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7월의 첫째 주 토요일. 병원 자재팀에서 숨 가쁘게 의자, 책상, 소파, 기타 집기류를 이동시켜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철거 장비인 크렉셔와 코아가 준비되었고, 벽을 털어내어야 할 인부 3명, 목공팀 8명, 전기팀 5명, 타일팀 4명, 도장팀 6명, 덕트공사팀 3명 등이 한 치의 시간도 아까워 공사 예정 시간 전부터 미리 현장 주변에 도착해서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공사 시작 시간을 알리는 기계음, 벽을 부수는 크렉셔의 쇳소리, 목수들의 타커 작동 소리, 에어 콤프레셔의 소음 등 모든 소리가 혼합되니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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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 모두 이렇게 모든 공정이 한 공간에 모여 제각기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시작 시간이 ‘땡’ 울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안전모를 쓰고 장비를 든 우리 팀원들이 전쟁터에 나갈 태세로 등장했다. 앞으로 목공팀은 3일 연속 밤샘 작업을 해야 하고, 목공 작업 끝나면 바로 연이어 페인트팀과 타일팀이 마감 공사를 해야 이번 작업은 간신히 끝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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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료진이 삼엄한 눈초리로 행여나 진료에 차질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고, 책임이 막중한 내과파트장의 안색은 공사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파랗다. 공사 현장의 어질러진 모양새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니 모두들 시간 내에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어 공사장의 분위기는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오후 5시, 목수 한 분이 천정에서 타커로 목공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그는 응급실로 달려가 붕대로 손을 감고 나서도 “빨리 가서 일해야 해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여기 직원들은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약이라도 먹나요?” 하고 간호사가 농담을 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책임과 열정으로 뭉쳐 있었다.
먼지와 소음에 휩싸여 작업자의 땀방울이 굵어져만 갔다. 저녁 시간이 다된 시각에 도배팀 10명이 합류하였다. 80평 대기실과 20평 복도에 40명의 작업자가 빼곡히 들어섰다. 대화도 필요없이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이러한 분들이 있기에 난 언제나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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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녁을 샀다.
그것도 소고기로. ‘역시 이런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해.’
틈틈이 식당 아주머니의 수박 참과 관리부장 수녀님의 아이스크림 세레모니가 있었기에 정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일할 맛이 절로 났다.
밤 12시가 되어도 소음은 여전히 굉장했다. 그나마 철거 때문에 발생하는 진동은 더 이상 없었다. 천정 디자인 목공사가 모두 끝났지만 페인트 VP 도장 때문에 작업대를 걷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작업대 때문에 진찰실로 가려면 그 밑으로 기어가야 했고 지독한 더위 때문에 작업 조끼를 입지 못할 정도가 되자 타일공사팀 사람들은 먼지 속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 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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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작업이 이토록 힘든데 쉽게 더러워지는 마감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그래서 벽면에는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오래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색상에, 때가 잘 타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는 타일을 시공하였다. 한편 타일 공사를 할 때, 기존 페인트 위에 단순히 에폭시 본드로 타일을 붙이는 방법은 타일을 페인트에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따라서 기존 페인트 벽면에 흠집을 내어 시공을 했다. 이 짧은 시간에 200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타일 시공까지 해내야 하니 좀 고달프기도 했다. |
현장에 엄마와 시아버님이 오셨다. 밤샘하고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나는 바쁜 일정을 탓하며 눈인사만 드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도배 아주머니의 맛있는 커피도 오늘은 쓰디썼다.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벽면에는 또 하나의 시원한 풍경이 연출되었고, 그 앞에 실내조경팀이 물레방아를 설치하였다. 좀더 세련되고 이국적인 디자인을 생각했지만 ‘한국의 물레방아는 다 이런가?’ 하고 생각하며 바쁜 와중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풍경 그림에 투명 유리를 3조각으로 나눠 붙였는데 어느 신부님이 이를 보시고 1장으로 붙일 수 없냐고 말씀하셔서 나는 다소 당황했다. 그림 크기가 가로 3600센티미터, 세로2600센티미터인데, 이 크기의 유리를 병원 출입구를 통해 2층의 계단을 지나 이 자리까지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일 벽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연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자형 벽감을 만들고 예쁜 선인장을 진열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냥 앉아서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 50인치 크기의 PDP 정광판 4대로 TV 프로그램과 병원 홍보 프로그램, 그리고 호명된 환자가 명시되도록 하였다.
물레방아와 이러한 시설은 환자의 입장에서 마련한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환자가 순서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은 금세 가지 않을까 싶었다. 늦은 밤. 도배팀도 페인트팀도 작업을 끝냈다. 남은 일은 필름과 전기 작업, 오후부터 들여온 가구 배치, 전산팀의 컴퓨터 설치 등이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병원 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우리를 격려하고, 일이 빨리 마무리되도록 근무 외의 일을 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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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하룻밤이 가고 월요일 새벽. 아침 9시면 진료 시작이었다.
전기팀은 작업을 마무리하고 유유히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의미로 약간의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는지 나머지 팀원들도 이들에게 목례를 하고 남은 일에 전념했다.
병원의 인원 동원 능력은 사뭇 놀라웠다. 새벽 4시부터 청소 용역의 청소가 시작되었고, 5가 되니 간호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행정팀의 주요 요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입가에 놀라움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가 집을 짓고 갔나?”
멍하니 바라보며 흠 잡을 데 없나 하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었다. 완벽한 타일 마감과 천정의 곡선 디자인.
이는 단순한 기능으로서의 작업이 아니다.
우리 직원들의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의지가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져 완성된 것이다.
이 공간에 일했던 모든 작업자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어떤 곳보다도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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