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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에 출간한 '종합병원리모델링'의 책을 별로 홍보하지 못하고 또 다른 현장속으로 뛰어들어 앞만보고 달려왔네요..
그동안 저에게 이 책을 읽어보시고 병원을 리모델링 하고자 제 책을 읽어보셨던분, 또한 많은 종합병원의 시설부서에서 이 책을 소개받고 읽어보셨던 분들, 우연히 기회가 되어 책을 읽어주셨던 많은 독자분들이 저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셔서 힘이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놓는다는것이 저의 빠듯한 시간도시간이지만 책에서도 언급한것처럼 제가 공사한 모든 부분이 잘되어서라기보다는 여러사람들의 소중한 의견수렴으로 이루어지는 과정들과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내용이었기에 '뭐~이런 내용을 가지고 ' 라며 블러그를 펼쳐봐주실것 같아서 부담감도 아주아주 많이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렵고 딱딱한 분위기일거라 생각되는 종합병원을 리모델링 하는것이따뜻한 서로의 소중한 마음이 통해서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 이렇게 공간을 바꾸어나가는 인테리어디자이너라는 분야에 대해 일반인들도 쉽게나마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해서소신껏 조금씩 사진과 책의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제목만 보아서는 무미 건조할 것 같은 종합병원리모델링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숨을 쉬고 생활하는 곳이며 공간마다 모두 기능과 특성이 다른 곳이 종합병원이기때문에 정과 사랑을 담아 이 곳을 고쳤습니다.
책을 통해서 볼수있는 현장은 작년 6월까지이지만 지금까지 저는 그 곳을 드나들며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공간을 둘러보면서 또다른 계획을 해 봅니다.

책을 쓴 취지는 맨 처음 참으로 인간적인 공간을 위하여 라는 본문의 글에서 밝힌 아래의 내용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부딪치고 한편에서는 새 생명의 탄생이, 다른 한편에서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존재하는 공간을 위한 병원에서 제각각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은 보는 시각에 따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표출되어야 하며 디자이너의 선상에서 바라보는 공간을 바꿔야할 나로서는 다양한 사람, 환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해와 편의를 고심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적인 향기가 배어 나오는 따스한 공간 이미지를 전제로 한 리모델링에 주안점을 두어 인간미를 바탕으로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이렇게 pc 앞에 앉아 있는 여유의 시간이 저에겐 많지 않지만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틈틈히 책의 몇 장은 소개하려고요..
그리고 책에서는 소개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는 대전성모병원의 나머지 공간들도 조금씩 정리해서 끝까지 완성을 해야 할것 같아요. .^^ 그럼~~~
 





책의 표지를 펼쳐보면 이랬어요..
제 사진과 뒷장은 저의 소중한 지인들이 한마디씩 해주셨어요.
제일 먼저 대전성모병원의 병원장신부님. 그리고 저의 스승님 천의영교수님,
그리고 늘 고마운 행복이가득한집 심의주편집장님,
아나운서 김주하님도 제 여동생의 친분으로 제 책을 봐주셨지요^^
또한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의 병원장님이신 빈센트차영미병원장님과
든든한 김동영교수님 모두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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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메인 컨셉의 키워즈까지..
가톨릭이미지... 십자가 성모마리아 수녀님의 단아한 제복..
딴병원에 없는.....기도실. 소 성당. 경당......
병원장님=신부님 12시를 알리는 삼종기도방송 ...
같을 수 없는 다른 이미지들 그러나 같아 보이는 지금의 병원 느낌, 일부러 안 튀려 이다지도 같은걸까? 종합병원은 이래야 하나?
1969년 성모관 설립 붙여지은 또 다른 성모관 그리고 또 연결된 상지관..
모두 얼키고 설켜 거대해져만 있는 허연 덩어리의 대전성모병원...
차 받치고 로비로 가기까지 미로 찾기. 의사복 간호사복 그리고 모든 벽면 바닥..그저 허얘... 그리고 붉으리 죽죽 필름 색.. 곳곳에 걸린 슬로건... 사랑을 드리고 신뢰받는... 눈에 들어오는데 무언의 의지....
give me orders
과감히 고쳐야하는 것들... 보이지 않는 천정 속 혈관들.. 30가까이 배관들 급배기시스템. 냉난방시스템. 소심히 고쳐야하는 것들...
위의 꺼 고치면서 뜯어져 나가는 마감재들...
in my heart
확 바꾸고 싶지... 배관만 바꾸고 땜방하면 뭐야
보이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 일부러 성형수술 왜 해..
presents
병원에 ‘사랑을 주고 신뢰받는’ 의 슬로건이 공간 곳곳에 느껴지게 하고 싶어요..
가톨릭병원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서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병원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곳이 병원이라기보다는 치료하고 치유하고 그리고 휴식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서의 바뀜이 되었으면 하지요..
병원다운 병원이 아닌 병원답지 않은 병원... 내 집과 같은 편안 병원.. 아픈 사람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잠깐 차 마시러 이야기하러 그냥한번 들려보고 싶고, 그리고 모두가 몸담고 편히 일 할 수 있는 곳으로 ...
그런 병원이 되었으면 해요...
가능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걸요^^
 


