예각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도 틀렸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내가 오늘 이렇게 환자를 해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꺼다. 그렇다.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만인의 칭찬에 자만하지 말고 어딘가에 있을 부족한 부분을 잘 살펴 시행착오의 퍼센트를 줄여가는 몫도 크다.
3일간의 특실에서의 환자체험은 대전성모병원을 고치면서 이 또한 나에게 큰 경험이고 이로서 나의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 검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친절한 나를 돌보아 주었던 간호사 언니들의 미소처럼 나도 거울을 보면서 환한 내일을 생각하면서 예쁜 미소 한번 지어보며 병실을 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