 


 
병원의 전체적인 동선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이 병원의 첫인상은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어리둥절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몇 군데 공사를 진행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병원의 시설과 배치가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낯선 병원 식구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던 나를 제지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노화되어 교체가 시급한 설비 문제, 비효율적인 동선을 조율하기 위한 시설 재배치 문제, 실내장식의 질적 문제 등 수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다 고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40년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풀가동되어 온 병원에서 전체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지하부터 연결해 봅시다.
이용자가 길을 찾기 쉽게 배치합시다. 병동에 연결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수가 이용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외래 병동은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지저분합니다. 병실 분위기가 너무 칙칙합니다.
물이 새는 곳은 보수 공사가 절실합니다.
증축되는 장례식장에도 직원 휴게 공간이 필요합니다.
야외에 산책로를 만들면 어떨까요? 장애인 화장실 이용이 불편합니다.’


물론 이 모든 의견을 수렴할 수는 없지만 하나씩하나씩 바꾸어 가려 한다.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고쳐 가며 리모델링을 진행하겠다. 이것은 기회이다.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이 기회에 나의 온 마음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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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성모병원에서의 첫 작업이며 이것으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있는 리모델링의 기나긴 대 장정이 되었습니다.

‘3월 18일 대전성모병원 부속실 3시 회의’라고 적혀 있는 2005년의 다이어리 속으로 들어간다.
원래 대부분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은 기대와 설렘에 나를 약간 흥분시키곤 하지만 오늘 신부님과의 만남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신부님의 얼굴을 뵌 후 후다닥 지나가버린 약 3분간의 대화 내용은 대강 이러하였다.
“507호와 607호는 특실로 만들게 부수고……임종실도 공사해봅시다. 계획안 언제까지 되나요?” 이렇게 다급히 간단하게만 말씀하시고 바로 자리를 일어나시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시설팀장님과 1층으로 내려와 구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
시설팀장님은 내게 공사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다시 해주고 방금 뵙고 온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부님은 부임하신 지 얼마 안 되었고, 성격이 급하시지만 젠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만큼 디자인의 선이 잘 맞아야 하며, 공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신단다.
정말 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신부님이시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 머릿속은 오늘 처음 들은 임종실에 대한 지시로 뒤엉켜 있었다. ‘도대체 임종실이 뭐야? 호스피스는 뭐지?’ 농담처럼 호스티스라는 단어가 연상되었다. 아까 잠깐 뵌 호스피스 수녀님께 들은 생소한 이야기도 낡은 필름처럼 떠올랐다.

“외국에서는 임종실을 멋지게 꾸며놓아서 죽기 직전에 가장 좋은 공간을 누려보며 일생을 정리하게 배려해요. 어떤 데에서는 새를 기르기도 하고, 나무도 있어서 정말 편안하고 품위 있는 장소에서 생을 마감하게끔 하지요.”

이 병원에서 호스피스 구역으로 설정된 곳은 2칸의 일반 병실과 그 앞의 복도인데, 병실 안은 1개의 채광창만이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지루한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어두웠다.

나는 한 편의 그림을 떠올려보았다.
‘창문 너머 꽃 만발한 예쁜 화단.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호수. 정말 수녀님 말씀처럼 새를 키워볼까?
새장을 그려놓으면 좋겠다. 정말 죽으면 천당에 갈까? 천당에 이르는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될까? 죽을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언제 죽을까? 나무도 있으면 좋겠지? 내가 죽을 때 내 곁을 누가 지켜줄까? 과연 내가 언제 죽을지 인식할 만한 시간 여유가 있을까?
그때 무슨 색이 보일까? 노란색? 연두색? 아니야, 보라야, 그렇지. 노인이 숨을 거둘 때 편안한 분위기여야 할 텐데. 임종실에서 유언장도 건낼 텐데. 본인에게는 정리의 단계, 가족에게는 준비의 시간이 될 텐데.
그래, 외국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며 추모식을 여는 것을 봤어. 어느 영화에서 봤는데. 슬퍼 보이지 않았어.’


이렇게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모든 발상은 ‘임종실 분위기가 슬플 필요는 없다’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며칠 동안의 고민을 하얀 종위 위에 정리해보았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이 겉표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슬픔만 가득한 곳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온한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아늑한 창문과 새장을 이번 제안서의 첫인상으로 부각시켰다.
드디어 신부님과의 두 번째 대면. 오늘은 내가 준비한 12장의 제안서에 대해 좀 길게 설명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종이를 빠르게 넘기시더니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공사 시작합시다”라는 간단한 한 마디만 남긴 채 자리를 일어나셨다. ‘마음에 드셨나?’ 이것이 기회이고 시작이라는 나의 자체 판단 하에 계획안을 품고 가슴 벅차게 부속실에서 내려왔다.
 

 

 
이번 공사에서는 우리 직원인 유형규 과장과 손발을 맞추었다.
안경을 쓰고 다소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유과장은 나와 오랫동안 일해온 성실한 직원이다.
우리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합판으로 임종실 앞 복도에 임시 가벽을 세우고 쪽문을 만들어 통로를 내었으며, 그 안쪽에 비닐 장막을 덧대어 분진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 병원 업무와 환자에게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작업 전 선공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곳과의 첫 만남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획한 시간과의 싸움 이외에 사람들과의 마찰이 늘 발생했다.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변화를 바라보는, 현재 이 자리에 익숙한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 낯설고 따가울 수밖에 없다.

슬그머니 장막을 열고 들여다보는 사람, 시끄러운 공사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먼지가 발생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용역 아주머니들, 그들은 모두 변화에 대해 반신반의한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저항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이 공사를 대했다. 2005년 5월 4일, 임종실 2곳, 대특실 2곳, 소특실 2곳이 완성되었다.

아침마다 공사 현장을 말없이 둘러보시던 카리스마 신부님의 얼굴에 처음 밝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 순간 보름 동안 나를 짓누른 긴장과 조바심이 사라져버렸다.


밝고 따듯한 원목 질감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면 화사한 임종실로 향하는 전실이 펼쳐진다. 대기 공간에는 화분이 그려진 노란 벽지를 병풍처럼 설치하였다. 보라색 소파 뒤로는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그림벽지로 깊은 공간감을 표현하였다. 두 병실에는 새로운 길로 향하는 또 하나의 창문을 설치하였다.

슬프지 않게, 그렇다고 희극적이지도 않게!
어쩌면 이곳은 가장 이상적이고 혜택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사는 정말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편안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내가 예전부터 해온 생각을 더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병원에서 맞은 첫 과제인 임종실 공사는 복잡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완성해야 했던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이곳에서 앞으로 진행해가야 할 일의 방향을 구축하고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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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7월의 첫째 주 토요일. 병원 자재팀에서 숨 가쁘게 의자, 책상, 소파, 기타 집기류를 이동시켜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철거 장비인 크렉셔와 코아가 준비되었고, 벽을 털어내어야 할 인부 3명, 목공팀 8명, 전기팀 5명, 타일팀 4명, 도장팀 6명, 덕트공사팀 3명 등이 한 치의 시간도 아까워 공사 예정 시간 전부터 미리 현장 주변에 도착해서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공사 시작 시간을 알리는 기계음, 벽을 부수는 크렉셔의 쇳소리, 목수들의 타커 작동 소리, 에어 콤프레셔의 소음 등 모든 소리가 혼합되니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느덧 우리 모두 이렇게 모든 공정이 한 공간에 모여 제각기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시작 시간이 ‘땡’ 울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안전모를 쓰고 장비를 든 우리 팀원들이 전쟁터에 나갈 태세로 등장했다. 앞으로 목공팀은 3일 연속 밤샘 작업을 해야 하고, 목공 작업 끝나면 바로 연이어 페인트팀과 타일팀이 마감 공사를 해야 이번 작업은 간신히 끝나게 된다.
 


모든 의료진이 삼엄한 눈초리로 행여나 진료에 차질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고, 책임이 막중한 내과파트장의 안색은 공사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파랗다. 공사 현장의 어질러진 모양새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니 모두들 시간 내에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어 공사장의 분위기는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오후 5시, 목수 한 분이 천정에서 타커로 목공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그는 응급실로 달려가 붕대로 손을 감고 나서도 “빨리 가서 일해야 해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여기 직원들은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약이라도 먹나요?” 하고 간호사가 농담을 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책임과 열정으로 뭉쳐 있었다.

먼지와 소음에 휩싸여 작업자의 땀방울이 굵어져만 갔다. 저녁 시간이 다된 시각에 도배팀 10명이 합류하였다. 80평 대기실과 20평 복도에 40명의 작업자가 빼곡히 들어섰다. 대화도 필요없이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이러한 분들이 있기에 난 언제나 든든하다.


 
내가 저녁을 샀다.
그것도 소고기로. ‘역시 이런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해.’
틈틈이 식당 아주머니의 수박 참과 관리부장 수녀님의 아이스크림 세레모니가 있었기에 정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일할 맛이 절로 났다.
밤 12시가 되어도 소음은 여전히 굉장했다. 그나마 철거 때문에 발생하는 진동은 더 이상 없었다. 천정 디자인 목공사가 모두 끝났지만 페인트 VP 도장 때문에 작업대를 걷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작업대 때문에 진찰실로 가려면 그 밑으로 기어가야 했고 지독한 더위 때문에 작업 조끼를 입지 못할 정도가 되자 타일공사팀 사람들은 먼지 속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 일했다.


 
리모델링 작업이 이토록 힘든데 쉽게 더러워지는 마감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그래서 벽면에는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오래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색상에, 때가 잘 타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는 타일을 시공하였다. 한편 타일 공사를 할 때, 기존 페인트 위에 단순히 에폭시 본드로 타일을 붙이는 방법은 타일을 페인트에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따라서 기존 페인트 벽면에 흠집을 내어 시공을 했다. 이 짧은 시간에 200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타일 시공까지 해내야 하니 좀 고달프기도 했다.


현장에 엄마와 시아버님이 오셨다. 밤샘하고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나는 바쁜 일정을 탓하며 눈인사만 드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도배 아주머니의 맛있는 커피도 오늘은 쓰디썼다.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벽면에는 또 하나의 시원한 풍경이 연출되었고, 그 앞에 실내조경팀이 물레방아를 설치하였다. 좀더 세련되고 이국적인 디자인을 생각했지만 ‘한국의 물레방아는 다 이런가?’ 하고 생각하며 바쁜 와중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풍경 그림에 투명 유리를 3조각으로 나눠 붙였는데 어느 신부님이 이를 보시고 1장으로 붙일 수 없냐고 말씀하셔서 나는 다소 당황했다. 그림 크기가 가로 3600센티미터, 세로2600센티미터인데, 이 크기의 유리를 병원 출입구를 통해 2층의 계단을 지나 이 자리까지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일 벽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연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자형 벽감을 만들고 예쁜 선인장을 진열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냥 앉아서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 50인치 크기의 PDP 정광판 4대로 TV 프로그램과 병원 홍보 프로그램, 그리고 호명된 환자가 명시되도록 하였다.
물레방아와 이러한 시설은 환자의 입장에서 마련한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환자가 순서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은 금세 가지 않을까 싶었다. 늦은 밤. 도배팀도 페인트팀도 작업을 끝냈다. 남은 일은 필름과 전기 작업, 오후부터 들여온 가구 배치, 전산팀의 컴퓨터 설치 등이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병원 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우리를 격려하고, 일이 빨리 마무리되도록 근무 외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룻밤이 가고 월요일 새벽. 아침 9시면 진료 시작이었다.

전기팀은 작업을 마무리하고 유유히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의미로 약간의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는지 나머지 팀원들도 이들에게 목례를 하고 남은 일에 전념했다.
병원의 인원 동원 능력은 사뭇 놀라웠다. 새벽 4시부터 청소 용역의 청소가 시작되었고, 5가 되니 간호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행정팀의 주요 요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입가에 놀라움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가 집을 짓고 갔나?
멍하니 바라보며 흠 잡을 데 없나 하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었다. 완벽한 타일 마감과 천정의 곡선 디자인.
이는 단순한 기능으로서의 작업이 아니다.
우리 직원들의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의지가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져 완성된 것이다.

이 공간에 일했던 모든 작업자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어떤 곳보다도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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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호스피스병동을 보여드리려구요..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이 병동을 공사한 후 '안녕 아빠'라는 타이틀로 말기 암 환자 이준호씨가 이 병원에 머물면서임종직전까지 생활하던 모습의 다큐멘타리를 보고 결정을 했어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 보았었지요..

병원이라는 공간에 다양한 삶이있다는 것을...
 


 


호스피스 병동에는 많은 사연이 깃들여 있다.
가톨릭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으로 기능할 호스피스 병동에 그 어느곳보다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사랑과 치유를 받으며 단 며칠이라도 이곳에서 편안히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봉사자들이 협력하였고, 병원 측에서도 영적 보살핌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원목실과 경당의 연결 동선이 이 병동과 수평적 배열을 이루도록 배치하였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53병동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 중 민 파트장의 꼼꼼하고 세심한 의견은 큰 도움이 되었는데, 필요한 물품과 가구, 상세한 치수, 병동 관계자들의 희망사항 등을 메모해 주어 도면 설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또한 “한쪽 벽에 수족관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어떤 의사의 바람을 반영하여 휴게실 한쪽에 양면 수족관을 넣어 보았다.
수족관은 지금도 그 의사선생님이 계속 관리에 도움을 주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말기 암 환자의 병상일기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5부작 중 “안녕 아빠” 편이 이곳 호스피스병동의 일부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아빠가 암을 선고받고 병원에서 긴 시간 동안 투병하며 겪은 아픔과 고통, 마지막까지 가족과 나눈 애절한 사랑의 모습은 제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해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을 애처롭고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하였다.
호스피스 병동은 이 가족이 겪은 가슴 아픈 사연의 배경이 되었다.

‘과연 이 가족에게 우리가 만드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될까?’

잠시나마 고통이 덜할 때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경당에서 가족과 함께 기도를 드리거나 휴식 공간에서 쉬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있는 테이블 위의 꽃, 실내 정원, 그림과 같이 환자의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 소품 하나하나가 그 환자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 사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환자들이 고통과 싸울 때, 환자의 가족들이 그를 돌보며 절망의 시간을 보낼 때, 꽃을 보고 그림을 보며 잘 정돈된 병실에서 찰나의 안락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작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호스피스 병동을, 말기 환자의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쉽게 표현해 왔다.
삶의 끝에 와 있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공간적인 편안함을 제공하여 그들의 만족감을 얻으리라는 나의 입장은, 진정한 환자의 입장이 되지 못하고 설계자의 입장, 공사자의 처지에서 생각한 부끄러운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창피함에 어쩔 줄 모르겠다. 멋들어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바꾸어 가는 것이다. 나는 공사 내내 과연 환자의 입장이 어떨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가족이 병원에 머물던 시점에 나는 병원 어느 구석에서 과거의 잔재를 없애고 새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깨부수고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 호스피스 병동의 많은 환자들이 수족관 속 물고기를 바라보거나 실내 정원의 꽃을 바라보면서 휴식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아마 그 가족의 모습도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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